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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성
모자람 없이 넉넉함
섬 속의 섬
오키나와 토카시키손
여행의 끝은 항상 서럽다.
또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것처럼 아쉽다.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 드디어 가고 신선한 가을 이 왔다.
항상 미련처럼 남아 있는 섬에 대한 노스탈지어를 고백하는 시간으로 ..
계절의 귀퉁이에서 여행의 추억을 꺼내 먹는다.
낯선 풍경이 익숙한 풍경으로 바뀌는 일은 여행이 주는 선물중애 하나다.
돌아오고 떠나고 늘 떠난 여행을 떠나서 발자국 닿는 곳마다 마음의 조각들을 뿌리고 싶다.
마치 동화속 헨절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빵조각을 땅에 뿌렸듯이...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스케치 하면서 .. 설레임으로 남쪽으로 뛰어본다
오키나와는 비행기로 두 시간여밖에 걸리지 않는다. 오키나와가 가지고 있는 많은 끌림 중에 하나는 단연 남쪽이라는 데에 있다. 남쪽이라는 뉘앙스는 확실히 심적인 온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기후는 물론 때 묻지 않은 풍습이 결코 낯설지 않다. 찬란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도 많은 여행 디자인 중에 하나이다.
밤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파라다이스 거리에는 가로등 사이로 비 가 흩날렸다. 하늘에서 아무런 필터 없이 그대로 땅위로 내리는 비.사방은 비가 스며드는 흙냄새와 함께 아직 나라가지 못한 여름 꽃의 향기를 같이 내어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파란하늘이 먼저 들어왔다. 비온 뒤에 남쪽하늘 그리고 남태평양을 깔고 않아 있는 오키나와의 아침,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류큐의 심장 首里省은 지난해 봄 다녀간지 얼마 안 된 터라 이번에는 모자람 없이 넉넉함이 숨은 이야기가 있는 거리와 섬 중에 섬을 걸어보기로 했다.
Tokashiki Island
沖縄 섬 속에 섬 토카시키손 (渡嘉數村)
누구나 섬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주는 이미지는. 또 마음속에 감춰진 그 감성은 섬을 그저 한낮 땅으로 느끼지 않고 하나의 이상향으로 바라보는데 있나보다. 느림과 낮음 그리고 고독, 때론 회피의 결정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하늘은 역시 맑았다.
바다 역시 그 이야기처럼 그렇다는 애기일 것이다.
배가 출발하는 토마란 항구로 가서 배를 탄지 한 시간 동중국해 끄트머리를 지나면 케라마제도(慶良間諸島) 내에 있는 토카시 섬이 얼굴을 내민다. 일본 본토가 한창 추울 1월일 때도 제일 먼저 벚꽃이 피는 온화한 기후이다.
선착장에 내려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돌더니 이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 정성에 선후 다시 해변을 따라 청정비치 아하렌까지 달려갔다.
버스에서 잠시 보이던 바다는 내가 이제껏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느 유명인의 여행기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의 바다 이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쪽으로 쏠려 탄성을 자아낸다. 그 푸르름은 때론 냉정하게 또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섬을 안고 있었다.
비치 정류장에 내려 내가 할 일은 물론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걷고 걸어 바다 쪽으로 난 샛길을 지나 펼쳐지는 오키나와, 아니 토카시키의 바다. 아하렌 비치 찰박하게 해변으로 다가서는 물결의 간지러움 그리고 바다에서 부터 흩날리듯 불어와 마치 벚꽃 잎처럼 조용히 백사장에 가라않는 바람. 해변의 잇던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말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호들갑 떨지도 않았고 뛰지도 큰소리도 치지 않았다. 이곳 토카시키의 해변 오키나와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 悠悠自適 .
나는 결국 여기 있었다.
작은 섬의 큰 매력
제일 먼저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몇몇의 집이 있는 마을을 통과해 어렵지 않게 구분 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 중간 즈음에서 해변의 전체 모습이 가득 들어온다. 이것은 분명 신이 아끼는 보석의 물을 바다라는 큰 항아리에 따로 담아둔 것 같았다. 멋스럽다.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곳 너무 멋져서 그래서 다가설 수 없어서 이상한 감정으로 체념을 하게 되는 곳이다. 이제야 바다가 주는 커다란 희망함의 또 다른 한 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닌 바다가 그냥 있는 것 .이곳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다.
해변으로 내려가 백사장을 따라 걷고 전망대에 올랐다. 물론 해변을 따라 걸을 때는 맨발이어야 했다. 반대편에서 보는 해변 이번에는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며 눈에 못 담은 풍경을 찰깍 찍었다. 이제 담았으니 됐다. 라는 마음이 작용했다.
여행을 하면서 무언가에 행복을 느끼는 일은 정말 낭만이다, 여기에 여행의 테마를 더하면 나만의 개성있는 여행이 탄생한다. 취미를 덧칠하고 모험을 쫓고 생경함에 도전할 때 여행은 새로워진다.
여행을 하면서 순전히 느낌에 편안함이기만이 쉽지 않은데 나는 분명히 마음에 부표를 뛰었다.
다른 섬들과 그들이 허락할 바다를 몇 번 더 볼 것 같은 예감이 고운 모래 자락에 스친다
모자람이 없는
파라다이스 거리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가볍게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시끄러움을 떠나 조용한 옛 정취를 느끼러 걸어본다.
이방인 마음에 서려있는 아련한 향수를 달래줄 고즈넉함으로 가득하다.
여행지 어디를 가나 도시를 시각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항상 직접 두발로 걸으며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고였다. 파라다이스 거리(Paradise Street) 오른쪽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로가 있고 왼편에는 낮은 건물들이 있다. 건물 색체는 강하지 않고 골목에는 세탁소 자전거포가 있고 그 위로 모노레일이 이 지나갔다. 이후 도랑을 건너는 조그마한 다리를 건넜다. 뚜벅이 걸음으로 입체적으로 기억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파라다이스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 습하지만 맑은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남쪽나라여서 그랬을까 평소보다 발 검음이 발랄해졌다.
아무래도 지난해에도 온 터라 낯설지 않은 나하 주변 깨끗한 거리가 발걸음을 편하게 한다. 하늘은 오후가 넘어 가면서 어두워 젓지만 불안한 밤을 예기하지는 않았다.
토마린 항구에서 오키나와 최대 번화가인 국제시장으로 가는 사이 길이 파라다이스 길이다. 잘 꾸며진 자그마한 카페들과 식당들은 이 거리를 차분한 소품들처럼 꾸며져 있었다. 조그만 식당 사이로 왁자지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정경들이 화려하지도 튀지도 않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한 면을 보여준다. 충분, 이 모든 것이 모자람 없이 넉넉한 것,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겠지.
알수록 갈수록 커지는 매력
1마일의 기적 국제거리
국제 거리(国際通り)는 오키나와 현 나하시의 현청 북쪽 출입구 교차점에서 아사토 삼거리에 걸친 길이 1.6킬로미터의 거리의 명칭이다. 전후의 폐허로부터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과 길이가 거의 1마일인 것 때문에 '기적의 1마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하 최대의 번화가이다.
국제거리는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있는 길이 1마일에 불과하지만 주위에 마키시시장과 츠보야 도자기 거리, 미도리카오카 공원까지 연결돼 갈수록 매력이 커진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이곳을 들르게 마련이다. 이곳은 2차 대전 이후 미군이 점령후 폐허의 가까웠던 오키나와에서 가장 빨리 복구된 지역이기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국제거리를 1마일의 기적으로 부른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모든 것이 없어진 발판에서 패배적인 면을 빠르게 지우고 다시 이렇게 이루어 놓았다. 거리 자체가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크게 빠르지 않았다.
일본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면 요리, 소바(蕎麦)
우선 오키나와의 소바를 먹어보기로 했다. 한산한 곳으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음식을 고른 후 동전을 넣은 후 티켓을 받았다. 자판기 주문은 일본에서는 낯선 방식이 아니다. 심심한 맛에 찰기 없이 톡톡 끊어지는 면발 그리고 미지근한 온도의 국물. 잔치국수 국물의 우동면을 넣은 것 같은 맛 그만 소바를 남기고 말았다.
소바하면 메밀소바 인지 알았는데 여기 오키나와 소바는 좀 특이하다.
소바는 원래 메밀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메밀국수인 소바기리(蕎麥切)를 일컫는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소바는 메밀가루가 아닌 100% 밀가루로 반죽을 한 면을 굵직하고 짤게 썰어 끓여내기 때문에 면을 씹는 식감이 뚝뚝 떨어지듯 약하다. 소박한 고명과 돼지뼈로 우려낸 맑은 국물이 특징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확실히 싱겁다.
국제거리에서 바로 연결되는 제1마카시 공설시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미군부대가 주둔이후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도깨비시장 이었지만 지금은 각종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판매하는 오키나와의 부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생선을 파는 집이 있는데 긴 의자를 두고 회도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연어와 한치, 문어와 돔 등이 조금씩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는 회의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회를 하나 집어 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서양인은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의 회를 시키고선 쩔쩔매고 있었고 많이 먹어본 젓가락으로 회를 먹어보라고 한다. 회 한접시의 성찬으로 나야 충분하다.
조선의 도자기 숨결
츠보야 거리 Tsuboya Pottery Village
츠보야 거리는 오키나와가 자랑하는 도자기인 츠보야 야키(壷屋焼)가 태동한 발생지이다, 류큐왕국은 300여 년 전 큐슈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의 도공을 모셔와 오키나와에도 도자기를 전수케 하였고 이후 오키나와는 다른 독자적인 도자기 예술 문화를 입혔다.
사실상 중화권과 가까운 류큐 왕국에서 조선의 도공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우리의 도자가 문화가 이미 도자기 원조인 중국을 넘어 정점에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츠브야 거리로 가기위해 우선 국제거리 안내소로 들어갔다. 안내인은 일본 특유의 친절함으로 설명해 주었다. 몇 장의 지도와 안내서를 받았다. 도자기 거리는 가게와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인 일종의 특화거리로 국제거리에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금은 서울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호객을 한다든가 화려한 간판을 내세우는 등의 상업적인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오후 일찍 문을 닫는 일본의 상점거리 처럼 일부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아 한가하다.
오키나와의 수호신 시샤.
시샤(해태상)가 보고 싶다면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것이 아닌 순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수백종류의 각각 다른 모양의 시샤(해태상)를 시샤 공방거리에서 볼 수 있다. 시샤는 해태와 비슷한 상상 속에 동물로 오키나와 거리를 걷다보면 집과 상점은 물론 공공장소 도로변 어디에서나 시샤를 볼 수 있다. 물론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시샤는 수컷.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시샤는 암컷을 상징하는데 수컷은 들어온 행운을 입으로 물고 암컷은 그 행운이 나가지 못하게 꽉 가두어 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 한 쌍으로 이루어 저 있는 시샤는 익살맞고 귀여운 모습에서부터 무섭고 희화된 것까지 무수히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시샤를 지붕위에 올려두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물리친다고 해 오키나와에서는 시샤를 수호신으로 여긴다.
도자기 박물관도 있어 들려 볼만하다.
우리나라 도공들이 츠보야에 마을을 형성하고 가마짓는 법부터 도자기 기술을 전해 주었다.
오키나와 중부에는 전통 공예와 음악에서 미국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미탄은 도자기로 유명하고, 요미탄 츠보야 스타일 도자기, 요미탄 야마 도자기, 요미탄 야마 도자기 키타 가마와 같이 독특한 도자기를 생산하는 다수의 도자기 공방이 있다.
도자기 공방이 빚어내는 도자기의 매력이 또 하나의 목가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도자기 공방 주변의 수많은 갤러리와 카페에서는 손으로 빚은 도자기가 주는 따뜻한 느낌을 즐길 수 있다.
원더힐과 선셋
아메리칸 빌리지
Mihama American Village
골목 맛집에 들려 나오자마자 선셋 원더힐로 향했다.
알수록 깊고 갈수록 다양하다, 오키나와가 그렇다.
느린 시간, 감상 가득한 조용한 거리를 걷고 싶은 거리, 사람들을 위한 해답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항상 선셋을 볼 때면 서둘어야 한다. 절대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내 감정의 맥박은 언제나 최대치로 올라가나보다.
한 여학생이 조용히 버스에 올라타더니 내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묻고는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갔다. 버스는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올라갔다.
끝없이 넘어 가지만 결국 돌아 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선셋과 원더힐.
땅위에 선셋 하늘에 원더 힐이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미군시설이 있던 곳이었으나 해안을 따라 있던 비행장이 일본으로 반환되고 1988년 비행장터 북쪽에 인접한 해안이 매립지로 조성된 후, 도시형 리조트의 아메리칸 빌리지로 재정비 되었다. 이름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애초부터 미군시설들이 있던 탓에 어딘가 미국스러운 느낌이 나는 위락 단지이다. 식당과 상점 그리그 거리의 분위기 모두 미국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웨스턴 느낌이 나는 곳이다.
이곳은 실제로 미국 센디에고에 있는 씨포트 빌리지(Seaport Village)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선셋 비치가 있다. 오키나와에서라면 어디에서고 멋진 선 셋을 볼 수 있을 터이지만 원더힐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오늘에 멋진 마지막 태양을 보내기로 했다. 선셋 비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연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아니 석양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가녀린 음악소리는 마치 바람 줄기처럼 휘익 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정말 순수하게 보이던 넓은 하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안 에 서서히 스며드는 별들 그사이에 석양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침묵의 시간에 나도 함께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했다.
이제 마지막 땅에 남은 태양을 볼 시간 그것은 도시의 별사이에 처연하게 빛나는 원더힐 이였다. 일본인들처럼 원더힐을 사랑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빛나고 있던 그것은 오래전 영화인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의 마지막 씬 처럼, 미얀마에 이야와디강을 건너오다가 본 만델레이의 그것처럼 그리고 뉴욕의 코니아일랜드처럼 오늘도 열심히 땅위에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의 쓸쓸한 추억을 곱씹고 있었다.
독자적인 문화를 이어 왔던 류큐의 땅 오키나와.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여행한다는 것은 낭만적이다.
예전에 류큐(沖縄)왕국으로 불렸고 일본으로 귀속되기 전에 분명히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이어온 류큐땅.
류큐와 오키나와 그 사이. 그 짤막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