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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토인비가家의 명언, 오늘에 비치다
정경시사 Focous, 2023.11.11
http://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80
토인비가家는 당대의 명문가: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프 토인비(Joseph Toynbee)는 명문가 출신으로 이비인후과의사였으며, 그의 백부는 명저 <산업혁명사>를 남긴 19세기 저명한 경제학자인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이다. 그래서 역사학자 토인비는 경제학자 토인비인 백부와 구별하기 위해 할아버지 이름 조지프 J.를 가운데 이름으로 넣었다. 부친 해리 발피 토인비는 의사이자 자선 사업가였고, 어머니 사라 에디스 마셜은 영국 최초의 역사학 전공 여학사女學士이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역사교과서를 집필한 학자이었다. 그의 여동생 조슬린 토인비도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이었다. 이처럼 토인비가家는 당대의 명문가이었다.
경제학자 토인비와 산업혁명: 토인비가의 학자들이 남긴 명언은 수없이 많다. 여기서는 경제학자 토인비와 역사학자 토인비의 명언 중에서 우리의 귀에 익은 몇 가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역경제자 토인비(Arnold Toynbee)는 옥스퍼드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각지를 순회하며 노동자 계층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등, 사회개혁가로서 실제운동에 참가한 인보운동隣保運動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병약하여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나 사후 출판된 〈18세기 영국산업혁명 강의〉(1884)라는 명저는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세계적으로 보급시키는 계기가 되어 그 후의 산업혁명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산업 혁명이란이란 용어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1776년부터 시작하여 1840년 사이에 영국에서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계의 변화로서 농업 및 가내수공업 경제에서 기계에 바탕을 둔 공장제 공업으로 변화했던 과정을 말한다. 산업혁명은 단순히 18세기말 영국의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19세기의 유럽, 20세기에도 개발도상국의 산업과 사회적 변화를 말하게 되었다.
원래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1844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아놀드 토인비 사후 그의 동료인 벤자민 조웻이 정리하여 1884년에 발간한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강의>에서 학문적으로 재정리 하였다. 토인비는 자유경쟁, 공장제, 부의 급속한 증가, 분배의 불평 등을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정리하였다. 증기기관에 의한 동력의 변화를 아놀드 토인비가 산업혁명(1차)으로 명명한 뒤에도 1세기마다 산업혁명은 이어져 왔다. 19세기말에 데이비드 렌데스가 전기에 의한 새로운 동력의 변화를 2차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했고(1969), 20세기 말에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적 변화를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하였고(2011), 2016년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사물 인터넷 등등의 시대적 변화를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빈민운동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토인비가 죽은 후에 그의 친구들이 그의 이름으로 런던에 ‘토인비 홀’을 세웠다. 토인비 홀은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기 위한 인보관隣保館으로서 오늘날 사회복지관과 같은 시설이다. 토인비 홀은 영국의 바네트 신부가 설립한 세계 최초의 인보관이고 빈민 구제 활동 및 산업환경 개선을 임무로 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학자 토인비는 산업혁명이라 지칭하는 당대의 산업사를 뚫어보는 경제학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사업, 자선사업가로서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해서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학자이었다. 그의 학문적 주장과 실천은 오늘날에도 후속 산업혁명의 가늠자가 되고, 시대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살펴야하는 학자의 양심과 학문의 길을 비추어 주고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와 메기효과: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는 그의 주저인 <역사의 연구>(1934, 1961)에서 문명은 도전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하여야 탄생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가 계속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응전의 과정 속에서 탄생, 성장, 붕괴, 해체의 4단계를 순환한다는 문명순환론을 주장했다. 그는 시사잡지 로태리언(1950.4)에서 그는 '메기철학'이란 제목을 사용해 그의 역사철학 정수인 '도전과 응전'을 설명했다. 러시아 공산주의가 메기가 되어 정체된 서구사회(청어)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토인비는 러시아를 메기로, 서구 사회를 청어로 비유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는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라고 메기효과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였다. 메기효과는 ‘메기의 법칙’ 또는 ‘청어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토인비가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자신의 역사 이론을 강조하려고 청어와 메기(물메기, 곰치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하였다.
메기효과는 기업경영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메기효과란 사회조직이나 기업에서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로 상대의 내재된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빗대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그런데 이러한 메기론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미화하려는 약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도 그 주장이 근거가 없음이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 안에 포식자를 넣으면 부정적인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도 과밀한 수조에 메기를 넣어 미꾸라지를 놀라게 하면 당장은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머지않아 산소와 에너지 고갈로 사망률이 높아질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기업경영에서 강한 위협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잠재력을 높여 전체 분위기의 활성화 시키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조직 내 적절한 자극을 주는 식으로 메기 효과를 활용한다. 외부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스카우트하거나 직무 심사와 성과급제도, 진급 제도 등을 활용해 긴장을 높인다. 정체된 조직 내 활력이 높아지고 업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조직에선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가중돼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 메기효과는 조직원을 향한 억압을 미화시키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데서 비판을 받으며, 약체기업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미화하고 약자를 억압하는 이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메기효과의 긍정적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소위 윔블던 효과를 말하는데 ‘윔블던 효과’는 영국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윔블던 효과는 1877년 영국 런던의 교외인 윔블던에서 테니스대회가 시작된 이후 정작 개최국인 영국 선수는 1936년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우승하지 못한 반면 독일, 프랑스 등 외국 선수들만 우승하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윔블던 효과는 금융시장에서도 나타나는데 외국자본이 유입되며 국내 금융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을 뜻하며 최근 부동산시장에서도 윔블던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학자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문명사관에서 파생된 메기이론은 역사보다는 기업의 조직, 경영, 기업사에서 많은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결과는 메기효과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갖고 있으며 심지여 메기효과와는 정 반대의 윔블던효과까지 등장하였다. 토인비가 말한 메기 효과는 일반적인 사회현상보다도 기업경영에서 비유적으로는 많이 쓰이고 있으나 서구권보다는 아시아권에서 주로 쓰인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은 아니며, 실제 닫힌 생태계에 포식자가 나타나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
역사학자 토인비와 문명순환론: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명순환론을 주장했다. 그는 ‘역사의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비슷한 상황이 주기적으로 되풀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 주기는 대개 100년을 단위로 그 속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토인비의 말은 문명의 순환적 발전과 쇠퇴가 반복되므로 역사에서 교훈을 삼았다면 반복이 없었을 것인데 역사의 교훈을 몰라서 순환,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역사가 순환하지 않고 진보하는 것이 옳고, 역사가 순환한다면 교훈을 얻지 못한 셈이 된다.
역사 철학자들은 100년 주기의 단순 순환설보다는 나선형 순환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현대로 내려오면서 100년, 200년, 1000년 주기로 비슷한 사건이 나선형으로 반복되는데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발전과 퇴보를 거듭한다는 주장이다. 토인비보다 앞서서 잠바티스타 비코은 ‘나선형 순환사관’을 주장하였다. 비코는 역사가 순환하기는 하지만 나름 역사에서 배우는 면도 있으므로 그걸 교훈삼아 선택을 달리하여 더디게나마 진보했다는 생각으로 나선형 순환사관을 주장했다. 비코가 제시한 나선형 역사관에 따르면 보기에는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과거의 일들에서 교훈을 얻어 조금씩 개선되므로, 언뜻 보기에는 원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선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순환 역사관에 반하여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리도 있는데 그 까닭은 역사에는 되풀이되지 않는 사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다고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에는 되풀이 되는 사실도 많기 때문이다.
역사순환설(역사반복설)에 대해서 좀 더 보완적인 주장으로는 칼 마르크스의 명언이 있다. 그는 ‘역사는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에는 희극으로’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비극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처음에는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희극인 것이다. 비극의 정의는 끔찍하고 예상치 못한, 예방할 수 없는 사건의 선상에 있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수가 처음에 반복될 때, 그것은 비극이며, 다음에 더 잘 배우고 더 잘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슬프게 상기시킨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될 때는 비극적이고 불행한 것보다 더 황당해서 허탈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명언과 유사한 것으로는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이다.’라는 말도 있고,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해야 한다.’는 격언도 있다.
과거의 큰 사건이나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된다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만약 역사의 어떤 중요한 사건이 바람직하건 그렇지 않건, 어떤 사람은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할 때 과거를 보고 오늘날의 추세를 평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의 순간부터 과거의 시대까지 비치는 유사점의 추세를 바탕으로 현재를 추론하려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구한말부터 일어났던 환경과 비슷한 환경이고, 6.25의 역사적 환경도, 제2 IMF의 징후도 비슷하게 되풀이되려는 현실의 우려 속에 토인비의 가르침은 우리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