
1. 배수의 진 : 예미역에선 전날 오후 11시 25분에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차가 새벽 2시01분에 예미역에 도착합니다. 이 기차를 타고 고한에 가기 위함입니다. 차는 예미역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머가되던 오늘 밤에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배수의 진으로 치듯 이곳에 애마를 남겨두고 고한으로 떠납니다.


2. 만항재 : 기차는 2시 38분에 고한역에 도착합니다. 원래 계획은 새벽에 만항재로 올라가 어둠 속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현지에 도착하니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걷는것도 아니고 스키로 산중에서 갈려고 하다보니 길의 상태를 가늠해볼 수 없고 일단 무서웠습니다. -_-;;;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조그만 휴대용 후레쉬 불빛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봅니다. 피씨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너무 피곤하더군요. 전날부터 잠을 자지 못해서 피로감이 몰려오지만 잠은 오지않고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5시가 넘어서 아침식사를 하러 밖에 나갔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6시 넘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만항재로 가서 대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만항재로 올라왔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춥네요. 스킹 준비를 간단히 마치고 주변을 서성거리다 넘 추워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화장실 안은 난방을 하고 있어서 휴대하고 있는 삼각대 의자를 펼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냅니다. -^;;


인증샷을 찍어봅니다.

오전 7시 11분에 출발을 합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지만 지금도 시간상으로 많이 늦은겁니다. 초입길은 제설이 안되어 있었고 전날 자동차가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곱고 평평한 길을 예상했는데 시작부터 얼음길이네요. 어제 수 십명의 백패커들이 주변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습니다.



타인들의 취미생활을 탓할 수는 없는거지요. 덕분에 초입부터 힘겨운 스킹입니다. 수월하게 다운힐할 줄 알았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혜선사로 가는 동안 여기저기 캠퍼들의 텐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의 스킹은 평속 3km를 유지하면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간당 3km를 유지하면서 가야 해지기 전에 새비재에 도착할 수 있을겁니다. 다운힐에선 최대한 안전하게 내려가고, 업힐에선 꾸준히 올라가야합니다. 업힐에선 까먹은 시간은 다운힐과 평지길에서 벌충해야 하기에 평소에 휴식을 가졌던 곳은 지나쳐서 조금 더 멀리갑니다. 데드포인트는 정해놓고 이동하지만 막상 지점에 도착하면 지친 몸이지만 조금 더 이동해서 짧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운탄고도는 수 많은 갈래길로 연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초행길에선 사전에 치밀한 정보습득을 하지 못하고 오시는 분들은 이런 갈래길에서 헤매다가 엉뚱한 길로 들어가셔서 고생하시는 것을 가끔 목격합니다. 오전이 되자 캠핑을 마치고 하산을 하시는 캠퍼들이 썰매를 끌고 다니시더군요. 배낭을 메고 가시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썰매를 끌고 다니는 것도 재미는 있겠습니다.

평소라면 8,5km 지점인 하이원cc 입구에서 점심을 먹겠지만 이곳을 지나서 골프장 18홀에서 두번째 휴식을 가집니다. 홀에서 캠핑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ㅎ 이곳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40분경입니다. 아직은 여유가 있습니다. 장거리 스킹에서 목 마르기 전에 수분을 보충하고 허기지기 전에 영양공급을 해야 합니다. 스킹하는동안 저는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물은 수분공급이 느려서 이온음료수만 마십니다. 영양보충은 초콜렛바 위주로 먹습니다. 쉬는 도중 인증샷도 찍어봅니다.



3. 화절령 : 오늘의 날씨는 흐리고 영하 3~4도 정도의 온화한(?) 기후입니다. 눈이 녹지 않아서 스키에 달라붙지 않아 좋습니다. 습설에서 스키바닥에 눈이 달라붙으면 정말 짜증납니다. 나중에 바닥에 붙은 눈이 얼어서 가운데만 붕 떠서 다니면 스키가 미끄러지지도 않고 걷기도 불편이 이만저만 아닌데. 햇빛이 나지않아 썬크림은 바르지 않았습니다. 썬크림을 바르지 않고 다니면 나중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타기도 하고요. 스키장을 지나면 임도길로 오르는 ' 양지길 ' 이 있습니다. 너무 가팔라서 스키로 업힐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며칠전 내린 눈으로 덮혀 있어서 헤링본 스텝과 사이드 스텝을 번갈아가면서 아주 힘겹게 올라갑니다. 운탄고도 전구간중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은 곳입니다. 1km 넘는 가파른 업힐입니다. 업힐중 여러번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춥니다.


이 길은 4륜자동차로도 올라가기엔 벅찰겁니다. 비시즌에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분들도 페달링으로 올라가지 못할겁니다. 그 정도로 빡센 코스입니다. 업힐이 끝나는 곳에 텐트 한 동이 보입니다. 바람골인데도 캠핑을 하시네요. 단지 전망이 터져 있는 곳이라 그런건가요? 이해가 안가지만 풍력발전기 바로 밑에서 위험하게 캠핑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제 산행경력에서 얻은 지식으론 이해가 안갑니다. 밤새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 안에서 잠이 오시나? ㅎ
양지길을 지나면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이 펼쳐집니다. 평지길과 약한 업힐과 다운힐이 연이어 이어집니다. 곧이어 정자가 나오고 정자를 지나쳐 30분 정도 더 가면 화절령 사거리입니다. 이곳에 데드포인트를 정하고 점심을 먹을려고 했지만 계획대로 데드포인트를 좀 더 늘려 업힐구간을 빡세게 올라간 후 간단한 점심식사를 합니다. 화절령에서도 캠퍼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이라면 눈도 풍부하고 넓은 지역이라 좋은 캠핑구역입니다. 이곳까진 5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15,5km를 왔네요. 나쁘지 않은 스킹타임입니다. 아까부터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조금 걱정은 됩니다.


4. 운탄고도 B 코스: 1,6km 정도의 긴 업힐이 시작되고 업힐이 끝나면 운탄고도의 정상입니다. 1999년에 조성되었다는 팻말이 보입니다. 이곳부터 전인미답의 스킹입니다. 길고 긴 다운힐과 멋진 풍광이 보인다는 곳이지만 다운힐은 눈으로 덮혀 있어 거의 평지와 비슷하고 눈발 날리는 날씨에 풍광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아직도 지나온 길만큼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점심은 시간절약을 위해 빵 몇 개와 물을 끓여서 드립커피를 만들어 마십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입니다.



20km 정도쯤 왔을때부턴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지난 주 내린 눈으로 덮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러셀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남겨진 시간은 없고, 마음은 촉박하고, 몸은 망신창이가 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20km 넘자 양쪽 무릎이 너무 아파옵니다. 다운힐이 무섭습니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인적없는 깊은 산중에선 오로지 전진 또 전진만이 살길입니다. 다시 빽하여 화절령에서 하산을 하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준비한 시간이 아깝고 끝을 보고 싶은 강력한 욕망이 불안감을 상쇄시킵니다. 죽기살기입니다. 눈길은 점점 습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약한 다운힐에선 스키가 미끄러지지도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아쉽지만 부지런히 가야만 합니다. 25km에서 보인다는 절운산 철사다리가 나오길 기다리지만 아무리 가도 안나오네요.



드디어 철사다리가 나옵니다. 반가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에서 내가 거리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산이 깊고 험하기 때문에 좌측의 길 아래는 온통 벼랑입니다. 은근슬쩍 보면 무섭기도 합니다. 27km 지점을 통과하면 이 코스의 유일한 비상탈출로인 상동지역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입니다. 그 아래 멀리 눈으로 덮힌 배추밭이 보입니다. 아마도 그 밭 아래로 가다보면 민가가 나올겁니다. 이쯤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합니다. 시간은 오후 4시 47분입니다. 일몰 시간은 오후 5시 38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곧 해가 질겁니다. 아직 가야할 길은 업힐로만 3,1km 남았습니다. 과연 갈 수 있을까요?
5. 새비재 : 몸과 마음이 지치니까 자꾸 등골이 오싹오싹합니다. 깊은 산중을 홀로 가는건 매번 두렵습니다. 바람에 스치는 나무가지 소리나 무언가 알 수 없는 부석거림, 언뜻 보이는 정체모를 그 무엇. 낭떠러지.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어둠이 밀려옵니다. 노르딕 스키선수들이 장거리 경기에서 막판 스퍼트를 내듯이 심장은 터질 듯, 다리와 팔은 쉴새없이 휘저으며 피날래인 새비재를 향해 질주합니다. 제발 이 길이 끝나기를 구비구비 돌고 도는 길모퉁이를 돌면서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비재 500m 라는 표말이 보입니다. 제 인생중 가장 길고 긴 500m입니다. 이를 악물고 업힐을 하지만 500m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절망하고 포기할때쯤 만난 새비재는 제게 축복입니다. 운탄고도가 끝났습니다.




6. 에필로그: 어둠이 내려진 새비재의 마을. 타입캠슐공원의 방향을 따라 걸어갔지만 눈으로 덮힌 마을은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결국 불 켜진 가정집을 방문하여 위치를 묻고 택시를 콜했습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가정집의 사모님이 마시라고 주셨던 한 잔의 뜨거운 옥수수차 한 잔이 운탄고도 풀코스를 마친 보답이었습니다.

택시는 30분후쯤 도착했지만 길이 넘 미끄러워 못올라와서 배추밭을 가로질러 내려갔습니다. 50cm 이상 쌓인 밭을 가로질러 내려가는데 힘들어 죽는줄 알았네요. 운탄고도보다 택시 타러 내려가는게 더 힘들었습니다. -_-;; 택시를 타고 예미역으로 가서 정리후 영월역 앞으로 이동, 올갱이해장국으로 식사후 조금 쉰 후 귀가.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



* 코스 평가 :
1. 난 이 도 : 상중(거리가 길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음)
2. 설 질 : 중하(건설과 습설의 혼합)
3. 전체평가 : 중상(자동차 바퀴자국만 없으면 좋은 코스)
4. 접 근 성 : 상(매우 좋음)
* 스키 타입 : 운탄고도 A코스 => 노멀타입 / 운탄고도B코스 => BC타입 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