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17~19]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야 봄이 온다.'
법정 스님이 <아름다운 마무리>에 내려 놓은 말씀을 읊조리다 문득 봄이 그리웠다.
이곳 저곳 없이 온통 봄빛, 봄소리, 봄향이건만 어이 그리웠던가.
그러므로 봄이 그리워 길 나선 셈.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치 높은 산이라는 한라산의 바람도
고도가 가장 낮은 섬, 가파도의 바람도 그리웠던 셈.
<봄산> 바람을 쫓아 길 걷다.
영실(靈室)로 들어 말없는 대화로 오백장군과 슬픔 나누고
선작지왓을 지나 화구벽으로 봄기운을 헤쳐 걸을테다.
그 길의 위, 가만히 뒤돌아 오름의 도열에 시선 한참 두었다가
너머 인간의 거처와 바람 시작되는 바다를 바라볼테다.
만세동산에 닿아서는 묵묵한 환호로 그 평화를 느꺼워하고
사이 사이 잘도 길 찾는 바람의 흔적에 고개 끄덕일테다.
조릿대, 시로미, 털진달래, 철쭉, 백리향, 눈향나무,
구상나무, 졸참나무, 까마귀, 노루, 그들의 봄맞이에 불청객 될테다.
영실 초입, 적송숲.
한라산의 귀한 소나무숲이다.
우리나라 전체 숲이 그러하지만 한라산도 이기적인 소나무와 달리
마음씨 그만한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의 참나무류가 점차 세를 넓혀가는 중이라 하며
차윤정, 전승훈 박사 부부의 저서로 반갑게도 10년만에 개정판이 출간된
<신갈나무 투쟁기>에 의하면 참나무류가 숲의 새주인이 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인가 보다.
산의 봄은 늦다.
스님도 꽃 피어야 봄이라 했으니 한참이나 남았겠다.
그래도 봄의 천성의 급한 성질이사 익히 알려진 아는 바이니
곳곳 삐죽삐죽 봄이겠지.
가벼운 경사를 천천히 오르니 저 멀리 병풍바위가 위세다.
파란 하늘의 봄빛, 이윽고 저 바위 타고 숲으로 스미겠지.
어미의 죽음이 애닯은 아들은 울다 울다 선 채 바위가 되었다.
눈물이 흐르다 흐르다 말라버린 계곡은 슬픔 배어나는 한여름에나 또 눈물 흘리겠지.
오백장군의 회한이 쌓인 것일까.
불래오름(1374m), 이슬렁오름(1352m), 어슬렁오름(1332m)이 내내 곁을 지킨다.
소녀상.
그리 바위가 된 오백장군 중 누군가를 사모했던 것일까.
소녀도 그리 바위 되었다. 오백장군을 차마 등 진 채 그리 상사의 바위 되었다.
선작지왓에서 바라본 백록담 화구벽.
선작지왓은 '작은 돌들이 서 있는 들판'의 뜻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고산초원인데
털진달래 철쭉이 분홍의 축제를 벌일 5월 보다 어쩌면 암중모색의 지금, 4월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오희삼이 훈풍 가득한 문향의 <한라산 편지>에 소개한 봄의 선작지왓을 잊지 못하여
아직 채 영글지 못한 봄의 들판이 서운치만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여 마음 푼다.
걸을 때는 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로만 걸으시기 바랍니다.
바람의 속도에 맞추어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
허공에 스미듯 느릿느릿 걸으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구름으로 나그네 되어 오시기 바랍니다.
천상 화원에서 이 계절 들꽃만이 연주할 수 있는
봄날의 향연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어지러운 꽃바다의 들판에서 꽃날의 몽환에 한줌 영혼을
잠식당해 보지 않고서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수 없음입니다.
윗세오름.
윗세오름은 1100도로의 삼형제오름(큰오름, 샛오름, 족은오름)과 비교하여
붉은오름(1740m) 누운오름(1711m) 족은오름(1698m)의 위에 있는 세오름을 통칭하는 것이다.
돈내코 코스가 개방되어 서벽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언젠가 저 길 따라 장구목오름도 오르고 걸어 서벽으로 오를 날도 있겠지.
그런 날엔 외워 두었다가 반드시 읖고픈 노산 이은상의 소감이 있다.
시인의 심사 깊어 어이 헤아릴까만 한 뼘 일지언정 공감해봐야지.
구름 갓 안개옷에
바람 수레 탓사 오매
하늘뫼 갈밭머리
나도 오늘 신선이라.
산마루 높은 고개도
나르는듯 오르리라.
아! 좋다 하고
다시 일러 좋다 하고
좋단 말 밖에
다른 말은 모르겠네.
인간에 신선말 없으니
좋단 말이나 외칠거나.
임시통제소에서 화구벽을 감탄하고 뒤돌아서니
윗세오름대피소와 윗세족은오름이 편안한 하늘 이고 있다.
만세동산(1606m)
까마귀의 노래를 찬 삼아 누구나 처럼 컵라면에 준비한 김밥 한줄 먹고
잠시 드러누워 하늘의 봄빛 여유 마음에 담고 만세동산으로 내려선다.
어리목이 들머리였으면 힘든 오름짓의 끝, 시원한 고원의 바람 앞에 만세를 부를 기분일테니
그 이름이 제격일 터이지만 나의 하산길 오늘 동산은 그저 '평화동산'이다.
저 차분한 오름을 내내 동행하여 내려서는 길,
온 몸을 휘감아 스치는 바람이 한없는 평화되어 내 탁한 영혼을 씻기운다.
만세동산 전망대서 바라본 화구벽.
구상나무숲 너머 좌측부터 장구목오름(1813m), 화구벽, 붉은오름, 누운오름이 연이었다.
한라산 지킴이 강정효의 '오름의 왕국, 생태계의 보고'라는 부제의 저서 <한라산>에 의하면
제주에는 100여 차례의 화산 활동으로 기생화산구인 오름이 368개나 생성되어 세계적 군락을 이루었다 하며
세계 유일의 순림을 형성하는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하버드의 윌슨 박사와 나카이 박사에 의해
학명이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 / 한국의 젓나무)로 명명되어 한국의 나무가 되었다 한다.
참고로 오름중 거문오름은 천연기념물인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의 시원으로 주목되며
이 용암동굴계는 2007년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희삼의 <한라산 편지> 뒤로 고개 내민 만세동산.
'한라산에서는 바람도 풍경입니다.'
한라산 글쟁이 오희삼의 말이 내 심장을 관통하여 바람길을 만들었다.
그 바람 드나듬에 자유로이 부유하고픈 나는
멋모르고 바람의 길 쫓다 아득하여 그만 혼절하고 만다.
한라산에서는 바람도 풍경입니다.
바람은 형체를 볼 수 없는 추상이지요.
바람은 소리를 울리며 그 생을 시작하고 소리의 끝에서 소멸합니다.
소리 속에서 바람은 비로소 흔들리는 생을 삽니다.
소리의 음역에서 바람의 삶은 파란을 헤치고 만장을 넘는데
바람은 죽으면서 결코 그 소리를 남기지 않습니다.
다만, 바람은 죽음 끝에서 울음의 무늬를 새길 뿐이지요.
바람은 산에게 길을 묻지 않으며 제 스스로 길이 되어 길 없는 길속으로 사라져갑니다.
바람의 동산 만세동산 거슬러 오르는 길에서 그대도 바람이 되시기를,
한라산의 풍경속으로 소리없이 스미는 바람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오름의 향연.
만세동산에 이어 옴팍한 망체오름(쳇망오름, 1354m)과 우측의 사제비동산(1423m)
너머의 좌측의 희미한 삼형제오름(큰오름, 샛오름, 족은오름)과 노로오름 등등...
졸참나무 숲우듬지의 겨우살이.
억새 뿌리에 기생하는 야고(野菰) 처럼 힘겨운 겨울을 보내는 나무에 기생하는 못난 생명이지만
공생의 운명을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일줄 아는 처세에 대한 가르침 한 수는 지녔다.
하산길 저 멀리 어승생악(1169m).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은 어승생악을 가리켜 "한라산 주봉이
오름 왕국의 군주라 한다면 어승생악은 오름들의 맹주라 할만하다."고 말했다 한다.
어리목골.
동, 서어리목골이 족은드레왓과 사제비동산 사이에서
합수되는 모양이 그러하여 흔히 Y계곡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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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팔천 신들의 거처인 영실에 들어 선작지왓에서 산의 봄을 만나고자 했다.
시로미를 밀쳐낸 조릿대지만 그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있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어리목골을 곁에 두고 걸으며 졸참나무 숲에서 순리의 삶을 배우고자 했다.
한라산에서는 바람도 풍경이라는 말이 과연 옳구나, 감탄하고자 했다.
산을 내려서 어리목대피소를 차지한 까마귀를 만났다.
그들의 장난스런 봄노래에 싱긋 웃음이 났다.
<봄바다> 섬엔 슬픈 바람이 불었다.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섬이란다.
거기 바람의 길이 있단다.
과연 출렁이는 파도 너머 바람길 따라
봄노래가 영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의 노래.
그래서는 안되는 눈물의 노래.
새로 취항한 가파도행 배는
예전 보다 세배나 큰 길을 만들며 모슬포항에서 멀어진다.
가파도에 올레길(10-1코스)이 열린 탓이다.
한줄로 밀려가더라도 예전 처럼 좁은 샛길일 순 없을까.
통통배가 외길 내어 지난다.
저 길이면 족한 것을 진즉 안 이의 생애가 부럽다.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김영갑의 <그섬에 내가 있었네> 中에서
길의 어귀, 허리 굽은 할망의 시선을 만났다.
어서오라는 말씀이 웬지 뭉클하다.
섬의 바람.
그에겐 길이 있다가도 없는 것.
가면 곧 길이요 멈추면 곧 소멸.
무소유의 그의 걸음이 당당하다.
섬의 봄바람은 이렇게 동분서주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바람 따라 내 마음도 나부낀다.
어디로 갈까, 하고 묻는데 그는 말이 없다.
그저 눈 앞에서 춤을 출 뿐.
맞잡은 손으로 바다로 가야지.
그 길의 끝, 바다가 봄바람 연신 만들어내고 있을테니.
헝클어진 머리로 한걸음 쯤 떨어져 걸어야지.
그 길의 끝, 청춘의 꽃 피어날테니.
바다 건너 산방산과 앞의 송악산,
우측의 희미한 형제섬과 너머의 보일 듯 말 듯 한라산.
아무렇게나 얹어진 소원이지만 바다를 향한 그이의 소원이 미덥다.
무엇이건 꼭 이루어지길.
등대 너머 마라도.
인간이 만든 기형의 섬이 안스럽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순간, 팡세의 말이 와닿는다.
가파도는 그러지 않았으면.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길.
저 길 위에서라면 마음 가벼울까.
내내 걸음이 무겁다.
더이상 길이 없다.
아니다. 내 마음이 그럴 뿐.
저 길의 끝엔 또 길이 나있을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 가는 바람이 길 걷고 있을 것이다.
섬 보다 큰, 익숙치 않은 길을 내며 섬을 떠난다.
내가 본 눈물, 어이 잊을까.
그러지 말았으면. 누구라도 그러지 말았으면.
바람 부는 섬에서는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섬의 초입, 세간의 호평이 무색하게
늦은 점심을 내는 주인의 얼굴이 그늘졌다.
약속한 시간 보다 지체되어 올레길 걸음을 분주하게 하였으며
음식도 두어가지 못내어 값을 줄여주마도 하였다.
그랬구나. 그랬어.
일의 사정이야 알길 없고 참견도 주제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세를 내어 잘 꾸려온 식당이며 민막집이며
섬이 호황의 문전이라니 주인과 마찰이 있나 보다.
오늘 하루 정신이 하나도 없다 했다.
눈물이 그렁한 그이의 얼굴이 섬을 걷는 내내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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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바람 되어 길 떠난지 여러날.
윌리엄 워즈워스를 탓할까.
시인은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바람직하고 선한 모든 것을 얻게 한다' 했다.
과연? 바보 같이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봄이 그리워 나선 여행길,
꽃으로는 봄을 구분하지 못하였으나 바람은 내게 봄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내 조급함을 탓해야한다.
눈물이 맺혀 꽃 피워낼 것을. 그리 봄 올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