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롤을 기다리며 / 김소원
하얀 수술포 아래 상아색 어깨가 실려나왔다 간 기능
과 신장 기능 이상으로 무통제를 처방할 수 없습니다 열
일곱 떨리는 꽃잎을 가르고 꽃술 떼어낸 그 밤 고통은 오
로지 딸의 몫이었다 해결책은 오직 약간의 데메롤 주사
통증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청구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요새(要塞) 같은 약제실 깊은 문을 여는 마약 오래도록
우리를 눈물짓게 했다 오지 않는 데메롤을 기다리며 파
도에 갯바위가 깎이듯 단란하기만 했던 장면들을 침식해
가는 눈물 속 모래알이 만져졌다 바위 같던 남편도 풀썩
무너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호사 데스크 앞에 마냥
서 있는 일뿐 붉은 내 눈물이 차가운 피 데워 그들을 벌
떡 일으킬 때까지 무표정한 그녀들이 서둘러줄 때까지
내 속으로 열 번도 더 배를 가르며 기다릴 뿐
기다림이란 길이가 아닌 내용의 문제
- 약력: 대구 출생. 2002년 [문학과경계]로 등단. 시집 [시집 속의 칼]이 있다.
- 김소원 시집 [시집 속의 칼] 중에서_ (문학과경계, 2006)
* 이 시에는 수술실을 나온 딸아이의 상아색 어깨를 눈으로 부둥켜 안는 어머니가 있다. 무통제를 투여할 수조차 없을만큼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딸아이의 면역체계 앞에서 자신이 대신 아파주지 못해 절망하는 어머니가 있다. 통증의 다소간 완화를 위해 집도의가 처방해준 마약 성분의 '데메롤' ,처방전을 약제실 유리 창구에 들이밀어놓고서 발 동동 구르는 어머니가 있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문이 열리는 '데메롤'이 딸아이에게 오기까지 어머니는 속만 탄다. 일 분 일 초가 길게만 느껴진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간호사 데스크를 서
성이며 한숨 짓는다. 어머니만 조급할 뿐 간호사들은 잔업에 열중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초조한지,
내 딸아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저 야속한 간호사들에게 보여줄 방도가 없다.
어쩌지? 어쩌지? 이 속을 어떻게하면 저들에게 전할 수 있지?
마른 침 삼키며 "열 번도 넘게 배를 가르"는 어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