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산악회 멤버 셋이서 소백산을 어슬렁 거리자고 하였는데 푸름이가 아침에 연락두절이다. 연말이다 보니 술자리가 자주 있게 되고, 나중에 알고보니 새벽에 귀가하여 쓰러져 잤다고 한다. 겨울소백, 그 잔인한 바람을 기대하기엔 너무 포근한 날에 머스마 둘이서 소백으로 향한다.
소백산 어의곡리 (10시35분)
올해 첫 눈산행이다. 속리님이 사륜구동 애마를 부드럽게 몰아 눈이 쌓인길을 오르니 어의곡리 신선봉가든 앞 이다. 몇일전 내린 눈으로 을전 마을 뒤쪽으로 보이는 소백산의 은색 봉우리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오늘의 목표는 일단 국망봉이다. 그런데 어슬렁 거리고 가다 보면 거기까지 갈수 있을런지..
늙어서 백발이 되었지만 산수국의 고운 자태는 젊을때 모습 그대로다
계곡을 몇번 건너가야 하는데 초입에 실수해서 퐁당 하는 날에는 산행이고 뭐고 끝이다.
지금입출 안내판이 길을 모르는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샛길을 알려준다.
벌바위 갈림길에서 벌바위골을 따라 늦은맥이재로 갈것인가, 아니면 어의계곡을 따라 국망봉으로 오를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을 해보는데, 아무래도 발자국이 전혀 없는 어의계곡을 따라 걸어 가기가 여의치 않을것 같아서 그냥 맘을 비우고 늦은맥이재로 직진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늦은맥이재에서 국망봉에 올라선후 반대로 어의계곡으로 내려서야만 한다. 지피에스를 키고가니 큰 문제는 없겠다만 하산길은 어둠이 내려앉을 시간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게 문제다.
은분을 뿌려 놓은듯한 설국의 환상적인 풍경이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역시 꽃중의 꽃은 눈꽃 이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보이는 신선봉
국망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어의계곡을 버리고 한참을 직진해서 오르다가 속리님이 갑자기 왼쪽으로 발자국을 만들며 걸어올라간다. 정면에 멀리 신선봉이 보이는데 일견해도 보통 가파른게 아니다. 눈이 쌓인 가파른 쌩길을 치고 올라간다는게 쉽지 않을것 같아 만류하여 다시 직진을 한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허기를 느낀터라 한시간여 걷고는 눈밭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다들 배낭이 두둑한지라 간식이 슬슬 길어지고 더덕잎주 한병을 비운다. 오늘도 역시나 어슬렁 이다. 국망봉? 글쎄, 그대로 있겠지.
속리님 뒤로 벌써 하산하는 분들 (13시45분)
저분들이 오늘 늦은맥이재를 오르는데 우리 앞에서 발자국을 만드시고 가셨던 분들이다. 저분들은 이길을 따라 늦은맥이재로 올랐다가 신선봉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전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다시 내려 온다고 한다. 인적이 거의 없는 등로, 이후로 몇분의 하산객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겨울 소백을 어슬렁 어슬렁 걷는다.
간식을 거하게 먹은터라 두시가 훌쩍넘은 시간인데도 아직 점심 식사 전이다.
환상적인 설국의 풍경이 이어진다. 까만 등산복을 입은 사내 두놈만 가다 보니 그림이 영 자세가 안나온다. 이런 설국엔 빨간 등산복의 모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중국에서 직수입한 5800W 짜리 버너
$29 짜리 버너인데 화력이 괴물스럽다. 예전에 이 버너로 집에서 1L 물이 몇분안에 끓는지 실험하다가 로케트가 분사하는 듯한 굉음과 엄청난 화력에 깜짝놀라 테스트를 중단한적 있다. (햐.. 이러다 혹시 코펠 바닥 빵꾸 나는건 아닌지..하고)
물이 너무 빨리 끓어서 실험이 잘못된게 아닌가 해서 다시 시도 하다가 중단했었다. MSR 리액터를 사용하는 속리님 말에 의하면 리액터 보다 더 빨리 끓는것 같다는.. 몇달전 속리님의 소개로 우리 산악회원 다수가 이 버너를 구입하게 되었다. 이 버너를 소개하려고 사진을 찍어놓고는 아직 소개를 못하고 있다.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늦은맥이재를 코 앞에 두고 바람을 피해 평평한 곳에 눈을 치우고 점심상을 차렸다. 이 점심을 대충 먹고 일어섰으면 국망봉에 가는건데, 우리는 국망봉 보다도 흰백의 숲에서 먹는 한끼 식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4시가 넘었다. 국망봉이야 갈수는 있겠지만 내려오려고 생각했던 어의계곡길은 불가능 하다.
늦은맥이재에 올라서는데 이미 해가 많이 누워 있다.
늦은맥이재엔 두분이 비박준비를 하고 있다. 오르는 내내 그렇게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었는데, 역시 소백은 소백이다. 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차갑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진듯 하다.
여기서 국망봉 까지는 눈길을 감안하면 적어도 한시간은 걸릴 거리다. 갈수는 있겠지만 그 전에 해가 먼저 떨어질게 분명하여 국망봉을 포기하고 반대편 신선봉 쪽으로 가장 앞에 있는 1272봉에 올라 조망만 하고 내려오기로 한다.
1272봉에 오르면서 내려다본 텐트가 쳐있는 늦은맺이재와 건너편 상월봉 그리고 우측 맨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비로봉
1272봉에서 바라본 신선봉
백두대간은 여기 1272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아~ 애니스톰 감마
지난 겨울 방수가 안되는 칸투칸 등산화 때문에 무척 애를 먹어던지라 이후에 겨울산행용으로 캠프라인 애니스톰 감마를 영입하여 오늘 아침에 택을 떼고 첫 산행을 했다. 일단 시작은 딱히 불편한데가 없었는데, 전에 신던 신발과 크기는 같은데 신발의 외형이 이게 좀더 큰지 체인젠이 작아 착용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하산길에 또 문제가 생겼으니...
하산길에 발이 점점 불편해 졌지만 참고 내려갔는데 하산후 발을 벗어보니 엄지 발가락 바깥쪽이 물집이 생겼다. 원인을 파악해 보니 등산화 안쪽에 물이 조금 스며들어 양말의 양쪽 끝이 조금씩 젖은것 이다. 젖은 부분이 마찰로 까칠해져서 발이 불편해지고 물집이 생긴것이다.
아, 내가 뽑기운이 안좋은 것인지, 동행한 속리님은 2년째 신고 있는 캠프라인 애니스톰 베타인데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고 양말이 뽀송뽀송 한것을 보면 오늘 택을 제거한 내 신발이 문제인 것이다. 월요일에 캠프라인에 전화하니 착불로 보내라고 한다. 점검하고 조치 하겠다고... 적어도 2주는 흘러갈텐데... 집에 있는 다른 등산화들은 방수가 잘 안되니 그게 문제다.
30분만 더 있으면 일몰을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지난번 처럼 랜턴키고 야등을 해야 하기에 이번엔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에.. 오며가며 원거리 운전에 고생한 속리님
날은 점점 어두워 지지만 이번엔 랜턴대신 눈에 불을 켜고 조심스럽게 하산을 한다.
새밭교 도착 (17시52분)
어슬렁 거리다 보니 소백산의 멋진 능선길을 걸을수는 없었지만 순백의 숲길을 거닐며 즐거워 했던 하루였다. 국망봉은 도망 안간걸로 확인되서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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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약수의 산행스케치 원문보기 글쓴이: 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