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건축물을 보는 눈
인류가 농경사회로 접어든 이래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건축물은 한 가족의 보금자리에서부터 국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그러므로 건축물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우리는 늘 여행지 국가의 멋진 건축물을 보고 놀란다. 어떤 것에는 웅장함에 놀라고, 또 어떤 것은 소박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탄복하기도 한다. 경주의 석가탑이나 다보탑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갖는 그런 탄복은 매우 주관적이고 찰라적이다. 더구나 그곳이 외국이라는 것으로 인해 건물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경우 이탈리아 피사의 탑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피사의 탑을 보고 느낀 점은 이미 숱하게 사진과 설명을 통해서 보고 들은 바를 넘지 못했다. 그저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정말 저 탑이 안 무너질까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그런 놀람은 분명 가우디의 건축물 자체가 주는 아우라일 테지만 나는 그저 그 건축물이 주변의 다른 건축물과는 뭔가 달리 고급지게 보인다는 것이 사실은 전부였다.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가우디라는 사람은 참으로 별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구엘 공원에서도 가우디의 파격을 볼 수 있었다. 공원은 동화마을 같았고, 그때 나는 그가 건축물을 가지고 세상을 농락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었다.
우리나라의 사찰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들이 써놓은 감상평이나 사찰의 유래 같은 것을 통해 피상적으로 얻은 지식이 내 감정이나 감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남는 것은 몇 장의 사진이 전부다.
그런데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은 그런 나의 건축물에 대한 피상적 보기에 일침을 가한다. 건축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책 제목 그대로 건축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을 극대화시킨다. 책은 건축물의 역사는 물론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 건축물이 갖는 특별함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일러준다. 거기에 사진과 함께 그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까지 얹어주니 눈 호강은 순전히 덤이다.
다만 건축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 본적이나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자주 특정한 내용에 대해 검색을 해봐야 하는 바람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물론 그런 흠은 전적으로 건축물에 대한 나의 무지 탓이지만 말이다.
더구나 그가 소개하는 건축물들 대부분은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만나지 못한 건축물이라 건축학도가 아닌 다음에야 실감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전적으로 저자의 입담에 의존하여 그림으로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라 조금은 아쉽다.
그러나 다행히도 로마의 ‘판테온’ 신전 내부구조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년 전 그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때 여행을 하면서 판테온 신전에서 고개를 젖혀 올리고 하늘로 뻥 뚫린 구멍을 보고 깊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처럼 그곳에 관한 세세하게 말할 재간도 없다. 다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부분이 없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건축학도가 아니라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맹인촉상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 건축물에 생각을 담다
어떻든 저자가 소개한 유럽의 건축물들은 20세기 건축 거장들의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유럽의 현대 건축사를 일별하는 소득도 있다. 건축에 사용된 재질, 구도, 공간 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어느 정도는 살필 수 있었다.
저자는 북아메리카의 건축물을 소개하기에 앞서 건축 재료 이야기를 꺼낸다. 즉 건축은 우리가 재료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들이 재해석되면서 이전에 없던 공간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첫 장에서 내가 살고 있는 송도 신도시를 디자인한 곳이 KPF라는 설계사무소라는 것을 알았다.
건축물들은 육격형도 있고, 원통형도 있고, 더러는 땅속으로 몸을 숨긴 것도 있었다.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싱가포르를 여행할 때 들은 말이 생각난다. 싱가포르는 같은 모양이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자랑이었다. 하기야 아파트가 없다면 그 말은 어디에서나 맞는 말일 것이다.
어떻든 책을 읽으면서 건축물도 점차 자연친화적으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건축 소재는 모두 자연에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건축물은 자연을 토대로 세워진다. 그러므로 건축물은 자연과 어울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유럽의 집들은 대체로 밝은 주황색을 지붕으로 삼는다. 그러니 조금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집들은 그 지붕으로 인해 강렬한 인상을 선사해준다. 그런데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언뜻 보아서 마을이 있는지도 모를 듯한 곳을 흔치 않게 본다.
물론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탓도 있겠지만 집의 외벽이나 지붕이 자연에 비해 도드라지지 않게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벽면이나 지부의 색깔이 결코 튀지 않은 채 자연에 순응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기 자동차로 여행을 하다보면 저 멀리 집들이 언뜻 보이더라도 그 규모를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얼핏 보면 아예 마을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이 자연과 어울려 있다면 글쎄 어떨까 궁금하기는 하다.
우리 집 앞에 최근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세워져 곧 개관을 앞두고 개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박물관이 바로 지붕까지 땅속에 묻혀 있는 구조다. 그리고 지붕에 해당하는 곳이 구불거리는 기둥이 둘러서 있다. 두루마리 인쇄용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조감도를 보면 실감이 나기는 한데 공원을 산책하면서 보는 박물관 건물은 반쯤은 땅에 묻혀 있어 그리 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은 내부를 보지 못했으므로 전체적인 조망은 어렵지만 기왕이면 저자 같은 전문가들이 자랑하는 건축물이었으면 좋겠다.
다. 송도 신도시
책을 읽다가 눈을 비비고 창밖을 내다보면 온통 사방이 고층 아파트다. 고층끼리 서로 어깨를 겨루고 있는 탓에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벽 속에 갇히고 만다. 처음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서해 바다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바다가 사라졌다.
송도 신도시는 천국을 지향하는 도시인지 온통 고층아파트들이 하늘에 닿을 기세다. 그것을 저 멀리 외곽에서 볼 때는 멋져 보일지는 몰라도 막상 그 안에 사는 우리에게는 숨 막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뉴욕에서 본 마천루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혔다. 뾰족한 곳이 있는가 하면 넓적한 곳도 있었고, 높이 또한 제각각의 건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 전망대에서 본 맨해튼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송도는 높이마저 획일이다.
하와이의 언덕 위의 그야말로 하얀 집들은 모두 공평하게 바다를 공유하고 있었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송도의 아파트들은 키높이 구두를 신은 것처럼 높이 경쟁으로 오로지 마음껏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늘뿐이다. 그래서 자주 숨이 막힌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이아 마을’은 온통 백색 회벽이다. 일전에 스페인이 ‘미하스’라는 마을이 떠올랐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온 마을이 온통 흰색으로 되어 있었다. 지중해의 파란 빛깔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해비타트 67은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패널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은 아파트이다. 어디선가 어느 대학의 기숙사도 이처럼 패널로 지은 곳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건물을 보다 문득 우리의 도회지 학교도 이처럼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초등학교는 원도심의 동공화로 폐교하는 곳이 생기기도 하고 학교 규모에 비해 전교생 수가 급감하기도 한다. 이 경우 건물 관리비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건물을 패널 형태의 조립식으로 지을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학생 수 감소로 폐교실이 발생할 경우 그 교실들은 학생수가 폭증하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그 곳의 학생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채택은 되지 않아 아쉬웠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런 방법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