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이에른 뮌헨 -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라이벌전이 오는 토요일 밤 11시 30분(한국 시간), 뮌헨의 올림피어슈타디온에서 펼쳐진다. 바이에른이 승점 23, 도르트문트가 승점 21을기록하며 1,2위를 달리고 있기에 경기 결과에 따라 극명한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바이에른에게는 챔피언스리그 조기 탈락에 따른 언론의 집중포화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는 호기인 동시에 더욱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도르트문트도 바이에른 못지 않은 위험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하는 입장이다. DFB-포칼 2라운드에서 2부 리가의 SC 프라이부르크에게 일격을 당하며 탈락하자, 도르트문트의 구단 수뇌부는 자신들도 '바이에른 신드롬'을 겪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바이에른 신드롬이란, 바이에른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독일의 여론을 의미한다. 챔피언스리그 1차 리그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달랑 승점 1을 챙기고 탈락하자,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을 향한 온갖 조롱과 비난이 이어졌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바이에른에 대한 야유와 빈정거림이 독일의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다. 도르트문트의 미카엘 조르치 디렉터와 마티아스 잠머 감독은 DFB-포칼 초반 탈락의 여파가 도르트문트에 대한 비난 세례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그들은 바이에른의 고생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기에 원정에서의 승리로써 '도르트문트 신드롬'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도르트문트의 부끄러운 기록들
도르트문트는 지난 11년동안 바이에른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1991년 10월 12일,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바이에른을 물리친 이후로 지금껏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절대적인 약세를 보여 왔다. 11년간 10번의 원정 경기에서 5번의 무승부와 5번의 패배를 기록했을 뿐이다.
바이에른 원정 11년째 무승의 기록은 차치하더라도, 홈과 원정을 포함한 전적에서 도르트문트는 절대 약세를 보이고 있다. 1997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도르트문트에게 안겨 주었던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이 바이에른으로 자리를 옮긴 후, 도르트문트는 홈과 원정을 막론하고 바이에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1998년 3월 18일, 챔피언스리그 8강전 홈경기에서 스위스 용병 슈테파네 차퓌사트의 연장전 골(111분)에 힘입어 4강에 진출한 것이 도르트문트의 마지막 승리였다.
최근 2년간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을 상대로 2무 2패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상대 전적에서 바이에른이 도르트문트를 압도하고 있지만, 경기 내용의 측면에서는 라이벌전다운 화끈한 모습이었다. 4경기에서 옐로우 카드 28장이 양팀의 선수들에게 제시되었고, 지난 7경기에서 6명의 선수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과격한 플레이를 구사하는 바람에 퇴장당하였다. 흔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하지만, 양팀은 인간의 원초적인 투쟁 의지가 맞붙는 와중에도 제법 수준 높은 플레이를 구사하면서 축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00/01시즌 전반기, 뮌헨 원정경기에서는 하이코 헤어리히가 분전했지만, 도르트문트는 2-6 패배라는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후반기, 자신들의 안방 베스트팔렌슈타디온에서의 경기에서는 옐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가 난무하는 가운데 1-1의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당시 도르트문트는 수적인 우세를 앞세워 바이에른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불운이 이어졌다. 프레디 보비치의 골이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오프사이드로 선언되었고, 토마스 로시츠키의 결정적인 프리킥이 골 포스트를 때렸다. 그리고 '고릴라' 올리버 칸은 신들린 선방을 거듭하였다. 당시의 무승부는 도르트문트의 마이스터 등극이 좌절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반면,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01/02시즌,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은 뛰어 넘기 위해 아모로조와 얀 콜러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바이에른은 로케 산타쿠르스를 앞세워 시즌 개막후 5연승을 구가하던 도르트문트를 적지에서 2-0으로 완파하였다. 바이에른이 남의 집 안방을 쑥밭으로 만든 뒤에, "더 힘을 기르고 우리에게 대들어라."라는 식의 조롱을 남기고 유유히 떠나 버린 격이었다. 도르트문트는 안방에서의 쓰디쓴 패배의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뮌헨과 레버쿠젠에게 선두를 내주어야만 했다.
도르트문트는 절치부심, 후반기에 있을 뮌헨 원정전을 기다렸다. 이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양팀간의 격돌이었다. 도르트문트는 경기 시작부터 바이에른을 압도하였다. 아모로조와 로시츠키가 연이어 칸과 단독으로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후반 중반 즈음에 아모로조가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바이에른의 골네트를 뒤흔들었고, 잠머 감독 이하 선수단 전체는 흥분했다.
"드디어 뮌헨에서 이기는구나!"
도르트문트가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러나 바이에른의 간판 골잡이 지오바네 에우베르의 기묘한 헤딩골이 터져 나왔다. 센터 서클 부근에서의 날라온 공을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외곽에서 머리로 띄운 것이 앞으로 나와 있던 옌스 레만 골키퍼의 키를 훌쩍 넘어 골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경기 후, 제바스티안 켈은 "에우베르는 정말 우스운 골을 성공시켰다."라는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만큼 무승부에 그친 아쉬움이 진했던 것이다.
"모두가 폭발해야 한다"
지난 시즌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를 제패하였다. 도이치 마이스터로서 마이스터샬레(우승 방패)를 들고 베스트팔렌슈타디온에서 성대한 우승 기념식을 거행하였지만, 일부에서는 도르트문트의 우승을 폄하하기도 하였다. 이는 시즌 전반에 걸쳐 바이에른 뮌헨, 바이어 레버쿠젠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을 자신들의 라이벌이라 주장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적상으로는 바이에른의 라이벌이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
마티아스 잠머 감독도 이점을 분명히 의식할 것이다. 그렇지만 잠머는 바이에른전 승리가 최우선 과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로지 분데스리가 2연패만이 최대 과제이며 바이에른전은 그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는 승리에 대한 욕심을 비웠다는 뜻이 아니다.
"패배는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승점 5점차는 우리의 목표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이에른전 승리가 우리의 우승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시즌 우리는 바이에른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마이스터의 자리에 등극하였다. 따라서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려라. 바이에른전 패배는 시즌 우승으로 충분히 보상되고도 남는다."
"매우 흥미진진한 한 판이 될 것이다. 양팀은 모두 필승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번 경기는 승점 3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패배의 기억을 잊고 절대적인 의지로서 플레이에 집중한다면 바이에른은 더이상 두려운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믿어야 한다."
잠머보다는 2살 위의 선수로서 후배 감독을 모시고 있는 슈테판 로이터는 잠머와 함께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끌어올리고자 노력한다. 이 노련한 베테랑 미드필더는 지난 10년에 걸쳐 바이에른을 상대로 싸워왔기에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의 승리를 위해 그 누구보다도 필사적이다.
"자기 확신과 투지가 중요하다. 모두가 폭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보다도 휠씬 더 힘차게 그라운드를 휘젖고 다녀야 한다."
수비진의 주축으로 스위퍼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 크리스티안 뵈른스는 위기에 직면한 바이에른이 거칠게 나오리라 예상하였다.
"매우 특별한 매치이다. 휘청거리는 권투 선수가 오히려 더 무서운 법이다. 그들은 지금 경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력이 다할 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그들은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이다."
코뼈 부상을 당해 마스크를 쓰고 출전해 왔던 크리스토프 메첼더는 바이에른전에서는 맨얼굴로 나올 예정이다. 메첼더는 양팀 선수간의 경쟁 의식이 극도로 과열되는 사태를 염려하고 있다.
"엄청나게 결렬한 경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양팀 선수들 모두 어디까지가 축구 규칙 한도내의 플레이인지를 시험받고 있다. 한도를 넘어서는 플레이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양팀의 선수들 가운데 그 누구도 고의적으로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는 반스포츠적 행위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어린 메첼더가 축구가 아닌 '전투'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간 양팀의 경기에서는 축구외적인 험악한 장면들이 자주 연출되어 관중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올리버 칸은 하이코 헤어리히의 목을 물어 뜯으려는 위협적인 몸짓을 취했고, 차퓌사트를 향해 이소룡식의 날라차기를 멋지게 구사하였다. 도르트문트의 에바니우손은 대표팀 선배인 에우베르의 정강이를 발로 사정 없이 가격, 선후배 사이의 도의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올리버 칸 만큼이나 열정적인 레만 골키퍼는 에우베르에게 실점을 당한 직후 고의적으로 그의 어깨를 밀쳤고, 곧이어 에우베르와 레만 사이에 거친 고함이 오갔다.
양팀의 맞대결에서 심판 임무를 배정받은 이들은 꽤나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어쨌든, 분데스리가 양대 명문의 자존심 대결이 전투를 넘어선 축구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한 번 승화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