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26일... 역사적인 농구경기가 벌어졌습니다.
래리 버드가 이끈 인디애나 주립대가 매직 존슨의 미시간 주립대와 NCAA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 것이죠.
온 미국이 들떠 있었습니다. 닐슨 리서치에 따르면, 이 날, 미국인들 24.1%가 TV로 이 경기를 시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중 3이었던 저도 AFKN TV 생중계를 통해 새벽시간에 이 경기를 보고 학교에 갔습니다.
이 명 경기에서 몇 장면만 추려봤습니다.
1. 경기 시작하자마자 터진 매직의 1인 속공
매직 존슨이 대학 때도 포인트가드였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팀을 올라운드 플레이로 우승시킨 후 미시간 주립대를 선택한 매직은 이미 대학 초년병 시절부터 콧대가 매우 높았습니다. 자신의 볼핸들링과 플레이메이킹 실력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기에 그는 대학 1년생부터 자기를 가드로 써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히스코트 감독은 매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의 이름을 팀의 공식 가드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경기를 보면, 매직은 포인트가드가 아니었습니다. 미시간 주립대 선발라인업에는 두 명의 빠른 백인 단신 가드들이 이미 있었습니다. 마이크 브르코비치와 테리 도넬리가 그들인데, 이들이 볼운반하고 드리블 치며 패스 넣어주고 외곽에서 슛 때리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매직은 뭘 했느냐? 매직은 현 르브론 제임스처럼 플레이 했습니다. 때에 따라선 포스트업 공격과 수비도 하고, 어떨 때는 본인이 공 잡고 플레이메이킹을 하거나 돌파도 했고요.
팀 로스터엔 가드로 올라가 있었지만, 사실 매직은 3번 포지션에서 올라운드 플레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그냥 '백코트 두 명' 이었지,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로 구분짓던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2. 중장거리 슛으로 경기를 풀어나간 '센터' 버드
래리 버드.
버드는 대학시절 센터였습니다.
그러나, 매직이 공식 포지션만 가드였고 실상은 올라운더로 뛰었던 것처럼, 버드도 무늬만 센터였지 사실상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습니다.
팀에서, 아니 당시 NCAA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리바운더였으며, 프론트코트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외곽슈터였고, 무엇보다도 그는 누구보다 창의적인 패서였습니다.
3. 매직의 앨리웁 패스를 허슬로 나꿔채는 버드
멋진 플레이죠.
매직이 속공에서 앨리웁 패스 넣을 것이란 걸 먼저 읽고 달려들어가 패스 차단하며 정확히 팀원에게 공을 건네주는 버드.
4. 인디애나 주립대를 멱살잡고 하드캐리한 버드
이 두 팀의 전력을 살펴보면 큰 차이가 납니다.
미시간 주립대는 매직 존슨을 비롯,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았습니다. 파워포워드 제이 빈센트는 80년대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준수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였습니다 (커리어 평균 15.2점, 5.5리바운드). 센터 그렉 켈서 역시 해당시즌 18.8점, 8.7리바운드로 활약하며 매직 존슨에 준하는 활약을 펼친 선수였으며, 디트로이트와 시애틀 등에서 프로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가드 마이크 브르코비치는 NCAA 결싱전에서 뛴 최초의 캐나다인으로서 그 역시 NBA에 드래프트가 되었습니다.
반면, 인디애나 주립대는 알려져있는 선수가 래리 버드 하나 뿐이었습니다. 바로 전 경기인 듀크대와의 준결승에서 버드는 37득점을 혼자 해내며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았죠. 미시간 주립대의 결승전 전략은 딱 하나 - 래리버드 봉쇄였습니다.
5. 래리 버드 봉쇄를 위한 미시간 주립대의 매우 효율적인 수비
이 경기에서 미시간 주립대는 '박스 앤 원'과 '존 디펜스'를 결합시킨 '매치업 존 디펜스'를 들고 나와 버드와 인디애나 주립대를 괴롭혔습니다.
분명히 지역방어인데 버드가 공만 잡으면 누군가가 잽싸게 협력 또는 함정수비를 들어가서 버드에게 공간을 안 내주는 전략이었죠. 버드가 패싱이 좋은 선수이니 이걸 도와주며 버드로부터 잘 받아먹을 선수 한두 명만 있었어도 이런 수비는 깰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인디애나 주립대엔 그 정도 레벨의 선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드 혼자 수비 두세 명씩 달고 슛 쏘고 리바운드 잡고 수비까지 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죠.
사실, 이러한 상황이 미시간 주립대에 우승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매직과 버드 사이엔 레벨 차가 없었으나, 양 팀 전력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6. 매직 투 켈서 앨리웁
그림같은 속공 플레이.
센터 그렉 켈서는 리바운드와 블락샷도 훌륭했지만, 이렇게 기동력과 운동능력까지 좋아서 매직과 콤비 플레이를 자주 펼쳤던 센터입니다.
7. 버드의 열정과 영리함
본인이 공을 잡으면 두세 선수가 들러붙으니 골밑에서 공을 잡자마자 얼른 베이스라인을 타고 나와 턴어라운드 샷을 성공시키는 버드입니다.
버드 혼자 너무 집중 수비를 받아서 야투율도 안 좋았고 체력도 바닥이 날 지점이었습니다.
8.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은 매직의 기브-앤-고 덩크
후반 막판에 터진 이 3점 플레이로 승부의 추가 기울었습니다.
이 파이널을 상징하는 유명한 플레이로써 아래 사진과 함께 많이 알려져 있는 플레이죠.
9.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욕과 근성을 보여주는 버드
얼마나 지기가 싫었으면...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였을 텐데도... 매직에게 달려가 공 한 번 빼앗아 보겠다고 무리한 플레이를 하고, 바이얼레이션에 걸리고.
영상으론 안 남아있지만, 이 경기는 버드가 농구인의 커리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경기였습니다. 경기가 자신의 패배로 끝나자 벤치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하죠.
결국, 화제의 이 경기는 75:64, 매직과 미시간 주립대의 우승으로 귀결이 났습니다.
매직은 24득점을 했고 파이널포 MVP에 선정됐으며, 버드는 19득점, 13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1978년, 차가운 냉전시대에, 친선경기 방문차 미국에 온 소련 국가대표팀을 상대할 미국 국가대표팀을 이끈 두 영웅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80년대 NBA 농구를 양분한 주인공들의 대 서사시가 펼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맞붙은 1라운드 승리는 매직에게 돌아갔습니다. 버드는 5년을 기다렸고, 결국 1984년 NBA 파이널에서 매직의 레이커스를 꺾고 본인의 두번째 NBA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8년 뒤, 이 둘은 다시 한 번 대표팀에서 만나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첫댓글 Green Bird vs Yellow Magic
NBA 에서 몇 안되는 라이벌 스토리
두선수는 미국대 빼고는 항상 싸워옴 ㅋ
이런 라이벌 또 나와라~!!
60년대 러셀 vs 체임벌린
80년대 버드 vs 매직
2000년대에 기대를 해봤었는데...
2000년대에 기억에 남는 건,
팀 디트로이트 vs 팀 스퍼스.
하지만 이제는 서로 뭉쳐버리죠...
@SenesQ 저는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트렌드입니다.
@Doctor J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야니스의 우승은 너무나 대단했다고 봅니다 올드스쿨한 농구맨탈을 사랑하는 저로썬 야니스의 우승 인터뷰가 영원히 기억날거 같습니다
@Quin Snyder 야니스의 우승.. 인정합니다. 저로 하여금 다시 NBA를 보게 만들었어요.
풀게임으로 두세 번 정도 본 경기인데 버드가 MSU의 지역방어에 정말 너무 고생하는 경기죠. 버드를 도와줄 확실한 2옵션 하나만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크 어과이어가 이끈 듀크대도 엄청 강팀인데 버드 혼자의 힘으로도 꺾을 수 있었죠. 하지만 미시간 주립대의 전체적인 팀 역량은 버드 혼자선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잘 봤습니다. 버드-매직 이야기는 보고 또 봐도 항상 즐겁습니다
버드가 만약 인디애나대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밥 나이트 감독과 함께 했으면 혹시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네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 중 하나에 속할 인물들의 대결이 아마추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경쟁 서사가 더 탄력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심지어 둘다 출신지 대학에서 뛰었으니 지역 라이벌 구도까지 완성했고요ㅎㅎ
동의합니다. 사람 많은 곳과 대도시를 싫어한 사람에게 뭘 더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바비 나이트 / 래리 버드 조합이었다면, 매직이 아니라 버드의 인디애나 대학이 1~2회는 우승했을 것 같습니다. 버드의 결정에 바비 나이트 감독은 땅을 쳤죠.
오히려 버드의 그런 올드스쿨한 고집과 취향(?)덕에 셀틱스에서 끝까지 커리어를 마감했고 이후에도 전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고향 인디애나에서도 농구단을 이끌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저런 선수가 팀의 리더라면 너무 든든했을거 같네요
동감입니다.
직접 본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두 선수의 컬러? 플레이 성향? 아무튼 그런 것들이 명확히 다른것도 라이벌리에 큰 영향과 재미를 주었을거 같습니다. 3번 플레이는 진짜 멋있네요. 버드는 알면 알수록 강력한 상남자가 느껴집니다. 르브론이 역대 SF 2위라고 하는데에 동의하기 어렵게 만들어요.
버드는 버드대로, 르브론은 르브론대로, 어빙은 어빙대로, 각자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서 최고 정점을 찍은 선수들이죠. 저 개인적으론 저런 선수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순위가 중요한 분들은 누가 누굴 넘었다 라고 표현들도 많이 하시는데, 그 분들 의견과 주장을 존중은 합니다만, 그렇게 하는 게 제 취향은 아닙니다.
@Doctor J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줄세우기 자체의 재미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지만서도... 르브론이 버드를 "넘었다" 라는 표현에 동의하기 어려웠고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는 뜻이었어요.
@SenesQ 물론이죠. SenseQ 님에게 쓴 댓글이 아니었습니다. ^^;
르브론이 영리한 괴물이라면, 버드는 우직한 영웅같은 느낌이 들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포츠의 로망인데 요즘은 좀 많이 아쉽네요 ㅠㅠ 마지막 느낌은 타도 샌왕과 타도 마이애미 정도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쿰보가 작년에 우승을 했으니, 또 잘 만들었음 좋겠네요. (폴 우승 했어야 하는데요 ㅠㅠ)
네, 이런 로망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머지 않은 시기에 재현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