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天逸臺
納納遺天地, 高高有此臺。
鶴巢紅樹晩, 龍窟綠雲堆。
挈影超三界, 騰身隘九垓。
亂峰環在眼, 渾是玉崔嵬。
騏峰集卷之二
[역주]
◇納納(납납): 광대하여 끝이 없는 형상
◇遺天地: 천지 밖에 버려진 듯한 경계, 혹은 천지를 초월한 상태
◇高高: 높고 또 높은 모양, 중첩된 고고함
◇鶴巢(학소): 학이 깃드는 자리, 신선적 공간 상징
◇紅樹: 붉게 물든 나무, 석양 혹은 단풍
◇龍窟(용굴): 용이 숨는 굴, 영기(靈氣)의 응축 공간
◇綠雲: 푸른 구름, 산기운 혹은 영적 기운
◇挈影: 그림자를 끌고 감, 존재의 초월적 이동 이미지
◇三界: 불교적 세계관(욕계·색계·무색계)
◇九垓: 우주적 극한 공간, 천지의 끝
◇崔嵬(최외): 높이 솟은 산세
[번역문]
천일대(天逸臺)
하늘과 땅마저도 끝이 없는 듯한 아득한 경계 속에,
그보다 더 높고 높은 누대가 이곳에 서 있다.
학은 붉게 물든 나무 위에 깃들어 저물어 가고,
용은 푸른 구름이 쌓인 산속 깊은 굴에 숨는다.
그림자를 거느리고 삼계를 초월하며,
몸을 날려 아득한 구천의 끝까지 이른다.
어지러운 봉우리들이 눈을 둘러 에워싸는데,
그 모든 것이 온통 옥처럼 빛나는 높은 산일 뿐이다.
[부주]
본 시는 조선 중기 문인 기봉(騏峯) 이시성(李時省, 1598–1668)의 작품으로, 경주 이씨 가문 출신이며 이항복(李恒福)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산수시를 통해 현실 세계를 초월한 신선적 공간 인식을 즐겨 표현하였으며, 본 작품 「천일대(天逸臺)」 또한 그러한 미학의 전형이다.
시 전체는 특정 누대의 지리적 묘사라기보다, 인간 존재가 속박된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시공 구조를 형상화한 것이다. “삼계(三界)”와 “구해(九垓)”는 불교적·우주론적 확장을 통해 공간을 무한화하며, 마지막의 “옥최외(玉崔嵬)”는 산 전체를 단일한 결정적 미감으로 수렴시키는 종결 구조를 이룬다.
역자는 본 작품이 단순한 산수시가 아니라, 조선 유학자가 수용한 도가적·불교적 상상력이 결합된 “초월 공간 시학”의 사례라고 판단한다.
출처 > 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 ㅣ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