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증 장애아들 키운 지난 27년 소회해봅니다.
늦게까지 공부하다 1996년 결혼 1997년에 아들얻음
35개월 되어서야 아빠소리하고 50개월 정도되어서야 대소변 가리기 시작
단순히 늦는다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해
서울대병원에 예약하고 3개월만에 간 병원에서 MRI.CT등 촬영하고 여러검사를 통해 내린 결론 전반적 중증 발달장애 1급. 발달장애 처음들은 단어
이후 이대목동병원, 길병원다니고 용하다는 한의원다니고 결국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됨 유명한 골프선수도 미국에서 아들이 자폐인 것을 알고 골프그만두고 치료에 매진하였으나 포기한 것도 접하고 김태원,이상우 등의 아들이 발달장애인 것도 알게 되고
줄기세포이식에 의한 치료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혹시 내몸의 세포를 다시이식하면 될까 싶어 건강에 조심하면서 살던중 황박사가 밀려나는 상황을 보면서 희망이 무너지고
이제는 잘하는 것 하나 찾아보자고 해서 마라톤 동호회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면서 아들과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으로 달려야 한다는 인식을 못하니 이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때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나왔고 내가 다니던 런너스클럽회원들이 영화촬영에 상당히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중증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싸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1년유예하다 들어간 정규학교는 힘들었고 결국 포기하고 10명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 선생님7분을 모시고 교회시설을 빌려 대안학교를 운영하였으나 교회의 분열로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보니 대안학교는 해산되었습니다. 다시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어 겨우 고등과정까지 마침
스쿨버스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다보니 의자를 부수어 물어주기도 하고.
가장 어려운 점은 몸에 절대로 손을 못대게 하니까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손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 갔으나 커다란 덩치로 발버둥치니 치료가 불가능 했고
겨우 감아놓은 붕대도 한순간에 다 풀어버리고
귓밥을 파주지 못해 건장한 7명이상이 붙잡고 세브란스병원에서 귀치료를 하기도 했습니다.
의사가 이상태로는 도저히 치료를 할수 없다고 해서 이마저 중단
귀치료하자고 전신마취해야 하는데 주사를 놓을 수 없으니 전신마취도 힘들고
코로나때는 1초만에 주사를 놓으니 먹을 것으로 홀려서 순식간에 주사놓음
명절에 고향 전주갔다가 순식간에 실종되어 두 번이나 경찰 동네사람들이 수색해서 찾았고
인천에서 수차례 실종되어 경찰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찾았고
실종되었다고 전화오면 일하다가 모임하다 바로 달려가기도 하고
이제는 성인이 되다보니 산책하다가 하의를 내리는 일이 있기도 하고
대소변을 잘 못가려 대변을 지려 공원등에서 뒤처리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90킬로 나가는 몸으로 날뛸때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도 하고
단어는 먹는 것과 전철역외에는 거의 아는 바가 없고
집에 있다 팬티차림으로 나가니 집에오면 바로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살고(아래사진)
치솔질할 때 깨물어 10년전부터 일회용 칫솔을 수천개씩 사서 사용하는 중
세수와 목욕도 시켜주고 대변보면 뒤처리로 해주어야 하고
1층이지만 아들이 뛰면 5층까지 울려서 위층 특히 2층사람들한테 층간소음 주지 않으려고 스포츠 매트 깔고 뛰지말라고 제어하고
선풍기 컴퓨터 등을 주먹질하여 수없이 바꾸고
눈떠서 눈감을 때 까지 하루종일 외계어로 중얼거리고
소통한다고 동요를 불러주면 그나마 소통이 조금되기는 함
일반인은 하루도 수발들기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들이 모여 시위를 하게 되었고 나도 종각,국회앞 이룸센터앞 청와대앞등에서 수없이 시위를 하여 2015년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에 되었습니다. 이때 국회의원들이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없어 이해시킨다고 하여 국회방송에서 발송촬영 협조가 있어 다른 부모들이 다 거절할 때 찬성하여 집과 학교,운동센터 등에서 아들 활동하고 생활하는 하는 모습을 촬영하여 결국은 국회의원들이 발달장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법을 제정해주었습니다.
이어 부평구의원과 부평구 조례를 만들기위해 조례 초안을 만들어주고 여러 준비위원들과 논의 끝에 부평구 조례를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들 모임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인천지부 감사도 하면서 조직화 하는데 힘을 쓰게됨.
인천서구에 발달장애인 위한시설로 써달라고 약600여평을 기중한 분이 있어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를 시와 구에서 건물은 지어주고 약30명 직원의 급여도 지원함. 운영주체는 부모연대에서 하고 서구거주자35명 기타지역거주자 35명 총 70명을 모집하였고 6년동안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30여명 직원 뽑을 때 면접관으로 들어가서 발달장애인식정도가 높은 직원을 선정하였습니다. 기타 부모연대에서는 주간보호센터, 주간활동서비스센터를 만들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하에 성인발달장애인들이 갈 곳을 만들었습니다.
얼마전 모방송국에서 촬영요청이 부모연대에 왔으나 아무도 촬영협조가 없어 어쩔수 없이 우리가 동의하여 집사람과 아들촬영협조하여 공중파방송에 나옴
현재 아들은 부모들이 만든 주간활동서비스에 가는데 차로 데리고 오가는 선생님과 센터선생님들 급여를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해주니 숨통이 약간 트이기는 합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중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어떠한 삶속에서 살아가는지 조금은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아들복지를 위해 사회복지사 1급을 따게된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