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벌초문화(伐草文化)의 참뜻>/구연식
우리 민족은 조상에 대한 음덕(蔭德)과 효(孝)의 상징은 여러 생활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와 민족들의 장례문화(葬禮文化)는 인간의 관혼상제(冠婚喪祭) 문화 중 종교적 개념과 이념 등 의식과 관계없이 가장 엄숙하고 최선을 다해 예를 다하는 것은 그중 상례문화(喪禮文化)이다. 그것은 망자(亡者)의 사회적 신분의 고하를 떠나 망자(亡者)에 대한 산자의 최선의 예의 존중이다. 더구나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조상에 대한 예의는 그 어느 민족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앞서 있다.
벌초(伐草)는 전국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으로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들이나 외지에 나간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한다. 주로 백중(百中) 이후인 7월 말부터 추석 이전에 이루어진다. 일부 지역에는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한다.
그 옛날의 벌초는 숫돌과 낫 그리고 벌초에 쓰일 간단한 도구를 가지고 조상님의 산소에서 풀을 베면서 조상님에 대한 음덕과 추모의 분위기 속에서 벌초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벌초 때 가장 나이 많은 집안 어르신이 나이 어린 후손들에게 비석을 가리키며 이 묘가 몇 대손 조상님이시고, 어떤 분이고, 무엇을 하였는지 집안의 가풍과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그러는 사이 중, 장년 자손들이 벌초를 마치면 모든 후손이 다 같이 조상 묘에 절을 하고 제를 지낸다. 그리고 조상님에게 올렸던 음식물을 벌초한 자리에 앉아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며, 그간 떨어져서 서로 간에 나누지 못한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후손 간에 정을 다지는 음복(飮福)의 시간을 가진다.
이처럼 벌초는 조상의 묘 앞에서 끈끈한 핏줄의 교감을 가져보는 일 년에 한 번씩 조상과 후손 간에 교감하는 날이다. 얼마나 흐뭇하고 풍성하며 정이 끈끈한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일까? 마음도 흡족해진다.
추석 전에 반드시 벌초를 끝내야 한다. 경기도에선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라고 하며, 제주도에선 ‘추석 전에 소분(掃墳)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라는 말이 있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드러난다.’ 이 말들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추석 전에 벌초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나온 말들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은 추석과 설을 들 수 있다. 추석과 설은 누구 때문에 만들어진 민족 명절이냐 하면 조상님에 대한 차례(茶禮)와 성묘(省墓)가 원래의 주된 목적으로 설정된 민족의 명절로 조상님에 대한 음덕(蔭德)과 효행(孝行)에서 비롯된 조상님들의 날이라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벌초(伐草) 문화가 산업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기피하는 세태가 최근 점점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국토의 효율적 관리와 장례문화의 더욱 나은 발전적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매장문화(埋葬文化)에서 화장문화(火葬文化), 수목장문화(樹木葬文化) 등으로 권장 유도하고 있다. 좁은 국토와 사후 묘지 관리 등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으로 본다.
벌초를 스스로 하는 자손의 집에는 그 옛날의 낫과 숫돌 대신 도시 농촌 구분 없이 예초기(刈草機) 한 대쯤은 필수로 준비하여 조상의 묘에서 벌초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벌초문화(伐草文化)를 억지로 유지하고 실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화장문화(火葬文化), 수목장문화(樹木葬文化), 납골묘문화(納骨墓文化) 등은 그대로 병행 유지해야 하나 현재의 벌초문화伐草文化)도 우리 민족문화의 장례와 효행문화의 일부분이니 쉽게 버리지 말고 유지 보존함을 주장하고 싶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는 세계 여러 국가가 자기 민족문화의 등재를 앞 다투어 하고 있다. 그 이유와 목적은 지구상에 그 문화는 그 민족 고유성이고 그 문화야말로 인류의 삶에 아름답고 좋은 보편적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는 이를 심사를 하여 영원한 인류문화의 한 부분으로 간직하여 유지 보수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의 장례문화(葬禮文化)와 더불어 벌초문화(伐草文化)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꼭 실어 우리 민족의 효행과 조상의 음덕 정신을 길이 간직해야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넘어가면서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벌초문화의 내면적 상징성은 꼭 이어져 나갔으면 한다. 부디 아름다운 우리 벌초문화(伐草文化)를 유지보수하고 조상과 자손에 효행의 근본이라 생각하여 올해에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형제자매와 자녀들과 함께 힘들고 어렵겠지만 추석 전에 조상님 산소 벌초(伐草) 한 번 해보길 권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