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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정복하라
- 풀턴 J. 쉰 대주교
마르그레테 솔티크
풀턴 J. 쉰 대주교(1895-1979년, 미국 뉴욕 로체스터 교구의 주교)는 누구인가? 그는 두 명문 대학에서 각각 박사학위(철학과 신학)를 취득했고,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였다. 미국 NBC의 매주 일요일 밤 라디오 방송 'The Catholic Hour'를 1930년에 시작했는데, 20년간 이 방송은 매주 400만 명의 청취자를 모아들였다. 1946년 주간지 <TIME>은 그를 “미국 가톨릭 교회의 유명한 선교사, 황금 목소리의 풀턴 J. 쉰 신부"라고 표현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은 매주 3,000-6,000통의 청취자 편지를 받았다. 그다음에 열린 새로운 매체인 TV 방송에서 최초로 방송되는 가톨릭 미사의 해설을 담당하였다. 그가 진행하는 TV 방송도 미국에서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세계 여러 저명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고, 연설 능력이 탁월하며, 집필한 저서가 60권이 넘는다. 지금 나열한 것은 그에 관한 사실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매일 성체 앞에서 주님과의 거룩한 시간을 가지며 침묵 속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풀턴 J. 쉰 대주교는 미국 최고의 방송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에미상을 1952년에 수상할 만큼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한 대중적인 사랑도 받았다. 에미상을 받고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대본 작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의 인품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그는 훌륭한 연설가였으며, 복음을 위한 최신 도구(당시에 텔레비전은 혁신적인 매체였다)를 완벽하게 활용했다. 매우 대중적으로 활동하면서도 복음의 진리를 타협 없이 선포한 인물이었다.
불멸의 영혼을 잃는다면...
풀턴 J. 쉰 대주교는 학식이 풍부하고 현대 문제를 정확히 분석할 줄 알며, 세상과 대화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강연자이며 신앙과 교회의 수호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신학적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며, 이를 일상생활의 현실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그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현대인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하느님 없는 세상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하느님이 없는 인간의 삶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며, 태양 없이 자라는 해바라기의 삶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서구 문명의 위치를 분석하며 그가 한 말은 오늘날의 세상에는 경고의 메시지와도 같다.
"세계대전 이전에는 진보라는 단어의 첫 철자를 대문자로("Progress") 쓰지 않은 서적이나 신문 기사, 연설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망과 번영이 만연했다. 온 세상이 힘차게 전진하고 높이 날아올랐으며, 진화의 리듬에 맞춰 물질적 번영과 지상의 행복이라는 황금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전쟁이 발발했고 온 세상을 도살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명 없이 행복하고 정의로운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허황된 유토피아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 실린 다음 구절을 떠올렸다. “정치적, 경제적 쇄신을 위해서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호소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병든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이 문명의 영혼이다. 세계는 끔찍한 죄에 빠져 있다. 이 세계는 정화되어야 한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헌법이 중요하다, 진보해야 한다. 이런 상투적인 구호를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다. 이런 것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는 용어사전에 '하느님'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추가해야 한다. 국가 개발 5개년 계획 등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계획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트랙터로 채운다 한들, 불멸의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사람을 사람으로서 보는 사람
풀턴 J. 쉰 대주교는 많은 사람에게 회심을 일으킨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려 했고, 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고 노력했다. 무신론자, 지식인, 재계와 정계의 유명인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모두가 풀턴 대주교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어떤 이들은 진지하게 개종할 마음에서, 어떤 이들은 그저 호기심에서 지적 논쟁을 벌이고 주장을 반박하려는 의도로 그를 찾아왔다.
그는 그러한 다양한 만남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했으며, 전 세계에서 오는 편지에 정성스럽게 답했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의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 겪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의 회심은 그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다. 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쳐부수기 위해 싸웠지만, 마음으로는 그 추종자들이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미국 공산당의 주요 인물인 벨라 도드(Bella Dodd)가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사건은 유명하다. 대주교는 그녀를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며 세례성사를 받도록 도왔다.
또 다른 개종 사례는, 공산주의 신문 <Daily Worker>의 편집장인 루이스 부덴츠(Luis Budenz)다. 처음에 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오류를 첨예하게 지적하고 비판한 풀턴 대주교를 원수처럼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마음이 바뀌어 대주교에게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여달라고 청할 정도가 되었다. 부덴츠의 입교 과정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대주교는 몇 달간 밤마다 그를 몰래 찾아가 교리를 가르쳤다. 그래서 미국 공산당과 대중들은 그의 개종을 세례 당일에 가서야 알았을 정도였다.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과의 만남도 감동적이다. 어느 젊은 여성이 성당에 와서 고해실에 앉아 있었다. 대주교가 고해를 들으려고 하자 그녀는 고해성사가 아니라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죄를 고백할 마음은 없고, 단지 어머니가 시켰기 때문에 성사를 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거라고 말했다. 대주교는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마음을 열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떠난 다음, 대주교는 성사를 보기 위해 고해실에 들어오는 다른 신자들에게 어떤 특정한 죄인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업무를 모두 마치고 밤 9시쯤 되자 그는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자정을 30분쯤 넘겼을 때, 낮에 만났던 그 여성이 갑자기 성당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녀는 즉시 죄를 고백했고 하느님과 화해했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대주교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키티라는 어떤 젊은 여성을 구구해 달라는 긴급한 부탁을 받았다.
키티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생계를 마련했는데, 그렇게 생긴 돈은 남편에게 넘겨줘야 했다. 돈이 충분하지 않은 날이면 남편에게서 심한 구타를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했던 것이다. 대주교는 병자성사를 위한 채비를 갖춘 다음 열악하기 짝이 없는 키티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대주교는 어서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다그쳤지만, 키티는 자기가 뉴욕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라면서 한사코 고해를 거부했다. 하지만 대주교는 다급한 설득 끝에 결국에는 그녀의 고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독 때문에 그녀가 의식을 거의 잃어버리기 직전에 가까스로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의식을 회복하고 살아났던 것이다. 이후에 키티는 하느님 자비의 사도가 되어 자신이 거리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쉰 대주교가 다른 용무로 런던에 들렀을 때도 특별한 만남의 기회가 있었다. 아침에 성당 문을 열자 어느 젊은 여성이 술에 취한 채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때는 1월이었고 추운 밤이 막 지났기 때문에 대주교는 그녀에게 차를 대접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뮤지컬 배우였다. 그녀는 세 명의 남자에게서 도망쳐 나왔고 술을 마신 것도 그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대주교는 그녀에게 그날 오후 공연 전에 성당에 한 번 더 들러 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권유하지 않겠다는 조건이면 초대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대주교는 고해성사를 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윽고 그녀가 성당을 다시 찾았을 때, 대주교는 그녀에게 성당 안에 걸린 렘브란트와 반 다이크의 회화를 함께 감상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이후에 벌어진 일을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성당을 걸으며 고해소 앞을 지나갔을 때 나는 그녀를 고해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고해소에 들어가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고해를 권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2년 후에 나는 런던의 한 수도원에서 그녀에게 수도자 수건을 씌워주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수도원에서 살고 있다." 이 외에도 풀턴 대주교의 삶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는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비범한 재능을 지녔다. 그는 언제 관심을 보이고 적절한 질문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상대방의 양심을 뒤흔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은총의 샘인 성사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각 개인의 회심은 모든 인류를 하느님께로 이끈다는 교회의 사명을 실현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소명을 생생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알프스 꼭대기에서 고래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고래를 가능한 한 빨리 그에게 알맞은 환경으로 돌려보내려 노력할 것이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도 바로 이와 같다. 세상은 도덕 원칙과 종교적 심성을 갖춘 본래의 환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를 윤리적 질서를 배제하고 논의한다면, 이는 알프스 정상에서 고래를 살게 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일이 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 체제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과 정신의 변화이다. 새로운 마음은 오직 십자가 아래에 서만 찾을 수 있다. 오직 십자가 아래에서 모든 것이 올바른 척도와 가치를 얻게 된다. 세상이 골고타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만 하면, 모두들 절망에 빠져 파멸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 그 자체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교훈
풀턴 J. 쉰 대주교는 세상에서의 명성도 높았지만, 반면 그의 삶에는 십자가와 고통도 없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특별한 소명이며 축복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강론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십자가 없이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노력하지 않고 성취할 수 있는 목표는 없으며, 투쟁 없이 얻어지는 승리도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감히 십자가를 피하지 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미사 중에 하나가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죄를 정당화하거나 죄를 부정하거나 죄를 설명하는 데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라는 놀라운 역설을 체험하려면, 십자가 아래에 서야만 한다.”
그는 세상이 십자가를 피해 달아나고 죄의 관념에 무뎌지는 것은 세상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징표라고 경고했다.
“우리 문명이 처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비유를 찾는다면, 우리가 반쪽짜리 빛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즉, 우리는 빛이 사라지고 서서히 어둠이 덮쳐오는 곳에 살고 있다. 우리는 아직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세상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은 여전히 400년 전(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신에게서 떼어내기 시작한 시대) 교회가 마련한 영적 자본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명이 가진 자비롭고 고결하고 선한 모든 것은, 영속하는 그리스도교의 원리가 투영된 영상이며 그리스도 십자가의 파편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모습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다."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려는 투쟁은 주로 영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각 인간의 영혼이 곧 싸움터다. 이 때문에 풀턴 J. 쉰 대주교는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정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에도,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깊게 다지는 일에 집중했다.
풀턴 쉰 대주교와 교황 비오 12세의 만남
"오 선하신 예수님! 저는 세상의 지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학이나 자연이나 혹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4차원을 알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별들의 비밀을 파헤치거나 바다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저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사랑의 길이와 너비, 높이와 깊이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예수님! 오직 그럴 때에만 가장 역설적으로 제가 참으로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는 풀턴 쉰 대주교의 기도)
성체 안의 주님과의 거룩한 시간
풀턴 J. 쉰 대주교는 사제서품을 받은 날, 매일 성체 앞에서 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결심했다. 수많은 업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이 약속을 지켰다. 그는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단둘이 만나는 시간이 자신의 재능과 사제 직무의 열매의 원천이라고 토로한다. 이러한 그의 헌신 때문에 비오 12세 교황은 쉰 대주교를 “이 시대의 예언자"로 칭송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쉰 대주교를 뉴욕 대성당에서 단 한 번 만났다. 그때 대주교는 이미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교황이 건넨 말은 대주교의 삶의 요약처럼 들린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정말 잘 쓰고 잘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교회의 충실한 아들입니다."
대주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 덕분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과의 거룩한 시간이 나의 소명을 지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성경에는 사제가 성체 안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대한 많은 증거가 실려 있다.”
그는 매일의 성체조배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성시간은 나에게 산소 탱크와 같다. 세상의 탁한 공기 속에서 성령의 숨결을 새로이 느끼게 해준다. 물론 아무런 유익이 없거나 영적 친밀감이 덜하다고 느낀 때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주인이 부를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문 앞에 누워 있는 경비견처럼 여겼다.”
쉰 대주교는 생전에 가톨릭 사제들은 물론이고 개신교 성직자들의 피정 지도도 맡았는데, 그들에게도 그리고 부부와 많은 평신도들에게도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과의 거룩한 시간, 곧 성시간을 가지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그의 권고를 들은 사람들에게서 수천 통에 달하는 편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성시간의 방법과 그로 인한 은총에 대해 질문했다. 이는 성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성체조배는 결핵 환자가 공기가 맑고 햇빛이 드는 좋은 장소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죄라는 병균은 '세상의 참된 빛' 아래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풀턴 J. 쉰 대주교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성체성사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다. 그는 1979년 12월 9일,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Love One Another! no. 62>에서 박규희 옮김
(마리아지 2025년 1•2월호 통권 24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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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