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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1떄 시작한 등산캠프가 올해로 나에게는 3년째가 되었다.
첫해, 설악산탐방은 처음이라는 두려움, 두 번째 태백산 등산 때에는 종주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등산캠프가 다가오는 것을 마냥 두려워했던 나였지만, 올해는 잔뜩 부푼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등산자체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 부모님에게 기대지 않고 나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이것들을 다시 한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기대가 되어 두려움을 모두 사라지게 해주었다,
매년 함께 참가 해왔던 내 오래된 친구이자 친척 진주를 오랜만에 만나 바리바리 싸든 짐들과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 거의 다다른 길에 부푼 마음을 정리하며 창문 밖으로 바다풍경을 내다 보았다,
화창한 햇볕아래에 피서를 즐기러 모여든 사람들의 햇볕만큼이나 밝은 표정이 내맘을 대변해 주는것같아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모두 바다로만 모이는 피서철에 나는 꺼꾸로 산을 향한다는 묘한 즐거움도 생겨났다. 좋은 시작이다.
첫째날 7월 31일
단체로 나누어준 초록색 티셔츠의 초록빛이 강릉 종합운동장에 드문드문 보였다. 도착해 보니 아직 모두가 온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등산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많아봐야 열명쯤 와있는 강릉 종합운동장에 내려 어색함에 진주,나 그리고 내동생 지환은 옹기종기 모여 목소리까지 낮추어 가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무섭게 생기거나 성격이 안좋게 생기지는 않아 조금 안심하였다. 속속들이 모이는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강릉 운동장 바깥쪽의 소집장소를 매우기 시작하였다. 한 명 한 명 경계와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두들 착한것 같아서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어디서인지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두 사람이 나타나 순간 운동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조금 피곤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쁜 아이들은 아니었다.
발대식을 진행하면서 간략한 선생님들 소개를 듣고 제 10회 등산캠프를 여는 말을 들었다. 조금 지루했지만 시작이라는 두근대는 단어가 자꾸 들려 딴청을 피울 수도 없었다. 부모님과 5박6일 이란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작별인사가 길었다. 이제 5박6일 그 길고도 짧은 여정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계속 들뜨게 되었다.
관광버스에 올라타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강릉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출발한지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라파즈한라시멘트공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삭막한 공장의 분위기가 어째 조금 으스스 한것 같기도 했지만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강의실 안에 들어와 앉아 있으니 조금 나아졌다. 한라 시멘트가 망해서 라파즈에 먹혔다는 음울한 얘기를 하는데, 사실 조금 졸렸다. 그래서 계속 옆에 진주와 소근소근 잡담을 나누며 킬킬 대었다. 서로 대화한 내용은 진주와 나만 알겠지..ㅋㅋ
한라시멘트에 내린 이유가 공장견학 및 점심식사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직원식당으로 향하였다. 우리가 식당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직원들은 식사를 끝마치시고 내려오는 중이셨다. 어색하게 인사하며 들어선 식당엔 요리사의 상징인 기다란 모자를 쓰신 요리사와 깔끔한 테이블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식사를 하게 되자 어쩐지 땡 잡은 기분이었다. 오이냉국과 불고기가 입맛을 땡기는 맛있는 식사였다. 하지만 진주와 나는 떠들며 먹느라고 식사가 늦어져 식판을 깨끗이 비우지 못하고 잔반을 버리고 말았다.ㅠㅠ
다시 차에 올라 도착한곳은 바로 백복령! 바람이 휘몰아 치는 그곳에서 첫!등산을 하게 되었다. 바람이 씽씽 부는 덕에 머리가 마구잡이로 흔들려서 머리 수습하느라 모두들 제대로 준비운동을 하지 못했다.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뒤에 새로 나누어준 노란 가방을 메고 내가 속한 1조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물론 바람이 뺨따귀를 마구 쳐대어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일랑 쥐꼬리 만치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나중에 부모님들과 학생들 모두가 볼 조의 사진이니 잘 찍어야 겠다고 생각 하였다.(이사진이 수료증에 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사진을 찍고 1조부터 일렬로 줄 서 출발하였다. 좁은 산길을 헤쳐나가는데, 생각보다 그 길이 험했다. 첫날이니 워밍업으로 한 두시간 정도만 등산 할줄 알았는데! 몸도 아직 산에 익숙하지 않고, 처음 보는 조원들 사이에서 가려니 몸이 더욱 지치는 기분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의 험난한 등산을 몸이 다시 기억하는 듯 하고, 일순 긴장감에 몸이 빠짝 굳었었지만, 어찌되었건 내가 마음먹고 내가 결정한, 나의 업보이기에.. 마음을 비웠다. 내일과 내일모레는 더욱 힘들텐데 벌써부터 힘빠지면 쓰겠나,싶어 활기찬 마음으로 재정비했다. 쉬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텀이 예상외로 좀 길어서 당황했다. 하지만 산이 험준하지는 않아서 견디고 열심히 올라갔다. 끝이 올듯 말듯 나를 약올리더니 이제 좀 적응되어 괜찮아 졌다고 느낄때 즈음에 아쉽게(?) 도착하였다.
도착한곳은 자갈이 쌓여있는 <삽당령 산림동자연구소> 깔끔하고 화장실도 아주 잘 되어있는 퍼펙트한 야영장소였다. 아직은 어색한 조원들과 텐트를 치기 위해 끙끙 대기를 한 30여분 그나마 작년에 한번 와본적있는 성민과 올해로 세번째인 내가 나머지 조원들과 힘을 합쳐 텐트를 완성하였다. 뼈대가 완성되니 나머지는 순식간이였다. 뿌듯해 하기도 잠깐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에 밥 준비를 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종자연구소를 쨍쨍 울렸다. 조장을 소집하는 내용에 우리 1조의 조장인 예은이는 군기가 바짝 들어 튀어 나갔고, 나머지 조원들은 짐을 풀며 서로의 어색함도 풀어 내었다. 역시나 인스턴트 식품뿐인 저녁이 었지만, 내손으로 직접 해먹어서 그런지 꿀맛,.같았다. 밥짓기는 집에서도 종종 하는것이여서 내가 하였고, 밥집기는 나와 예은이 하였다, 버너 설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박지원 쌤이 해주셨다, 우리가 손수 한 밥을 말끔이(는 아니었던게 솔직히 육개장은 진짜 맛이 없었다)해치우고 2학년들에게 미안하지만 설겆이를 떠넘겨 주었다. 얘들아 미안... 모두들 오늘산행으로 땀에 흠뻑젖은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떠들다보니 조원들끼리, 혹은 여자애들끼리의 어색함이 풀려 가고 얼굴도 슬슬 익숙해져 한명한명 누가누군지 머리에 들어 올때쯤 하늘이 어두워졌다. 모두들 모여 앉아 얘기를 하고 있을때, 선생님이 모두들 모여 앉으라고 하셨다. 작년 후기에 보니까 뮤비도 틀어주고 하셨다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매트를 질질 끌어 맨앞에다가 놓고 앉아 수다를 떨며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등산기술에 관한 영상만 계속 나와 떠들다가 작년에 방송되었던 백두대간 생태 탐방 영상을 보고 성민이를 신나게 놀렸다. 그뒤로 뮤직비디오가 나와서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 하였다. 워우허어궝거ㅓ구어거억!!!!!!나르샤아아가!!!!!!!!우허아아구워거가어거!!!!!!태야앙!!!!!!!워어거우너거거어!!!!!!!!!!쏴이니!!!!!!!!재밌었다.그렇게 첫째날 밤이 저물어만 갔다....그런데 우리는 새벽 3시까지 떠드느라 잠들지 못했다는,
둘째날, 8월1일
새로운 달의 시작!을 산에서 맞다니.
정말 아침부터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핸드폰 요금도 새로 들어와서 약 2주간 밀린 문자며 통화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밀린 문자와 통화를 하기엔 아침 시간이 빠듯했기에 우리는 서둘러 움직였다.
6시 에 김남균 선생님의 기상! 일어나! 소리에 모두들 부스스한 얼굴로 깨어나 아침 특유의 서늘하고도 스산한 기운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두들 정신 못차리고 비몽사몽간에 비틀거리던 그때 어김없이 선생님들의 “각조 조장! 모여!” 소리가 들려 왔다. 역시 우리 조장 예은이는 굼뜨게 침낭 정리를 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잽싸게 본부로 달려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매트를 꺼내고, 침낭을 정리하고, 오늘 산행에 필요한 행동식과 물건들을 챙기느라 정신 없었다. 후다닥 아침을 챙겨먹고 2학년들을 코펠들과 함께 수돗가로 밀어 넣고는 3학년인 예은이와 나는 물을 뜨러 갔다. 아침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역시 전날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노란 가방을 메고 오늘 산행의 첫시작인 스트레칭을 하러 텐트 앞쪽의 공터에 모였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계속 뿜어져 나오는 하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늘이 5박6일 중에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처음 등산 내내 몸이 말이 아니었다. 오기 전에 눈에 다래끼가 나서 걱정했었는데 그게 하루새에 더욱 커져서 눈을 계속 피곤하게 만들었고, 아침부터 격한 산행에 속은 울렁거리고, 밤에 잠을 못잔덕에 피로가 누적되어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좀만 더 가다간 무슨 일 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등산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기서 힘들고 아프다고 투정부리며 못가겠다고 떙깡 부리면 제대로 된 등산 첫날, 처음부터 의지박약으로 찍힐 것 만 같아서 지금 몸 상태를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약을 먹고 산행을 계속 해나갔다.
계속 속이 답답해서 가슴 쪽을 압박하던 벨트를 풀어내었다. 헐! 이것은 신세계! 나의 모든 몸의 고통은 그 벨트로부터 시작되었나니! 아니 어떻게 이럴 수 가 근 1시간을 나를 괴롭히던 두통 복통 안통(眼痛)이 싹 없어 지는 것이 아닌가! 그뒤로부터는 가뿐하게 날라 다녔다. 오늘 산길은 참 예의(?)가 발랐다. 오르막길이 좀 버겁다. 싶으면 내리막길이 나와 우리를 달래주었고 이제 호흡이 좀 안정되었다 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이렇게 별로 힘들지 않게 산행을 이어 나가던 중, 어마어마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높이! 나는 끊어 지려는 정신줄을 간신히 잡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힘든길, 지구력이 쥐뿔도 없는 나는 금세 지쳐 비틀거리며 힘겹고 올라가는데, 앞사람과의 거리의 격차가 자꾸 벌어지는 것 같아 더 버거웠다. 뒤를 돌아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 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더 쳐졌다간 큰일 날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한걸음을 떼었다, 이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다. 이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다. 자기최면을 걸며 저위에 보이는 희미한 햇빛에 의존하며 정말 기어 올라갔다. 드디어 다 올라....! 정상은 아니었다. 피어오르는 배신감은 누구를 향한 것 인지 방향을 잃었다. 하지만 이 가파른 오르막을 내가 올랐다는 뿌듯함으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등용문 가는 길만큼, 요단강 헤엄치는 것만큼 , 힘든 오르막을 몇 번 더 오르고 나서야 겨우겨우 두리봉에 오를 수 있었다. 조별사진을 찍은 후에 시간을 확인해 보았는데, 헉! 11시도 채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누리며 맘껏 쉬려고 하였는데... 좌절감이 들었다. 석병산에도 가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아 그 산은 이제 또 얼마나 멀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점심 먹으려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금방 갈 것이 분명하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예상대로 즐겁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다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준비해간 주먹밥을 먹었다. 내 입맛엔 별로 맞지 않아 많이 먹지는 않았다. 조원들은 쇠고기 볶음 고추장을 찍어 먹는다며 꽤 맛있게 먹었지만 평소에도 매운 것은 질색하는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 먹지 않았다. 점심식사 후에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금방 올라 갈 것이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정말 정말 오르막길로만 갔다. 빨리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체감하기엔 3박4일은 오른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정상에 오른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석병산에서 하산하는데, 사실 오늘의 최고의 코스는 바로 석병산 하산이었다.
분명히 내려오는 길인데, 선생님들의 저~기 까지만 가면돼. 하는 말을 철저히 배반하고는 오르막이 나타나곤 했다. 진주와 나는 치를 떨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 투덜거려 주위에서도 짜증이 났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분노의 걸음으로 그날의 등산을... 마무리 지었다. 첫째날에 갔던 배추 썩는내 진동하는 그 길을 다시 걷게 되었는데 첫째날에는 짧게 느껴지던 길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발목과 발바닥이 울부짖었다. 내 발바닥이 온갖 물집들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종자연구소에 와서 살펴본 발은 멀쩡했다. 그 날 저녁에는 모두모여 오타쿠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진주가 아예 1조로 이적해 온 덕분에 우리는 충만한 식량으로 맛있는 밥을 해먹을 수 있었다.
셋째날 8월 2일
오늘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셨다, 전날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에 우리는 빨리 잠들었고, 아침에도 가뿐이 일어날 수 있었다. 전날 해본 아침준비 덕에 더 수월하게 느껴지는 아침밥 짓기와 짐 챙기기는 빨리 빨리 준비되었다. 그래봤자 1조는 그 명성대로 굼뜨기 그지 없었다.점심으로 라면을 먹어야 해서 준비물(코펠, 라면, 바람막이,등)들을 조원들과 나눠 챙겼다,
물을 뜨고 오늘은 별로 어렵지 않을테니 즐기자! 하는 마음을 다지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일렬로 줄지어 시작한 산행은 생각대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 비! 비! Rain! Rainism! 분명 멀쩡하던 날씨가 아침을 챙길 때 즈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5박6일간의 여정동안 꼭 하루 이틀은 비가 내려 우리를 당혹케 했는데, 올해라고 비가 우리를 피해가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한눈에도 더워 보이는 바람막이를 입고 차마 쪄죽을 자신은 없어서 우비는 입지 않았다. 그런데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멈추는 듯 보였다. 오오! 반색하며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 가방 안에 쑤셔 넣고 다시 산행을 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더 쏟아지는 것이다. 귀찮아서 비 오면 오는거지 하는 마음으로 우비고 바람막이고 입지 않고 질척질척한 몸을 이끌어 가며 산을 올랐는데, 점심 먹을 때가 되니까 몸이 덜덜덜 떨리는 것이 감기 들기 딱 좋은 온도와 상태 인 것이다.
여기서 감기 걸리면 나머지 3일을 이끌어갈 수 없기에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비 오는데 깔고 앉을 것이 없어서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우리 조는 어느 다른 조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집에서도 친구집에서도 친척집에서도 개집에서도 먹는 흔하디 흔한 라면대신 굉장히 신비로운 고추장 라면볶이를 해 먹기로 하였다. 어제 주먹밥에 곁들여 먹으라고 준 고추장을 긁어모아 물기를 뺀 라면 면발에 짜넣어 비벼 먹었다. 쇠고기 볶음 고추장이라서 더 맛있을 것 같았다.
모두의 호기심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 조는 온갖 허세를 부리며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솔직한 나는 한 젓가락만 먹고 먹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맛이 없었다. 나중에 진주도 맛없었다고 전해 주었다.
비가 너무 내려 쉬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 나는 빨리 출발하고 싶어졌다. 온갖 젖은 풀때기와 흙따위로 더렵혀진 가방커버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휴지를 얻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아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더러운 가방커버를 깨끗이 씻겨주었다. 쫄딱 젖어 벌벌 떨며 정상을 향하는데 오르막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비가 너무 내려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정상에 오른 후엔 한 젓갈 밖에 먹지않은 라면덕에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절로 났다. 비가 오는 덕에 자주 쉬지도 않고 쉬어도 행동식을 꺼내 먹지 않아서 나는 정말 100% 공복이었다. 게다가 눈에 난 다래끼가 수분을 머금에 띵띵 붓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가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나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산행을 이어 나갈 수 가 없는 기분이었다. 약을 먹으려면 일단 위장에 뭐가 들어있어야만 했으므로 나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뒤지다가 먹을 것이라곤 양갱 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냥 실명을 해버릴까.. 하고 고민하다 그래도 소중한 내 EYE를 위해 나는 초코파이를 위장에 펴바르며 약을 먹었다. 그리고 계속 된 산행 끝에 도착한 꼭대기는 비바람이 휭휭 몰아쳤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일단 꼭대기라는것! 그리고 내려가는 것은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행복했다.
내리막길은 다리가 아팠고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만큼 가팔랐지만 오르막길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겨우 다 내려간 뒤에 쫄딱 젖은 몸을 버스에 뉘이며 진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산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가뿐한 내리막길을 내려온 후에 이렇게 쉬다보면 등산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어쩐지 내일이 기대되는 것이다. 비에 쫄딱 젖고, 숨이 가쁜 기억들은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결국 즐거워진다. 이게 등산의 묘미인 것 같다. 솔직히 평상시에도 등산 가기 싫다고 아침에 찡찡 대다가도 등산이 끝난 뒤에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다음에 또 와야지 이런 생각만 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셋째날의 등산도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돌아와선 비에 젖은 가방들을 텐트에 밀어 넣고, 젖은 몸을 말렸다. 비는 어느새 그쳤지만 날은 개지 않았다. 하지만 비는 그쳤기에 저녁 식사시간에는 비를 맞지 않아도 되었다.
등산화가 비에 젖었지만 내일 삼선 슬리퍼를 신고 등산을 할 수는 없었기에 신발 안에 신문지를 넣어 놓았다. 저녁을 먹은 후엔 여자아이들 모두 샤워를 한 후 매트에 모여 앉았다. 10시 30분에 모두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선생님께 아양을 떨며 조른 덕에 11시까지 시간을 연장 시켰다. 정작 할 것은 없었다. 뭐할까 작당모의를 하던 중에 남자아이들을 부르자는 얘기가 나와 어떻게 애들을 꼬여 낼까 고민하다가 선생님께서 김우주오빠를 불러주셨다. 재작년 후기를 굉장히 감명 깊게 봤었는데 직접 보니까 그냥 일반인이라서 신기했다. 내가 오빠 팬이예요! 하고 소리쳤는데 뻘쭘하게 사라지셨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해산한 후 각조의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야식을 주워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모두들 골아 떨어졌다, 비에 젖어 피곤했던 탓이다. 처음에는 불편 했던 잠자리가 그새 적응 되어 집에 있는 침대생각 마저 나지 않는 밤이었다.
넷째날 8월 3일
전날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렸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았다.
오늘은 13Km밖에 걷지 않는다고 해서 호탕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어제는 14Km였는데 무어가 짧다는 것인지! 틀림없이 오늘도 숨이 죄게 힘든 날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제와 그저께도 가뿐히(?) 지내지 않았는가.
오늘부터는 숙박장소를 옮기는 날이기 때문에 텐트를 걷어야 했다. 아침을 먹고 안에 이리저리 널려있는 여자가 쓰는 텐트라고 생각할 수 없는 쓰레기 소굴을 치울 생각에 막막해졌다. 일단 완벽 이기주의인 우리 조원들은 저의 짐만 각각 챙겨 넣은후에 손을 딱 떼어 버렸다. 짜증이 나면서도 나도 딱히 뭘 하고 있지 않아서 뭐라고 할 수 도 없었다. 조원들에게 뭐라고 소리라도 칠라면 내가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바닥에 쓰레기를 주우며 늬들은 뭐하니??!! 하며 소리쳤다.
굼뜨고 답답해도 무언가 돌아가는 기분이라서 뿌듯해졌다, 아침 먹은 코펠을 씻은뒤 정리해서 본부로 내야 했기 때문에 2학년들을 보내고 3학년인 나와 진주 예은이 모여 짐들을 끌어내고 텐트를 걷기 시작했는데 와악! 비에 젖은 텐트가 척척해서 기분이 심히 좋지 못했다. 그래도 이것은 우리조의 머스트 할 일 이기에 일단 안들어 가는 비닐과 플라이들을 쑤셔넣고 본부에 내고 그릇이 제대로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도 않는 코펠도 본부에 낸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짐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아침 부슬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널부러져 있는 우리의 짐들 중 오늘 산행에 메고 가야하는 노란 가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부에 내었다. 오늘 등산의 시작은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버스의 탑승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내려 등산을 시작해야 했다.
시작하기 전에 이정표를 보았는데 제1휴게소 까지 2.0Km 제1휴게소에서 제2휴게소 까지 2.0Km 정상까지 또 1.7Km 오, 아마 여기서 시작하면 제 1휴게소 까지 쉬지 못하겠구나! 하는 불안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예감이 뇌를 기어 다녔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중도에 한번 쉬었다, 시작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이다. 쉴 때는 웬만하면 가방 잘 안내려 놓는데, 그 휴식시간에는 가방을 내던진 뒤 철푸덕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숲해설을 들어야 했지만 진짜 너무 힘들어서 정신 놓고 멍잡기 바빴다. 그리고 계속 된 산행은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고루포기까지는 2번의 휴식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조금 버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쉬지않고 힘들게 올라가다가 맞는 휴식이 제일 달콤한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버틸 수 있었다.
고루포기산 까지 마지막 구간에 좀 고생한 것 외론 잘 올라갔었다. 그리곤 계속 내리막 이었다. 여기가 높은 가장 높은 봉이니까. 능경봉은 좀 내려가다가 좀 올라가면 만날 수 있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 했는데 그 능경봉이 내 뒷통수를 때리다 못해 축구화로 걷어찼다.
옛날에 조선시대에 영동 살던 선비들이 여기 넘어가다가 힘들어서 과거를 포기 했을 것 같은 길이었다. 숨이 깔닥 넘어 가기 직전인 초췌한 몰골로 걸음 하나하나를 죽을힘으로 내딛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뒤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불만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입다물고 올라가기만 했다. 복식호흡으로 호흡조절을 하니 숨도 별로 차지 않았다. 윗배가 땡길 지경까지 복식호흡을 하며 나는 군소리 않고 잘 올랐다. 그 고지를 넘기자마자 능경봉 오르기 직전에 꽤 넓은 곳이 나와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자리를 잡을때 내 자신이 너무 뿌듯해서 이리저리 자랑하고 다녔다.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수 없어 헉헉 거리긴 했다. 그래도 진주가 보여준 빨간모자 미친쇼로 기력을 회복했다.
라면을 먹었지만 평상시에도 라면은 절대 먹지 않는 나는 라면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다들 먹는데 안먹고 엉뚱한것만 먹는 내가 어찌 보면 청개구리 같고 보기 얄미울 것 같았지만 라면은 곧 죽어도 먹기 싫은 음식중 상위권에 랭킹 되어있기에 나는 꿋꿋이 거부했다. 밥을 안먹으니 휴식이 배로 늘어난 것 같아 심지어 지루하기 까지한 휴식시간을 보내고 능경봉을 향한 Last Step(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Last Step은 Rest Step이었다. 늘 마지막 걸음 인줄 알고 어디가 끝이라는 거야! 하며 짜증을 부렸는데, 그냥 다리를 쭉쭉 피라는 뜻이었다는 걸알고 죄송한 맘이 들었다.)을 딛었다.
난 능경봉이 코앞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라면은 먹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위에 담은 음식물이 그득했던 터라 땡기는 옆구리가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능경봉에 오를때도 고생을 깨나 했다. 그래도 뿌듯했다. 하산길도 수월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수다를 떨며 내려오느라 힘든지도 몰랐다. 온갖 심리테스트와 추리이야기 웃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를 총 집합시켜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내려오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산행을 끝내고 우리는 차로 이동하지 않고, 바로 우리가 숙박할 곳으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좁았다. 이때 촬영하는 아저씨께서 오셨다 혼자 무거운 카메라를 메시고 오셔서 적나라하게 우리의 난민같은 실상을 촬영하셨다, 그리고 평창 대관령관리소에 텐트를 칠 때 고생을 꽤나 했다. 다들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김남균선생님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아마 한동안 계속 트라우마(?)처럼 이 선생님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나는 기분을 느낄 것 같다. 이때 처음으로 이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은데, 텐트를 칠 때 무서우셨다. 팽팽히 하지 못해서 다시 못을 박고 그런 과정이 힘들었다.
저녁으로 꽁치 김치찌개와 계란국과 햄을 구워 진수성찬을 먹었다. 나는 계속 잘 먹지않았다. 이상하게 밖에 나오면 밥을 먹지 않게 된다. 박지원선생님도 맛있게 드셔 주셨다. 저녁을 먹은후에는 피자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도미노피자가 도착된 것을 보긴 했지만 나는 몸을 씻기 위해 먹지 않았다. 애들이 남겨주겠지 하는 맘으로(다행히 남겨 주었다, 착한것들)
9시쯤 담력훈련을 한다며 아이들을 이끌고 으슥한 산길을 향했는데 나는 랜턴이 없어 고생을 했다, 애들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올라가는데 이게 과연 담력훈련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야간등산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출입금지구역까지 들어선 후에는 그런 생각 따윈 저기 멀리 안드로메다 쓰레기통에 쳐다 박았다.
벌레들이 다리에 달라붙고 팔에 들러붙고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는 다 들어오려고 했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할 생각조차 못했다. 나는 결국 콧구멍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가 굴꺽 했다. 넓은 곳에 모두 모여 한팀씩 내려가는데 나와 진주와 예은이 가장먼저 내려 가게 되었다, 나는 공포영화도 좋아하고 귀신같은 것을 별로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여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진주와 예은이는 모태신앙이다 뭐다 뒤에서 주기도문인지 그런 것을 외면서 정신없게 해서 무서울 것도 다 없어져버렸다.
게다가 난 랜턴이 없어서 애들이 비춰주는것에 의지해서 가야하는데 계속 수선을 피는 바람에 계단이 모이지 않아 귀신이 날 놀래키던 내 간을 파먹던지 그딴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고 내가 이러다가 발을 헛딛어서 굴러 떨어져 다시 눈을 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더욱 나를 공포감에 덜덜 떨게 만들었다.
처음귀신은 너무 불쌍하게 우리에게 모기약을 구걸해서 무섭지 않았고, 두 번째 귀신도 애석히 파란끈이 너무 적나라해서 놀라지 않았고 비닐봉투를 흔들던 세 번째 귀신도 진작에 들켜 버렸다, 그나마 제일 완벽했던 박지원선생님이 연기한 발목잡는 귀신은 내 짜증이 한계치에 다달아 있었기 때문에 공포가 아니라 성가신 또 무언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뭐야?” 하고 조그맣게 말하고는 발을 털어 버렸다, 정말 안쓰럽게 풀숲에 누워계신 우리조선생님을 보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 었다. “선생님...뭐하세요..” “빨리가...” 아련한 대화였다. 다 내려오자 아직도 조잡하게 놀래키시는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난 모기 물린데가 가려워서 다 무시하고 모기약 찾기에 바빴다.
다 내려온 여자애들이 둘러 앉아 놀려고 했지만 빨리 자라고 우리를 텐트로 내모신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는 텐트안에 쳐박힐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은 분노의 밤이었다. Fire! 하지만 비밀의 밤이기도 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밤에 깐포도랑 황도랑 백도랑 다 까서 먹고 달아서 느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모두 잠에 들었다. 내일 모레면 집에 간다는 생각에 히죽이죽 웃게 되었다.
다섯째날 8월 4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청 바빠졌다.
텐트도 걷어야 했고 짐도 챙겨야 했고, 어제 못한 설거지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2학년들을 제외한 3학년 세명이 텐트를 걷어야 했는데, 밤새 텐트가 머금은 이슬들이 흙들과 마른 이파리들을 긁어모아 버린 것이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행색을 띄는 더러운 텐트를 접기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무릅쓰고 텐트를 건드리기 시작하였다. 손이야 씻으면 되고, 이것은 흙과 이파리일 뿐이고, 더럽지 않고, 더럽지 않고, 무해하다, 무해하다!! 자기최면으로 역경을 이겨내었다. 텐트를 다 정리 한 것이다. 뿌듯했다.
아침으로는 어제 먹다 남은 만찬을 먹으려고 했으나 당기지가 않아 다 갖다 버리고 아침으로 나눠준 자장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나도 먹었다.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을 챙기고 우리는 큰 짐과 텐트와 코펠들을 본부에 내고 노란가방을 둘러메었다, 오늘은 촬영을 해야한다며 초록색 티만 입어야 했기 때문에 초록티를 입었는데, 진주가 티셔츠를 빨아 놓고 못말리고 가방에 쑤셔 넣어 놓았는데 그것에서 진짜 정말 레알(Re;al) 썩은내가 올라오는 것이다. 진주는 제 몸이 썩기라도 할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는데, 사실 그 냄새라면 몸이 썩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주의 뒤에 서가면 등산이 배로 힘들어 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진주의 앞에 섰다.
오늘의 등산의 첫 번째 코스는 바로바로 양떼목장이었다. 나는 대관령을 자주 와본 사람 으로써 필수 코스인 양떼목장을 이미 와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노란가방과 함께라면 그 어느 곳이라도 힘 드리란 것을 알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 광활한 목장은 무엇이며, 도대체 어디다가 목장을 지었기에 오르막길이 이렇게 가파른 것이냔 말이다.
이런 아스팔트길은 산길보다 오르기에 훨씬 힘들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깊은 한숨이 위장부터 끄집어져 내쉬어졌다. 역시나 시작한지 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땀이 삐질삐질 배어 나왔다. 양님들을 위하여 양지 바른 곳에 목장이 지어졌기 때문에 햇빛이 다이렉트로 쫙쫙 내리쬐는데 더워서 죽을 뻔했다, 다행이도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 전에 한번 쉬며 양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난 아래이빨을 게걸스럽게 움직여대는 양들이 손바닥을 핥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바구니 째로 양의 입에 대어 주었다. 침 범벅이 되었을 바구니를 낸 후에 다시 등산을 시작하였다. 가장 높은 곳은 바람이 잘 불었기 때문에 시원했다. 다행스러웠다. 이곳에서 조별 사진을 찍은 후에 양떼목장 사장님께서 몰래 뒷 울타리(?)를 열어주어 우리는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난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완전 풀이 무성했다. 종아리에 빨간 스크래치가 몇 줄이나 생겨났다.
철 울타리도 건넌 후 조금 걷다보니 멀쩡한 등산길이 나타났다. 길이 꽤나 넓었는데, 이 곳 역시 햇빛을 가려줄 나무들이 별로 없었다. 한마디로 엄청 더웠다. 썬크림을 바르지 않았는데, 엄청 탓을 것 같아 불안했다. 선생님들께서 더워하는 우리에세 오늘 산행에 정상은 없다고 하셨다. 그냥 걷는 것 이라고 하셨는데 정상이 없다고 오르막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파르진 않아도 내리쬐는 햇빛과 바람 많기로 유명한 대관령에 이상하게도 바람하나 불지 않아 우리를 지치게 하였다.
단체사진을 찍은 곳 역시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유일한 바람이라곤 잠자리가 날개 짓하며 생겨난 바람정도? 찜통 같은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더 쉬자는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선자령까지 가는 길 역시 찜통이었다. 선자령에 도착 하기직전에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람이 씽씽 불어야 할 곳은 풍력발전소가 있는 곳 답지 않게 바람이 없었다. 그래도 엄청 덥지는 않아 모두 앉아 숲해설을 들으며 쉬었다.
그때 나는 일년에 한번씩 도지는 무릎통증이 갑자기 날 습격해서 무릎보호대를 찼다. 그때는 무릎이 괜찮아서 걸을 만했는데, 선자령에 도착해서는 보호대를 다시 끌러 선생님께 돌려 드렸다. 이것이 후에 어떤 일을 일으킬지도 모른 채... 선자령에서 즐거운 사진찍기와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 후에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즐겁게 내려가다가 중도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릎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처음엔 괜찮은 듯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계속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질뻔한 위기를 계속 넘겼다. 무릎을 굽힐 수 도 필 수 도 없고, 발목이 조금이라도 돌아간다 싶으면 무릎이 너무 아파 윽, 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기 일 수였다. 속도도 나지 않고 양손에 스틱을 잡고 최대한 손에 체중을 싣다 보니 양손이 하얗게 변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무릎이 아플 때는 물리치료도 받고, 찜질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무릎 통증이 와도, 등산을 하는 구나하는 생각에 서럽기 까지 했다. 게다가 내리막길은 왜 이리도 험한지 계속 미끄러운 돌을 밟고 지나가야 했고, 성큼성큼 내려가야만 하는 길을 지났다. 계곡가 에서 쉴 때도 무릎은 아픈데, 물에 들어가기도 싫고, 모기가 자꾸 들러붙어서 짜증이 치솟았다. 다시 내려갈 때는 이를 악물고 내려갔다. 결국 다 내려와서 보호대를 했는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짧은 길이지만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최종 목적지는 대관령 휴양림이었는데 나는 두 번 정도 와 본 적이 있었다. 휴양림을 가는 길 또한 차를 타지 않고 걸어올라 갔는데 오늘 코스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싸들고 오늘의 숙소로 향했는데, 실내에서 잘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어쩐지 군대 내무반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래도 텐트가 아닌 것이 어딘가, 게다가 내일이면 집!에 간다는데~ 1조,2조 모두 한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모두 대화한마디 없어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모두들 지친 탓이다.
짐을 좀 챙기려고 1주일만에 처음으로 하늘색 백을 열어 보았는데, 헉! 뭐지 이 코를 찌르는 악취는? 무엇인지 본능 적으로 알 것 같았지만 확인해봐야 했기에 두려움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이 밀었다. Oh My God! 첫날 먹으려고 싸놓았던 천도복숭아가 1주일 동안 하늘색 가방 안에 갇혀서 써..썩어 간 것이다. 미칠 듯 한 냄새는 빠르게 내무반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나는 빠른 스피드로 썩은 복숭아만 빼낸 후에 하늘색 가방에 냄새를 봉인한 뒤에 구석에 처박았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복숭아를 제거한 뒤에, 돌아온 내무반에는 이미 빼낼 수 없는 구린내가 배어있었다. 죄..죄송^^ 저녁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는데 진주가 누군가에게 꽂혀서 호들갑 떠느라고 모두들 마음이 붕붕 떠 식사준비가 자꾸 늦춰졌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저녁에 레크레이션을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머릿속에서 그 말을 Delete 해 버리고는 신나게 놀기만 했다. 그러다가 레크레이션이 다가오자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풍 맞은 할머니처럼 더버러버러버럴 떨었지만 이미 다가온 레크레이션을 되돌릴 수 는 없는 일, 나는 6조에 편입이라도 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한창 비스트(Beast)가 멋있을 때 Shock 춤을 다 외웠기 때문이었다. (난 심지어 Shock 앨범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출 수 있는데, 6조가 한다는 것이다. 같이 하고 싶었다.. 2조의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은 민경이 덕분에 열광의 도가니였다. 나는 이성을 잃고 환호했다. 난 춤 잘 추는 사람이 너무 좋다.
그 뒤에 이어진 무대들도 너무 멋있었다. 특히 Shock! 그냥 귀여운 아이인 호진이가 급호감으로 부상했다, 벌칙이라도 걸린 것처럼 질문을 쏟아 내었던 독특한 아이인줄 알았는데, 멋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다가온 우리조 나는 이것이 레크레이션이던 뭐던 2NE1의 Fire가 하고 싶어 견딜 수 가없었다. 산다라박의 늑골 튕기기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구해지 못해 무산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G-Dragon의 Heart Breaker를 하기로 했다. 난 G-Dragon역시 한창 멋있을 때 무척 좋아 했으므로 노래를 모두 외고 있었다. (난 심지어 Heart Breaker 앨범도 있다!) 이성을 잃고 노래방에 온 것 마냥 노래를 불렀다. 내뒤에선 애들이 내숭을 부리며 빼기 바빴다. 쯧, 놀 땐 노는 것이 내 신조이기에 난 그냥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뒤로 계속 되는 레크레이션을 충분히 즐긴 후에 문화상품권도 받고 치킨도 먹고 복숭아 썩은내가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 와서는 조금 떠들다가 자는 애들은 잠들고 나와 진주 채연, 민경이와 유정이는 잠들지 않고 떠들었다. 계속 탈출을 시도했지만 남균쌤이 나타나셔서 모두 무산 되었다. 나방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달겨드는 덕에 우리는 남균쌤에게 나방을 소탕해 줄 것을 부탁 드렸다. 선생님은 벌레나라의 선택된 용자처럼 나방을 모두 제거해 주셨다. 새벽 3시나 돼서 모두들 잠에 들었다, 이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여섯째날 8월 5일
오늘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다른 날보다 1시간 늦춰진 기상시간에 빠듯하게 일어났다.
조금 밖에 걷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들떠서 짐을 챙기고 (챙길 것도 없었다. 안 풀렀으니까ㅋ) 빠르게 모였다, 아침도 빨리 먹고 모여 산악회분들의 방문연설을 듣고 있어야 했는데, 선생님의 다리부터 시작해 목까지 기어오른 벌레가 자꾸 신경 쓰였다.
모두들 같은 생각 중이었는지 결국에는 “으악! 선생님, 목에..목에!” 하며 소리쳤다. 벌레가 안쓰럽게 떨어진 후에 계속 연설을 듣는 중에 민경이의 핸드폰이 우람한 벨소리를 들려주며 왕왕 울어 연설의 맥을 끊어 놓았다. 난 진주와 킥킥 거리며 웃던 중에, 갑자기 내 핸드폰 벨소리가 울기 사작해 당황하며 팔짝 뛰었다. 다행이 핸드폰을 끄고 우리는 마지막날의 마무리 산책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숲해설을 간간히 들으며 내려오는데 시작한지 2시간도 안되었는데 버스가 보여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버스에 올라탔다.
리가 처음 소집한 장소인 강릉 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동안 5박6일간의 추억을 정리하였다.
내내 툴툴 거렸던 여정이었지만 결국 남는 것은 따듯한 마음뿐이다. 내년엔 결코 오지 않겠노라 외쳐놓고도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모두 종합운동장에 내려 수료증을 증여 받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조의 두 막내 성민이와 세현이, 2조의 민경이와 채연이 유정이랑 온유, 2조의 조장이었던, 나랑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했던 채린이, 그리고 현정이, 모두들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강아지 선생님이셨던 윤성호 선생님과도, 대학생언니었지만 그냥 친한 언니 같았던 정원선생님과, 무서운 남균선생님까지, 헤어지려니까 막상 아쉬웠다, 연락하라며 우리는 헤어져 예은이와, 온유, 진주와 내 동생 지환이와 나는 선생님께서 태워주시는 차를 타고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왔다. 태워다 주신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드디어 완벽하게 캠프를 끝내었다, 시원섭섭한 맘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 가기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그 뒤에
터미널에서 표가 없어서 패닉에 싸여 있다가 수원행 티켓을 끊고 3시간동안 할 짓을 찾다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서 먹고, 우리가 TV에 나온다는 말에 고래고래 행패를 부리던 중에 부산으로 내려가신다는 윤성호 선생님을 만나 같이 놀다가 선생님은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시고 우리는 다시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어떤 훈훈한 대학생 무리가 와서 말을 걸어서 아이스크림 얻어먹고,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MP3가 켜지지 않아 난리를 부리다가 Reset 버튼을 누르려고 온갖 것으로 쑤시다가 Reset 버튼이 맛이 가서 회생불가가 되었다. 흑,
느낀점
매년, 내년에는 오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다시 오게 되는 묘한 이 곳, 올해 역시 내내 내년엔 오지 않겠다고 부르짖었지만 이렇게 후기를 작성 하다 보니 벌써부터 다시 가고 싶어진다.
내년에는 지리산권역으로 가게 될 듯 싶다. 매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 궁극적인 매력은 여기에 있는 듯 싶다. 산이 좋고, 사람이 좋아, 자꾸 찾게 되는 백두대간생태탐방, 아마 올해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도, 두 번째인 사람들도, 내년 이맘때 백두대간 꼭대기에 서서 내년엔 안와! 하고 소리치고 있을 모습이 뻔하다.
나 역시도 그럴테니까. 힘들다, 힘든데,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백두대간이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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