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와 함께 삽시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삽시도는 여의도 2배나 된다는 큰 섬이면서 마치 화살을 꽂아 놓은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지도를 보니 큰 가오리 모습과도 같았다. 며칠 전부터 이번 여행은 몹시 기대가 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역시
“나도 그래 ”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한 부부가 왔다. 인사를 반갑게 나누며 차에 올랐다. 햇빛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따듯하게 데워 놓았다. 그 위에 덥석 앉으며 우리는 싱글벙글이었다.
“날씨가 참 좋지. 그렇지?”
“응, 진짜야.”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말들을 연실 종알거렸다. 앞에 앉은 남자들은 참새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보통 때보다 더 넓은 가슴으로 점잖게 앉아 있었다. 달리다가 큰 마트에 들려 눈을 반짝거리며 장을 보았다. 짐을 싣고 우리는 계속 달렸다.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며 어느 사이 우리는 참새로 되돌아와 있었다. 휴게소에 들려 따끈한 오뎅 긴 꼬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신중한 눈빛을 발하며 먹었다. 그 진지한 모습을 보고 오뎅 1꼬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차는 충남 보령시 해저터널을 지나 대천 항에 닿았다. 점심 먹을 여유도 없이 매표를 끊고 차를 싣고 우리도 배에 실렸다. 1시간 30분 후에는 옛 집터가 많다는 고대도를 지나,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는 장고도를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삽시도에 닿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대형의 배가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물결과 고개를 들어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망망대해라는 단어에 자신이 위축되어 짐을 느꼈다.
드디어 배는 삽시도에 닿았다. 알고 있다는 펜션에 전화를 하니 겨울이라 운영을 안 한다고 했다. 달리다 보니 어느 펜션에서는 한 여성이 잔디에 불을 놓아 태우고 있었다. 바람에 불꽃이 날아갈세라 한쪽 손에는 비를 들고 있다가 불꽃이 커지면 잔디를 쓸고 있었다. 친구 남편이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더니 방을 예약했다. 이직까지는 펜션 운영이 이른 철이라고 했다. 우리가 운이 좋았음이라 생각했다. 짐을 풀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좌측으로 펼쳐진 바다에는 등대가 오는 잠을 참듯이 힘들게 깜빡깜빡 거리고 있었다. 어선들은 그림으로만 보아온 것처럼 한가로우면서도 외로운 듯 서 있었다.
피곤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양옆으로 누운 남자들은 탱탱했던 풍선이 바람 빠지는 듯 거친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여자들의 숨소리는 엊저녁에 보았던 바다의 수면처럼 잔잔하고 고요했다. 가장 가까운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제일 소중하고 가장 큰 생명의 소리임을 새삼 느끼며 살아있는 숨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잠을 깬 친구는 다리운동을 한다고 작은 발로 페달을 밟는 자전거 운동을 했다. 신발 사러 가면 주인은 나를 보고 보기보다 발이 크다고 말했다. 듣는 순간 창피하면서도 속으로 말대답을 했다. 발이 커야 안전성이 있지요. 라고 말이다. 친구의 작은 발이 귀여웠다. 지금까지 이 발로 총총 걸음하며 많은 일을 하고 살아왔음에 수고 했다며 다리를 흔들고 칭찬해주었다.
이튿날 문을 열고 나가 둑 앞에 서니 흐릿한 하늘과 바다는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며 바다 속은 어민들의 삶이 들어있는 수중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3월이 되면 제주도에서 삽시도로 돈 벌러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한 달가량의 수입이 괜찮다며 전복과 그 밖의 많은 해산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배를 타고 오면서 남자분인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을 먹고나갔다. 인사를 나누며 주인아주머니가 하는 말, 차차 물이 빠지니 함께 조개 잡으러 가자고 했다.
“좋아요. 좋아요. 말로만 듣던 조개잡이 드디어 해보는구나!”
호기심이 생겼다. 빠지려면 2~3시간 걸린다고 하여 남편은 차를 몰고 나섰다. 안내판 지도를 보니 둘레길이 8코스나 있었다. 길이 보이면 달리고 달렸다. 끝은 바다였다. 내려서 백사장을 걸어보고 주의 경관도 바라보며 인증 샷도 남겼다. 가는 곳마다 펜션이었으며 관광지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펜션마다 조용했다. 해수욕장이 4곳이나 되었다. 여름이면 많은 인파들로 삽시도는 붐빌 것이라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활기가 넘쳐보였다. 가는 곳마다 해송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심한 바람에 날아오는 모래를 막기 위한 방사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송 숲이라고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주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네주는 양동이와 면장갑, 호미, 장화를 신고 폼을 내고 갯벌로 향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이미 조개를 잡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조개 잡는 방법을 몸소 보여 주었다. 구멍이 있는 곳을 호미로 캐는 것이다. 호미로 2~3번 파보면 갯벌을 잔뜩 입은 조개가 보이는데 조개인지 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호미로 두들겨 보기도 했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지만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가보지 못한 코스를 계속 돌았다. 돌고나니 섬의 지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주인아주머니도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전국을 남편과 함께 돌아다녔다고 했다. 부인의 뜻을 따라서 이 섬에 정착한지가 20년이 되었다고 했다. 섬 생활을 이야기하며 얼굴표정은 연실 싱글벙글 웃었다. 성실함과 행복함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부탁해 놓은 회를 주인아저씨가 예쁘게 포장을 해서 건네주었다. 직접 잡았다고 했다. 저녁은 여러 가지 싱싱한 회와 술과 즐거운 마음으로 안주삼아 맛있게 먹었다. 아무생각 없이 이시간이 마냥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사흘째 날은 일출을 보기 위해 부지런함을 보였다. 따듯하게 옷을 챙기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보이는 건 바다, 백사장 이였다. 동해의 바다는 남성을 연상케 하는 거친 물결이었고 서해의 바다는 여자의 잔잔함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일출의 시작이 먼 수평선 끝에서 간신히 떠오르는데 구름이 가렸다. 서서히 촌음을 두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대, 시선집중, 긴장감이 더해져 인지 구름이 서서히 걷히더니 선명하고 붉은 모습으로 툭 올라왔다.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나의 가슴에도 붉은 정열이 불쑥 솟아올랐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넋 없이 바라 볼 사이도 없이 구름으로 이내 가려진 하늘을 보았다. 구름 속에서 일출은 높게 오르며 오늘을 비출 것이다. 계묘년 초에 보지 못했던 일출을 삽시도에서 보았다.
오늘은 삽시도를 두고 떠나는 날이다. 숙소로 돌아와 남은 음식 알뜰히 챙겨먹으며 친구는 말했다.
“우리 너무 잘 먹는다.”
“그럼 잘 먹어야지. 먹는 것만이 남는다고 하잖아.”
맞장구치며 체중은 나중이고 우선 당기는 입맛에 충실했다. 정리를 다하고 주인에게 인사를 나누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쉬웠지만 묵으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추억으로 쌓여 나의 정신을 살찌우게 할 것이라 생각하니 든든했다. 도착한 배에 몸을 싣고 차를 싣고 우리는 육지를 향해 떠났다. 끝없는 바다를 주욱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어 배가 가르고 지나가는 물결을 한없이 스쳐가면서 나의 삶에서 부끄러웠던 삶이 갑자기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사하며 살자고 말했다.
어느덧 배는 대천 항에 닿았다. 수산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니 휘황찬란한 불빛에 눈이 커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이 아나고 구이를 먹자고 해서 물어보니 거의 횟집이었다. 한 곳에 들어가 아나고 구이 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가는 길과 상호를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분의 말을 듣고 우리는 기분 좋게 달렸다. 주위를 살피며 나아갔다. 가다보니 상호가 눈에 띄었다. 그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냥한 도우미와 웃음을 담은 친절한 주인을 보자 반가운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경유를 이야기 하니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두 분이 미안할 정도로 친절히 대해주었다. 충청도는 이렇게 친절한가? 생각했다. 아나고를 ‘대’자로 주문했다. 기다리는 사이 눈 아래 펼쳐진 갯벌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가까이 갈수 없는 그림이었다.
잠시 후에 상차림이 나오고 주인은 아나고 큰 접시에 수북히 담아가지고 왔다. 우리는 양에 놀라면서 구워주는 아나고를 열심히 먹었다. 주인은 구우면서 양은 넉넉할거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시켰으니 ‘대’자의 가격만 생각하고 있었다. 충분한 양에 우리는 마음껏 먹었다. 포만감이 들자 친구부부는 가격이 많을 것이라 은근히 신경이 가는 눈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 먹었으니 어쩔 것인가? 요구하는 데로 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하며 식사까지 챙겨 먹고는 친구남편은 계산을 하러 갔다. 나는 표정을 살폈다. 친구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편안했다. 말은 안했지만 궁금했다. 은근 슬쩍 물어보니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이었다.
“그럼 그렇지”
말하며 우리는 차에 올랐다. 하나같이 웃으며 만족해했다. 각자 한마디씩 하는 말에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저울이 고장난줄 알았다고, 몇 십 만원 나올 줄 알았다고, 충분한 양이 좋았다고, 제 가격에 덤으로 먹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했다.
“양이 뭐가 많아? 그래도 우리 다 먹었잖아!”
사실을 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웃음이 옆으로 터져 나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보는 나도 웃음이 빵 터졌다. 9시에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에 감사한 마음과 덤이 주는 즐거운 마음을 안고 달리고 달렸다. 춘천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