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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水審判(홍수심판)과 바벨塔(탑)의 靈的(영적)인 敎訓(교훈)을 아는가?(창 6:5~8)
◾副題目(부제목): 오늘날 목자들과 선교사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도 수많은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罪惡)이, 세상(世上)에 관영(貫盈)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計劃)이, 항상(恒常) 악(惡)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恨嘆)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創造)한✔사람을, 내가 지면(地面)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六畜)과, 기는 것과, 공중(空中)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恨嘆)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恩惠)를 입었더라".
◾說敎大指(설교대지)
1. 洪水審判(홍수심판)
2. 바벨탑(塔, Tower of Babel).
3. 洪水審判(홍수심판)과 바벨탑(塔, Tower of Babel)의 교훈.
🔥 예화
1. 하나님의 심판은 진행형이다
2. 나만의 바벨탑
3. 경고/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 보너스 "시" 홀로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하나님은 태초에, 온 우주와 천지를 창조하셨다. 특별이 창조의 극치인 인간을 창조하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들의 죄는 차고 넘쳤다. 인간들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독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두 번씩이나 한탄을 하시고 근심을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은 물론, 코로 호흡을 라는 모든 생물들을, 홍수심판으로 쓸어 버리기로 작정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노아의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그 결과 전무후무한 홍수심판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 작금의 세계를 보라! 불신자는 그렇다고 치자. 목자들을 보라! 선교사들을 보라! 신학자들을 보라! 평신도들을 보라! 홍수 심판의 이전의 사람들에 비해서,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는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홍수심판과 바벨탑을 쌓은 사건과, 두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에 대해서 살펴 보자.
1. 洪水審判(홍수심판)
✔ 홍수(洪水, Flood Deluge)는 히브리어로 ≪מַבוּל, mabul≫과, ≪מַיִם, mayim≫의 합성어이다. 헬라어로 ≪κατακλυσμος, kataklusmos≫이다.
영어로 Flood(Deluge)이다. 홍수는 큰 물과 강과, 특별히 나일강 같은, 큰 강이 범람한 상태(렘 46:7, 암 8:8)를 말한다.
홍수는 유브라데 강(수 24:2)과, 요단 강(시 66:6) 등의 물이 범람한 상태를 말한다(단 9:26, 나 1:8, 마 7:25, 27, 눅 6:48).
홍수는 또한, 바다와 해류 등(시 24:2, 욘2:3)의 범람을 의미한다. 홍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노아 때의 대홍수이다.
※ 홍수의 원인
▪제 1차적인 원인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임한 것이다(창 6:5~13).
▪제 2차적인 원인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기 때문이다(창 7:11).
※ 홍수심판의 물의 종류
▪첫째는, 바다의 물이다.
▪둘째는 40일 동안 주야로 내린 비이다(창 7:11~12).
▪셋째는, 땅의 샘들이 터진 것이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히게 되었다. 물이 불어서, 15규빗(7.2m)까지 올라 왔다. 땅 위의 생물(새, 육축, 들짐승, 땅에 기는 것, 지류 등 모든 사람)들이 멸절되었다.
그러나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생물들은 살아 남았다(창 7:19~23). 물은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기까지, 150일 동안이나 지상에 창일했다(창 8:3~5).
홍수심판의 목적은, 패괴해진 인류를 멸하는데 있었다(창 6:7, 13, 6:~9:). 노아 홍수에 대한 기사는, 바벨론의 홍수 이야기와 유사한데가 있다.
이것이 창세기의 기사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노아의 기사편이, 훨씬 더 윤리적이고 신학적이기 때문에, 영적인 기초가 실로 명백하다.
신약에 있어서도, 노아 홍수의 이야기는, 죄로 인한 세상에 대한 심판에서, 구원을 을 받는, 세례라고 말하고 있다(벧전 3:20, 벧후 2:5). 재림의 날에 대한 경고로서도, 말하고 있다(마 24:38, 눅 17:27).
✔ 고고학상의 주목할만한 성과로는, 우르와, 기스와, 우르크 파라(길가메슈의 홍수설화의 무대)와, 니느웨 등에서, 홍수의 충적층이 발굴된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기원전 4천년기에서 2천년기 전까지, 별개로 생겨난 범람들일 것으로, 고고학자들도 인정을 하고 있다.
🔥 하나님의 심판은 진행형이다
✔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다. 방주를 물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산 곡대기에서 지었다. 축구 운동장보다 더 큰 방주를 지었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람들은, 산 곡대기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비웃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욕구를 따라서 살았을 뿐이다.
✔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전무후무한 홍수가 시작되었다.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가족은, 홍수 심판을 통해서 인류의 두 번째 시조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은,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 하나님을 불신한 사람들은, 노아에게 콧방귀를 끼면서, 자신의 쾌락만 탐닉하던 그 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들의 삶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직접 서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날 비로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 심판의 원칙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면, 우리의 삶 속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의 열매가, 영원토록 현재 진행형으로 결실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욕망을 좇아서, 욕망의 씨앗만을 뿌리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이, 외형적으로 아무리 거창하게 보여도, 사실은 허망한 물거품만 쌓는 것이다.
2. 바벨탑(塔, Tower of Babel).
바벨탑은 영어로, Tower of Babel이다.바벨탑의 기사는, 창세기 11장 1절~9절에 나온다. 홍수 후의 인간의 문명의 하나의 도달점이, 바벨탑의 간결한 기사에 의해서, 훌륭하게 설명되어 있다.
※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두 가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있다.
▪첫째, 어찌하여 지상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둘째, 어찌하여 고대 바벨론의 주민들은,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는, 거대한 구운 벽돌의 탑(塔)인,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웠는가?
✔ 이 물음과 대답에서, 성경의 기자는, 심원한 영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탑은 인간의 위대함과, 하나님 없이도 인간의 일치를 만들 수가 있다는, 세속적인 야심을 상징하고 있다.
✔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에, 심판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폭력적인 수단에 의하지 않고, 다만 언어를 혼란케 하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언어가 혼잡해 지자, 상호 이해의 수단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각자 흩어져서, 멀리 떠나간 것이다.
✔ 오순절의 성령님의 강림사건은, 바벨탑을 쌓을 때에, 혼잡캐 했던 언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역행(逆)이었다(행 2:1~11).
✔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하나의 언어가, 수많은 언어를 달리하는 각 민족의 사람들에게, 마치 모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바벨에서는 하나의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순절에는, 하나의 언어로 수많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모국어처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 하나에서 여럿으로가, 바벨의 분열의 비극이 되었다. 그러나 여럿에서 하나로가, 오순절의 축복이 되었다.
성령님에 의한 참된 일치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창세기 10장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여러 민족들의 列記(예기)가 있다.
바벨탑의 기원은, 바빌로니아의 도시 국가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바벨탑은 피라미트 형(形)의 높은 탑으로서, 보통은 7층루(七層樓)로 되어 있다. 신원(神苑)의 중앙에,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 바벨탑의 정상에는 신전이 만들어 지고, 거기서 제의가 행해졌다. 7층루는 일곱가지 색으로 칠하고, 5개의 유성과, 태양과, 태음과, 그것에 상당하는, 신의 상징으로 다음과 같은 관계였다.
▪제 1층, 토성(土星), 니니브(Ninib), 흑색(黑色).
▪제 2층, 목성(木星), (마르두크Marduk), 등황색(橙黃色).
▪제 3층, 화성(火星), 네르갈(Nergal), 심홍색(深紅色).
▪제 4층, 태양(太陽), 샤마슈(Samas), 황금색(黃金色).
▪제 5층, 금성(金星), 이슈타르神(Istar), 담황색(淡黃色).
▪제 6층, 수성(水星), 느보神(Nebo), 남색(藍色).
▪제 7층, 태음(太陰), 신神(Sin), 백은색(白銀色).
✔ 바벨론이 바벨탑을 발굴한 결과, 바벨탑은 "마르두크"의 신전(神殿)인 에사길라(Esagila=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의 북방, 에테메난키(Etemenanki=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지구라트였다.
바벨탑은 슈메르인에 의해서, 기공된 것이다. 결국에는 셈족의 침입에 의한, 정치적인 변동 때문에, 준공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완성인 바벨탑의 거대한 유물은, 오랫동안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지금까지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 있다.
"산헤립"(Sennacherib, 704~681)이 바벨론을 점령했을 때에, 바벨탑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공을 하지 못했다.
"에살핫돈"(Esarhaddon, 680~669)과, "앗슈르바니팔"(Asshurbanipal, 668~631)도, 바벨탑의 재축(再築)을 시도했으나, 모두다 실패로 끝났다.
"나보폴랏살"(Nabopolassar, 626~605)도, 바벨탑의 공사를 계속했으나, 성공을 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 천하를 재패핸 수많은 왕들이,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 바벌탑의 완성은, "느브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605~562)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이다.
✔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 바벨탑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흙벽돌 절취장(切取場)이 되어 버렸다. 바벨탑의 기초였던 부근은, 현재 불과 91.5㎡의 구덩이만 남아 있다.
🔥 나만의 바벨탑
미국의 "더글러스 말록"(Douglas Mallocke)이라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그대 만일 큰 길이 되지 못하겠거든, 아주 작은 오솔길이 되어라. 그대 만일 태양이 될 수 없으면, 큰 별이 되어라. 실패와 성공은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 되더라도, 가장 좋은 것이 되어라.”
가장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은, 가장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이다. 가장 좋은 인생을 위해서는, 삶의 재료인 시간과 물질과 건강과 꿈과 비전을,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께 드릴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영광의 무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자연적인 활동들, 심지어 가장 비천한 활동들이라도, 하나님께 바치면 받아 주신다.
그러나 제아무리 고상해 보이는 일이라 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악한 것이 되고야 만다고 했다.
✔ 우리의 힘만 의지하면, 우리만의 바벨탑을 쌓거나, 아니면 결국에는, 터진 웅덩이(렘 2:13)를 만들게 될 것이다.
✔ 수많은 목자들과, 선교사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이, 홍수 이후의 사람들처럼, 얼마나 많은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오매! 어째야 쓰까?
※ 이단들과 사이비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정상적인 교단과 교회와, 타락하고 변질된 목자들이, 얼마나 높은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첫째, 재물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둘째, 명예와 감투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셋째, 영광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넷째, 내가 복음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다섯째, 자기 의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여섯째, 외식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일곱째, 귀족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오, 주여!!
3. 洪水審判(홍수심판)과 바벨탑(塔, Tower of Babel)의 교훈
하나님의 홍수 심판 때에, 모든 육체(창 6:13)를 다 멸절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5절에 요약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을 하신 것은, 마음 속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인해서, 5가지 사악한 현상이 일어 났다.
▪첫째, 불법적인 성관계가 널리 성행했다(1~2).
▪둘째, 사람들의 악함이 세상에 관영했다(5~).
▪셋째, 마음 속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5~).
▪넷째, 온 땅이 하나님 보시기에 썩어 있었다(6:11).
▪다섯째, 온 땅에 폭력이 난무했다(6:11,13)
✔ 노아 당시의 사람들의 폭력과 사악함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결과였다. 폭력과 부패의 가장 혐오스런 증거는, 바로 성적인 타락에서 나타났다.
✔ 남자들이 여인들을, 이기적인 방법으로 착취했다. 여기에 나오는 "네피림"과 "용사"에 대한 언급(6:4)은, "성적인 착취"를 내포하고 있다고, 성경 학자들은 보고 있다.
당시의 네피림들은, 여인들을 강제적으로 성추행을 했다. 용사들이란 선한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한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13절과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 멸하기로 작정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9장에 보면,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하셨다(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1~)
✔ 그러나 인간의 부패와 죄악은, 홍수 심판이 있은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11장의 유명한 "바벨탑 사건"이다.
사실 이 바벨탑 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멧시지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인 전쟁의 현장 속에 들어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 바벨탑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종교적인 인본주의이다.
▪둘째, 일부다처 주의이다.
▪셋째,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다.
창세기 10장 10절에 나오는, 바벨(론)의 이름은, "혼잡"(창 11:9)이라는 뜻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혼잡해 진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홍수 심판에서 바벨탑 사건까지의 기간이, 약 100년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 창세기 10장 8절에 보면, "니므롯"이란 사람에게서, "바벨론 나라"가 기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바벨(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신인 사탄이, 인간의 부패한 육체 안에, 건축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인간의 교만과, 세상적인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때부터 바벨론은, "교만"과 "불경건"의 화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처럼 바벨탑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은, 인본주의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 경고/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 미군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기 전에, 여러 번 경고의 전단지를 투하했다. 어서 속히 멀리 멀리, 피난을 가라고 했다.
“히로시마 시민 여러분! 1945년 8월 6일 이전까지, 50Km 밖으로 피난을 가라. 그날 원자탄이 투하될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어서 빨리 피하라”.
✔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코웃음 쳤다. 전쟁에 패하게 되니까, 공갈을 친다. 30만 명을 죽이는 폭탄이, 어디 있는가? 피난을 갈까? 망설이던 사람들도, 두고 보자고 하면서, 주저 앉아 버렸다.
✔ 미군이 뿌리는 전단지를 보고서, 멀리 피한 극소수의 사람들만, 피난을 가서 살았다. 그러나 남아 있던 사람들은, 거의다 죽었다.
✔ 마지막 심판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실 그 날이 오면, 그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 그 누구도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 대로, 진정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여야 한다. 미루지 말로, 하루라도 빨리 그리해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을 할 때에, 참된 기쁨이 넘치게 된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豫備)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人子)가 오리라"(마 24:44).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洪水審判(홍수심판)과 바벨塔(탑)의 靈的(영적)인 敎訓(교훈)을 아는가?
오늘날 목자들과 선교사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도, 수많은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전무후무한 살육의 洪水審判(홍수심판)을, 사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예고를 했건만, 콧방귀를 끼면서 비웃은 것을 아는가?
홍수의 심판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벨탑(塔, Tower of Babel)을 쌓은 사람들은, 작금의 목자들과 교인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아는가?
洪水審判(홍수심판)과 바벨탑(塔, Tower of Babel)의 교훈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과, 더 큰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시" 홀로
군중들과 함께 있으면, 군중들이 보인다.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가족들이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친구들이 보인다.
그러나 홀로 있으면, 비로소 하나님이 보인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
다윗은 광야와 산과 동굴에서,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그늘에서,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겟세마에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홀로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홀로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다.
바울은 아라비야 광야에서, 홀로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다.
0 0 0는 지금까지 홀로 있지만, 과연 예수님을 만났는가? 오, 주여!!
※ 이처럼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광야와 산과 들에 홀로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모두다 홀로 있기가 싫어서,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만나고 있다.
존경하는 선배 목자님이 보내 주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