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7. 27. 10:45
▲태조 이성계(나이든 모습)
▲태조 이성계의 젊은 시절 모습. 최근 사진과 불탄 초상화를 바탕으로 복원됐다. 국립고궁박물관
몰래 찍은 사진 덕에 되살아난 ‘젊은 이성계’
2013년 복원된 영흥 준원전(永興 濬源殿) 의 어진은 경기전 어진보다 훨씬 더 젊은 이성계의 모습이다. 수염은 검고, 얼굴은 말라 광대뼈와 턱뼈가 도드라진다. 눈빛도 매섭다. 왕이라기보단 장군의 얼굴이다. 초상화 전문가인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준원전본의 원본은 아마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성계는 <명종실록>의 기록처럼 고려의 문하시중 시절에도 초상화를 그렸다. 준원전 어진은 왕이 되기 전 초상화의 얼굴에 곤룡포(왕의 정장)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 준원전 어진의 복원 과정은 극적이다.
이 복원된 어진의 원본은 1900년 준원전 어진을 베껴 그린 것이다. 그러나 1954년 부산 창고의 불로 이 원본은 얼굴 대부분을 포함해 오른쪽 절반이 탔다. 이렇게 이성계의 젊은 얼굴은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1913년 사진 촬영된 영흥 준원전의 젊은 이성계 초상화.
2005년 함남 영흥 준원전 어진의 일제강점기 흑백사진이 공개됐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서울에 있던 48점의 어진은 왕가의 엄격한 법도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부산 창고에서 얼굴을 잃은 어진에 준원전 어진 흑백사진의 얼굴을 더한 것이다.
이종숙 고궁박물관 연구관은 “준원전 어진은 정면상으로 거의 좌우대칭이어서 복원에 유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준원전 어진은 59년 만에 되살아났다. 영화 <관상>에서 배우 이정재가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말해 유명해진 세조(수양대군)의 어진 초본(데생)도 최근 기적처럼 나타났다.
세조의 어진 2점도 1954년 부산 창고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1935년 김은호가 그린 세조 어진 초본이 2016년 경매에 나왔고, 고궁박물관에서 이를 구매했다. 어진 제작에 사용되지 않은 초본은 반드시 세초(초본을 없앰)해야 했으나, 김은호가 몰래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어진을 보면, 세조는 둥글넙적하고 통통한 얼굴이다. 계유정난과 사육신 사건으로 수백 명을 학살한 폭군의 이미지와 달리 부드럽고 순한 인상이다. 아버지인 세종도 고기를 좋아하고 뚱뚱했다고 <실록>에 적혀 있다. 어쩌면 세종의 얼굴도 세조 어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고궁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세조 어진을 복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종숙 연구관은 “현재 초본은 윤곽선만 남아 있어 복원이 어렵다. 초상화는 옷이나 얼굴 빛깔과 음영, 눈빛에 따라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