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댄가 팔광댄가
장지문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바늘에 꿴 실을 물어 끊은 강청댁은 실꾸리를 반짇고리에 내동댕이치며 용이 하는 양을 사나운 눈초리로 본다. 용이는 바짓가랑이를 발목에 꼭 쥐어쥐고 복숭아뼈 쪽으로 넘겨 접더니 옥색 대님을 친다.
“집구석에 땔나무 한 단 없이 해놓고.”
실밥이 툭툭 불거져나올 만큼 엉성하게 버선볼을 붙이면서 강청댁이 지껄였다.
“오광댄가 팔광댄가 구겡할라고 가나 머? 누가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참말이지 내 간장이 썩어서, 이눔으 살림 그만 탕탕 뽀사부리고 절에 가든지.”
(...)
“세상에 무신 낙으로 내가 살꼬? 앵앵거리는 자식새끼가 있다 말가, 내외간의 정분을 믿고 그 낙으로 산다 말가, 남들겉이 살림 모이는 그 재미로 산단 말가. 남의 집은 삽짝에 들어서믄 따신내가 나는데 헌 살강 겉은 이눔으 집구석에는 냉바람만 돌고, 울타리가 썩어자빠지니 그거 손볼 생각을 어디 한분 하까. 남들은 나무를 해서 집채만큼 쌓아놓고, 그 나무만 봐도 절로 땀이 나는데 이 집구석에는 강아지가 지나가도 때릴 나무 한 가치 없다 카이. 나무가 뚝 떨어져야 지게를 지고 나가는 그런 게름뱅이가 천하에 또 있을라고.”
집채만큼 나무를 쌓아놨다는 말이나 강아지가 지나가도 때릴 나무 한 개비 없다는 말이나 다 호들갑이지만 용이가 겨울에 땔 나무를 충분하게 준비 못한 것은 사실이다. (...)
“이럴 줄 알았이믄 내 머할라꼬 시집왔일꼬? 남들이 풍신 좋고 심 세고 심덕 곱다고 부럽다 해쌌더마는, 풍신 좋으믄 머하노. 심 세믄 머하노. 마음속에 보짱이 따로 있는데, 쪽박을 차도 마음이 맞아야 사더라고, 남은 한 해 사는데 나는 백 년 살 기든가?”
(...)
“참말이지 자나깨나 이녁 가숙, 이녁 자식밖에 모르는 두만아배 볼 적마다 그 성님은 무신 대복을 지고 나왔이까 싶어서, 옷 밥이 그리 부러우먼 참말이지 도둑년 될 기구마.”
깁고 있는 버선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강청댁은 눈물방울을 닦을 생각을 않고 맹맹해진 코만 들이마신다. 비로소 용이는 곁눈으로 마누라의 우는 꼴을 살폈다.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지나갔다. (1권 98~99쪽)
지아비가 옛정이 있는 여자와 같이 한방에서 하룻밤을 잔다는데 마음 편할 지어미가 어디 있겠는가? 강청댁 생각에 두 사람이 밤 사이에 육정(肉情)을 풀 것이 뻔했다. 그 일은 ‘도투마리 잘라서 넉가래 만들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어느 지어미에게도 가당찮은, 부처도 돌아앉을 일이었다. 그러니 강청댁 입에서 ‘돌아올 때 다리나 댕강 부러져라! 앉은뱅이가 돼서 다시는 못 가게’라는 말이 나올 만큼 화가 나고 눈물이 나오는 일이었다.
강청댁의 심성이나 행실에 대해서 평사리 아낙들이 나쁘게 말했지만 강청댁에게도 감춰진 측은지심이 있었다. 월선 문제로 크게 싸운 강청댁이 용이와 안 산다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친정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천과 별당아씨를 봤다. 강청댁이 정황을 두만네에게 말을 했고 두만네는 숙모뻘 되는 간난할멈에게 소식을 전했다. 간난할멈은 비밀, 구천이가 김환이고 윤씨부인과 김개주 아들임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머라꼬!”
간난할멈은 자리에서 뛸 것처럼 놀랐다. 흐릿했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강청이 산청 너머 함양 땅 아닙니까.”
“그렇지러!”
“거기서 지리산이 아니 멀지요.”
“그렇지러!”
“그러니께 아무래도 지리산에 숨어 있는가배요.”
“행색이 어떻든고? 별당아씨는?”
바싹 다가앉는다. 갈고리 같은 손을 꼭 쥐면서.
“벵이 들어 그랬던지 별당아씨를 업고 가더랍니다. 두 사람이 다 거지 중의 상거지가 돼서,”
“거지 중의 상거지라……”
“별당아씨는 등에 업히서 얼굴을 숨기고 있었인께 또 봤다 캐도 강청댁을 모르겄지만, 구천이는 분명히 강청댁을 보았답니다.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고 피해가는 기색도 없고 눈 한분 깜짝하지 않고 똑바로 앞만 보고 지나가더랍니다.”
“그랬일 기다……”
간난할멈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강청댁 말이 별당아씰 업고 가는 구천이 뒷꼴을 보고 서 있이니께 눈물이 나더랍니다.” (1권 120~121쪽)
남편이 옛날 정분이 있었던 여자 월선의 집에서 자고 와서 안 산다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친정으로 갔는데, 두만네는 그를 두고 ‘지랄 한분 부리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청댁 편을 들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 이용의 외도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고 덮어두고 강청댁 성미만 탓했다. 강청댁은 화를 달래기 위해 친정으로 갔지만 가난한 친정 식구들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했다. 이용이 외도를 한 사실보다도 강청댁에게 아이가 없다는 점이 식구들로서 더 걱정거리였다. 누구의 위로도 없이 친정에서 다시 평사리로 돌아와야 했던 처량한 강청댁이었지만 거지꼴이 된 구천과 별당아씨를 보고 눈물을 흘릴 만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닌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