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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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명상이 되는 그런 책이 있었으면 했다. 좀 게으른 발상일까? 사실 모든 책은 일종의 명상 책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읽고 나면 어떤 면에서든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명상은 결국 어떻게 알고 있느냐, 아는 문제 일 뿐이다. 아는 게 달라지면 우리의 현실적 삶에도 분명한 변화가 만들어 진다. 그래서 책을 읽든 뭘 하든 생각이 바뀌면 그것도 명상이 아니겠는가? 생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바뀔 때는 또 순식간에 바뀐다. 모르고 있던 어떤 사실을 알 때, 그리고 보고 아는 것이 달라지면 그 순간 변할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작은 찻잔을 하나 선물 받았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그냥 평범한 찻잔 이었다. 물컵으로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간혹 라면을 덜어먹는 앞 접시 대용으로도 썼다. 어느 날 그 물컵을 선물한 분이 찾아오셨다. 지난 번에 선물한 그 물컵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의 작품인데 혹시 잘 쓰고 있냐고 물었다.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말 못하고 그냥 잘 쓴다고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그냥 물컵이 아니었다. 명품 찻잔으로 잘 모셔져 있다. 왠지 모르게 생각이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 참 맛있게 먹고 있던 외국의 유명한 차가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현미경으로 보니 그 차안에 진드기가 바글바글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그 이후로 안 마시게 되었다. 마음은 그렇게 간사한 것이다.
모르던 사실을 알면 분명 마음 상태는 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아 알 수 없는 내용들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 중에는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정말 가치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사실적이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알게 하는 것도 아주 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상은 바로 알아야 할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마음의 변화, 생활의 변화,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그런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명상이 마음을 다스리거나 훈련하는 과정으로 안다. 그러나 마음은 훈련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몰랐던 사실을 보고 알면 마음 상태는 그 순간 바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정말로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보는 요령을 몰랐을 뿐이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난이도가 높은 것은 그림이 단순하고 찾아야할 것도 한 두 개다. 그런데 한 참을 이리 저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찾으라는 답은 안 보인다. 결국 포기하고 뒷 쪽의 답을 보고 나면 그렇게도 안 보이던 것이 그 때부터는 잘 보인다. 알면 좋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명상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가 있었다. 보고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노력해서 깨닫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보다보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지시 받느냐에 따라 보는 게 달라진다. 또 보아야 할 사실을 알고 보면 당장 그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라서 그렇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실재하며 말 그대로 누구나 알 수 있고 인정하는 당연한 사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고 또 다 알아야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아는 것을 통찰한다고 한다. 통찰을 잘 하려면 통찰만 해서는 안 되고 ‘깨어있기’와 ‘집중하기’라는 삶의 유익한 요령과 함께 해야 효과적이다. 여기서는 그래서 ‘깨어있기’ ‘집중하기’ ‘통찰하기’라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써서 보고 알고, 알고 있는 상태를 지속하고, 또 변화하는 과정을 소개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일어나는 마음, 일으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마음이지만 기능상 구분한 것이다. 다 내 마음이고 내가 일으킨 것 같은데 알면 알수록 우리는 일어나는 마음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다. 일어나는 마음 주도로 삶을 살면 이끌려 지는 삶을 산 것이다. 반대로 일어나는 마음 주도로 산다면 이끌어 가는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아야 될 사실을 알아가다 보면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이끌려지는 삶을 살아왔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일어나는 마음들의 7할은 부정적이고 원치 않는 것들이다. 부정적으로 일어나는 마음들은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실패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감도 떨어뜨린다. 마음을 다치면 당연히 괴롭다. 그런데 마음만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몸을 다치는 일로 이어지고 만다. 마음과 몸을 다치며 살면 만족한 삶이 될 수 있을까?
또 우리는 괴롭지 않은 것만으로 행복해 하지 않는다. 괴롭지 않으면서 무언가 강한 긍정적인 상태나 내용으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져 있을 때 행복해 한다. 그래서 자신감이라는 것을 필요로 한다. 자신감은 부정적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모든 긍정적 마음 상태를 만드는 모태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해도 삶의 시간과 비례하여 인격의 변화가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만족해하지 못한다. 마음을 다치지 않기, 자신감 만들기, 인격의 변화 이끌어 내기는 우리가 행복해 지기위해서는 꼭 있어야 되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이것들은 고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단지 잊고 있던 사실을 알아 생각을 바꾸어 주는 것만으로 얻을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효과가 그 때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상태는 주변 상황, 습관, 기억 등을 원인으로 주로 만들어 지는데 특히 부정적 상황에 취약하다. 아무리 좋은 일이 많아도 한 가지 안 좋은 일이 있으며 그것에 강한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명상은 할 수 있다면 항상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령을 알고 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통찰의 대상은 지금 여기 실재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명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명상할 수 있고 또 명상하면서 살아가 수 있는 것이다.
통찰은 우리 몸의 느낌과 마음 상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점차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통찰하게 될 것이다. 삶을 통찰하게 되면 분명하지 않았던 삶의 목적이 분명해 진다. 목적이 있다는 것은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자신이 정한 목적에 가까워지고 있다면 잘 살았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못 살았다고 할 것이다. 목적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알아갈 때 열정은 식지 않고 더욱 열심히 유익한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그럴수록 또 긍정적인 변화도 탄력을 받는다. 목적도 목적 나름이다. 유익하지 않은 목적은 또 다른 방황의 원인도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유익한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삶을 통찰하게 되면 그런 유익한 목적을 찾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근본 원리는 결국 잊고 있던 사실을 알아가면서 시작된다. 새롭게 알기, 혹은 생각해 보기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깨어있기, 집중하기, 통찰하기이다. 그리고 이 방법들을 잘 활용하여 마음을 다치지 않기, 자신감 만들기, 인격의 변화 이끌어 내기라는 현실적 결과를 얻고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게 하는 것이 우리가 명상을 하는 목적이다. 원하는 유익한 변화를 성취해 삶의 큰 변화가 있었다면 이것은 곧 운명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으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에 명상은 운명 바꾸기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정말로 운명을 바꾸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잘 바꾸어 더 행복해 잘 살았으면 한다.
첫댓글 생각바꾸기의 명상으로 행복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