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아내고, 의미를 추구한다. 사람은 사는 만큼의 사연으로 엮인 한 권의 책이다. 인문학은 결국 인간이 무엇이며 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人), 다양하고 중요한 문헌을 통해(文), 배우고 가르치는 학문적인 행위(學)이다.”
‘한 권의 책’으로서 사람과 ‘사람(humanitas)의 우물’로서의 고전(古典)이 만난다면, 그 만남의 장은 ‘푸릇한 시냇가의 물결이 흐르는 조용한 목장 길’의 장(場)이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인문고전대학 학장으로서 개강식 날 몇 마디 건넬 덕담을 준비하면서 해봤다.
개강식은 어제 열렸다. 이번 학기에 읽을 철학자는 ‘니체’와 ‘달마’와 ‘프루스트’이다. 내가 소장으로 있는 교수들이 나누어 맡았다. 다 인문학이 좋아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 옷을 적신 분들, 그 옷을 자기 옷으로 운명처럼 입고 사는 분들. 이번에도 예상 밖으로 많이 왔다. 5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배로 늘어난 숫자라고 한다. 학장으로서 내가 축사라는 형식으로 건네 덕담은, 사노라고 잃어버린(잊어버린) 삶이 어디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고전을 길잡이 삼아 찾아 나서 보자고 하는 제안이었다.
개강식을 마치고 오랜만에 국제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국제시장, “이내 몸은 국제 시장….”의 그 국제 시장, 부산의 소리와 냄새가 가장 진할 국제시장도 그전과는 많이 달랐다. 건너편 보수동 헌책방 거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씐 국제시장의 먼 자갈치 바람, 생각한 흥남부두 노래, 인문고전대학 개강식 덕분이었다.
인문고전대학 학장 노릇과 희망대학 학장 노릇은 내가 공직의 끝자락에 와서 하게 되는 마지막 지적인 사회봉사일 것 같다. 하는 역할은 미미하지만, 보람은 크다.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지하철, 걸친 한잔 때문에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물론 해야 하는 일(사회봉사)에는 정년이 있을 수 없다. 섰다가 앉게 된 자리도 취객의 틈이었다. 풍기는 술 냄새, 진한 사람냄새(人文)라고 여기니 맡을 만했다.
첫댓글 희망대학도 하시고 인문 고전대학 강의도 하시고...엄청 바쁘시겠네요.
가톨릭 대학 강의도 만만치 않고 할 일은 태산 같으신데 어떻게 그리 시간을 쪼개 나눔을 실천하시는지 감탄합니다.
모쪼록 건강도 함께 유념하시어 일을 진행하시길...음악이 신납니다 ㅎㅎㅎ
역할이 내게 주어지는 것도 큰 은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