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방역기획관 기모란의 아버지 기세춘이 통일혁명당 사건관련자였던 것을 기화로 반세기도 훨씬 지난 통일혁명당 사건과 그리고 한편으로 언뜻 되살아나고 있음직한 그 불씨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기모란 방역관 아버지 기세춘(경향신문 사진)
이 사건과 관련하여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주모자 3명은 사형 처벌을 받았고 주지하다시피 신영복, 박성준, 기세춘 등은 상당 기간 옥고를 치르고 나왔고 그들이 어떤 생을 살고 있었던지 다들 잘 안다.
1968년 11월 '통혁당' 사건 공판 장면
사건 10여년 후 사형 당한 주범들의 가족들 뒷 얘기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중간에 포기를 했다.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취재 노트를 뒤적거렸더니 슬픈 얘기들이 많이 적혀있다. 한 주범의 아내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남편이 처형된 후 그 아내 분은 당국의 주선으로 취업을 한다. 헌데 취업한 곳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편의 수사를 담당했던 정보당국이다. 일본어를 잘 하는 그 아내 분은 상당 기간 그곳에서 일본어 관련 일을 했다. 그 당시 그 분을 직접은 아니지만 뵈었다.
나는 그 분을 당시 알지 못했다. 정보당국의 어느 방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만나고있는 사람을 보더니, 갑자기 그 사람을 노려보면서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는 몸을 떨더니,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내가 만나고 있던 그 사람이 통일혁명당 사건과 관련하여 그 분 남편과 자신을 취조했던 당사자였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그 아내 분을 만나려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주변의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책 한 권은 됨직한 많은 얘기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을 쓸 수는 없었다. 지금은 8순에 접어들었을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재판당시 이문규 모습
다른 주범 한 명은 내 고향 마산과 인연이 있다. 검거 마지막 피신처가 마산의 한 언론사였기 때문이다. 일찍 세상을 뜬, 대학 당시의 절친한 한 친구가 그 신문사 사주의 인척이었기에 그 신문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점점 다가오는 검거의 손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 아내도 대학친구 동생의 주선으로 마산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질락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후 그 아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남편의 시신을 인수한다. 그리고는 시신을 깨끗하게 씻어 여러 겹으로 철저하게 감싼 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다. 그 사람의 고향까지 데려갈 요량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아내 분은 남편이 처형된 후 남편과 관련된 책을 낸다. 책 서문을 그 딸이 썼다. 한 5년 전까지 목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서문을 썼던 그 딸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 나의 고동학교 동기였다는 사실도 취재과정에서 알았다.
이 사람의 마산과 관련한 얘기는 2017년 출간한 나의 고향관련 졸저에 일부분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