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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본문 : 누가복음 24장 48절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새번역>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지 않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떻게 죽으셨는지 눈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곁에서 어떤 분인지 지켜본다는 것이나, 직접 만져본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신을 믿는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지켜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는데 우리는 과연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명확하고 확고합니다. 당연히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본 적은 없고, 지켜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들고 있고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들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1절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순서는 ‘믿음’입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 새번역>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이 서술이 아주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다는 사실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다는 사실부터 부정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 펼쳐지는 모든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당연히 찬반이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다는 전제를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그 전제를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소설일 뿐인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전제가 펼쳐진 것입니다. 일반적인 ‘증인’은 ‘직접 보고 들은 것’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예수를 증거 하는 증인들은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드넓은 만주 벌판을 달리신 광개토 대왕을 본적이 없습니다. 바다의 왕자 장보고를 본 적이 없고,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을 본 적도 없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타고 계신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편찬하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도 눈으로 본 적이 없고, 6.25전쟁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전 세계 사람 누구에게나 이 일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언급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에게, 그 윗세대에게서 구두로 계속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하여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요한일서 1장 1절입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 새번역>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 이후에 서술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들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증인’의 두 번째 조건이 등장하는데 바로 ‘들은 것’입니다. 예수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믿음의 바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예수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상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에 대해서 듣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각 자 다른 특별한 경험으로 인격적 만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기초적으로는 믿었기에, 믿기로 결정을 했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었을 것이며 들은 것을 통해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발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고, 현재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 새번역>
누군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은 이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또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을 선포했고, 그 말씀을 들은 이가 또 생겼고, 들은 이는 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선포되고, 듣고, 믿음이 생기는 반복은 2000년을 지나 현재 우리에게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믿게 하기 위한 방법이 이것이었습니다. “들어라! 쉐마! 이스라엘!” 들으면서 이 음성의 기원을 찾으며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믿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브라함이 되기 전의 아브람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들었습니다. 들었던 것만으로 믿기로 결정했기에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장 1절,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의 증인은 ‘듣기’를 통하여 증인이 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듣고, 들음으로 믿음이 굳건해져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내어던질 수 있는 증인이 된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던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삶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 새번역>
아직 듣지 못한 이가 있으니, 믿음이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로부터 시작되니, 한 명이라도 더 듣게 하기 위하여, 한 명이라도 더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 오지로 떠나고, 땅 끝으로 향하고, 머나먼 이 한국 땅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정말 복음의 오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육지로는 가장 동쪽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 하나로 이토록 큰 부흥을 이룬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토록 간절하게 믿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이 곳으로 왔던 선교사님들이 계셨기 때문이었고, 그들을 통하여 마음을 열고 들었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증인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을 들은 믿음의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작은 예수들을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나를 살리러 왔다고 하면 여러분은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피부색도, 말도, 모든 것이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가지 예수를 전해주고 싶어 나를 찾아왔다는 이들을 보며 결국에 나도 ‘예수’를 보았노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많은 조선의 사람들이 선교사님들을 통해 예수를 만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 새번역>
이 말씀을 들은 믿음의 증인들은 스스로 작은 예수가 되어 이 땅의 하나님들을 찾아 헤매었던 것입니다. 오직 이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고, 위해 주고, 세워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오셔서 순교하신 선교사님들에게 감사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이 것 아니겠습니까? 그 작은 예수들이 찾아와 우리는 예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게 되었고,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고, 왜 증인이 되어야 할지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사님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들은 실로 작은 예수였습니다. 예수의 형상을 띈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직접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를 직접 만나보고, 안아 보고, 대화 해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만났던 교회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은 천사를 뛰어 넘어 저에게는 예수님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분들께서 다 알려주셨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그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 대가도 없이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베풀어 주셨고, 나누어 주셨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실로 이 땅에는 수많은 작은 예수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인들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라는 그리스도인은 과연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증인’이라 부르며, 우리를 통하여 예수를 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스스로와 사람들의 평가에 앞서 먼저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이렇게 부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누가복음 24장 48절, 새번역>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씩 하나씩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꺼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가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저는 지금 ‘삼위일체’라고 하는 어려운 말로 이해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정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 마음의 결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결정하시길, 결정하셨길, 이미 결정을 끝내셨길 축복합니다. 그래야 증인이라는 출발 선상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서 듣고 계십니까? 더 깊게, 더 넓게, 더 많이 듣고 계십니까? 들음이 또 다른 들음을 낳아서 믿음으로 옮겨져 가고 있습니까? 들음이라는 축복을 무너뜨리는 무관심이라는 녀석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계십니까? 아직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이들에게는 이 부분이 너무도 중요한 영역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것, 예수에 대해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복음 11장 15절, 새번역>
귀로 듣는 것은 다른 쪽 귀로 흘러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말씀들이 한 쪽 귀로 흘러 나에게 머물지 못하게 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귀와 마음으로 함께 듣는 것입니다. 귀와 마음으로 들어 한 쪽 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자리를 잡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들음이 내 안에서 울림이 되도록, 그 울림을 통하여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나가는 여정을 반드시 겪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로 살고 계십니까? 잘 들었기에, 믿음이 생겼기에, 이제는 증인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증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예수가 되어 주고 계십니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모든 순간,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 하듯 행하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을 세워 주고 있습니까? 소망을 주고 계십니까? 사랑하고 계십니까? 그들로 하여금 당신이라고 하는 작은 예수를 발견하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통하여 말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믿을 만한 이야기들로 전달되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은 제가 저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질문하셔야 합니다. 가정에서 질문하셔야 합니다. 내 동역자에게 질문하셔야 합니다. 내 자녀에게 질문하셔야 합니다. 질문함으로 현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정비할 수 있어야 하며, 다시 회복할 수 있어야 하고, 잘 유지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고개를 떨구고 부끄러워 할 것 같아, 여기서 위로의 말씀 한 구절을 나누고 설교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누가복음 24장 48절, 새번역>
사실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제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완성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신 상황이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누가복음 24장 41절, 새번역>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금 사랑으로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다시 믿음으로부터 시작하고, 들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 되어 갈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의 이름은 ‘증인’이 맞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들려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간 여전히 ‘증인’으로는 너무도 부족해 보이는 스스로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이 말씀을 들음으로 ‘내가 증인’임을 믿어 보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증인입니다. 우리는 증인이 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도저히 믿겨 지지 않지만, 증인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먼 훗날 고개를 끄덕이며, ‘증인’임을 나와 모두에게 인정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예수를 믿고, 예수를 듣고, 작은 예수가 되어 예수를 보이게 하고, 예수로 만나게 하고, 예수로 만져지게 되는 역사가 바로 우리라는 ‘증인’을 통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먼저 가정에서부터, 교회에서부터,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이 증인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시대의 ‘증인’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결단찬양 - 나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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