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를 꼽으라면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했을 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빼놓긴 곤란하다. 무명 신인감독의 데뷔작이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발탁’돼 열띤 찬사를 받았고, 순제작비 7억원의 저예산영화가 이달 초 개봉해 14만 3000여 명을 끌어모았으니 말이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시네마디지털서울 버터플라이상 등 상복도 따랐다.
‘김복남…’을 연출한 장철수(36)감독은 이른바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다. ‘해안선’‘사마리아’‘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참여했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3년 걸린 ‘김복남…’에 대해 그는 “수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관객들은 알아봐줄 거라는 믿음이 항상 있었고, 그 믿음이 입증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표현수위가 상당히 세다. 외딴 섬에 사는 여인 복남(서영희)이 남편(박정학)과 시고모(백수련)를 비롯한 주민들의 길고 집요한 학대에 견디다 못해 복수극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전반부는 복남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여인잔혹사, 후반부는 복남이 벌이는 피로 얼룩진 복수극이다.
“신인감독 입장에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센 걸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대신 잔혹하게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첫번째 벽은 캐스팅이었다. “김혜수·전도연을 비롯해 웬만한 여배우들한테 모두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결과는 모두 퇴짜였다.
“원래 김기덕 감독님이 서영희씨를 추천했고 본인도 원했어요. 제가 망설였죠. 저예산영화니까 좀더 지명도가 높은 배우였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영희씨로부터 ‘시누이 일곱 있는 집에 외며느리로 시집와 고생하던 엄마를 보며 어릴 때 항상 마음이 아팠다’는 얘기를 듣곤 더이상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철수와 영희’가 뭉쳐 어렵사리 영화를 찍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복남…’의 인상적인 장면은 대부분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점이다. 복남이 복수를 결심하는 장면의 해무리가 대표적이다. “해무리가 지는 걸 기다릴 여유가 없었어요. 복남이가 입에 문 칼로 남편을 찌르고 쓰러졌을 때 죽은 딸 사진이 바람에 날려 복남이 얼굴에 붙는 장면도 그냥 바람이 도와준 거에요.”
칸 영화제행 티켓이 그때 기적처럼 찾아왔다. 프랑스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 편집장이자 비평가주간 선정위원인 샤를 테송. 그가 영화진흥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김복남…’을 보게 됐다. 칸에서의 반응은 엄청났다. 4차례 상영이 모두 매진됐고 그는 횟수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하지만 개봉까진 넉 달이 걸렸다. “배급사마다 하나같이 ‘우린 재미있는데 관객들은 안 좋아할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그는 “‘여성 관객이 불편해할 것 같다’는 얘기가 제일 이해가 안 되더라”고 말했다. “제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 어머니가 아직 사세요. 이 영화 찍으면서 어머니 생각 참 많이 났어요. 자라면서 ‘이 세상을 지키는 건 어머니들이구나’하는 생각을 늘 했거든요. 우리 어머니들, 정말 힘들게 사셨잖아요. 어머니들의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복남이가 대신 풀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김복남…’을 찍으며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라’는 김기덕 감독의 얘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기덕 사단’이라는 말은 제겐 떼어야할 꼬리표가 아니라 자랑스런 훈장이에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특수훈련’을 이수했다는 상징이니까요.” “악조건이 오히려 영화의 에너지를 더해준 것 같다”며 웃는 그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어디, 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있으면 떼어보라는 자신감 말이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