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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김 문 수
찻길에서 갈라져 들어오는 그 골목은 한 오백 미터쯤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너비 이 미터쯤의 개천이 그 앞을 흐르기 때문이다. 아니 개천이 아니라 시궁창이라 해야 옳다. 그곳을 흐르는 물은 그렇게 악취를 풍기며 시커멓게 죽어 흐르는 것이다. 그 개천 저쪽은 산이다. 거대한 짐승이 헐벗고 누워 있는 듯한 민둥산이다. 사람들은 따로 이름이 없는 그 산을 빡빡산이라고 불렀다. 빡빡 밀어붙인 중의 머리 닯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역시 산은 산이어서 비탈도 있고 골도 나 있다.
골이 나 있는데 등성이가 없을 리 없다. 그 등성이는 길이기도 하다. 빡빡산 너머에 있는 마을과 통하는 길이다. 그 산길을 찻길에서 갈라져 들어온 골목과 연결시키기 위해 개천에 허술한 널다리가 놓여져 있다. 좁아터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다리다.
그곳에 다리가 놓인 것은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빡빡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 삼 년 전, 이쪽 도시에 속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저쪽 사람들이 차차 이쪽 도시에 출입이 잦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쪽 산 너머 마을과 이쪽 도시를 잇는 지름길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길이 그 지름길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쪽 도시의 골목과 산길을 갈라놓고 있는 개천이 그 허술한 널다리가 걸쳐지게 된 것이다. 이쪽 도시가 제살을 찌우기 위해 저쪽 산 너머 마을을 삼킨 뒤로 여러 가지 소문들이 나돌았다. 그 소문들 가운데 하나는 빡빡산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만들기 위해 민둥산과 통하는 그 골목이 이차선 도로의 폭으로 넓혀지게 된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렇게 된다면 골목 양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모두 헐려야만 한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은 그런 소문이 나돌기 전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직도 이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소문이 나돈 후에야 집을 내놓은 축들이다. 집값이 똥값으로 떨어졌고 그나마도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전혀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걱정은 날로 깊어갔고 또 그만치 화가 잔뜩 올라 있다. 그들은 그 화풀이를 빡빡산 너머 마을사람들에게 내쏟곤 한다. 그리고 공연히 그쪽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쪽 마을에 ‘비도비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쪽 도시에 편입 이 되었으니까 행정적으로는 시민이 됐지만 역시 너희들은 촌놈이다 하는 뜻이 그 마을에 붙여준 별명 속에 잔뜩 배어 있는 것이다.
비도비촌은 한문으로 非都非村이다. 행정적으로는 촌놈을 면했지만 그래도 네놈들은 이쪽 도시에 사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그런 멸시가 ‘도시도 아니요 촌도 아니다.’는 그 말 속에 잔뜩 배들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가서 눈 흘기는 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마나 그 비도비촌 사람들은 이쪽 도시에 출입이 잦아졌고 이쪽에는 그들을 바라보고 차린 술집까지 생겼다. 다리목 공터에 세워진 판잣집 이 바로 그 술집이다. 판잣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쳐도 어찌나 허술한지 옥호(屋號)가 붙는다면 오히려 거추장스럴 지경이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손수건만한 유리 두 장에 ‘소주 탁주 안주일체’ 라고 씌어진 빨강 페인트 글씨조차도 흥부네 아이들 같아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판잣집 안에는 주인 여자가 혼자서 턱을 고이고 앉아 따분한 눈길로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 그녀가 앉아 있는 탁자 옆에는 구멍 하나짜리 연탄난로가 있고 그 위에 얹힌 주전자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난로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불그레 혈색이 좋다. 그러나 그녀의 야윈 몸집은 아주 자그맣게 보인다. 조리대 위의 형광등 불빛을 받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만 웬지 모르게 음울해뵌다.
그때 드르르 출입문이 열리며 상고머리를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일 미터 팔십쯤 됨직한 장신과 그 키에 걸맞게 떡 멀어진 몸집이다. 그러나 얼굴에는 아직도 소년의 티가 가셔져 있지 않다.
출입문이 열리자 황급히 턱 괸 손을 풀고 발딱 자리에서 일어섰던 주인 여자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새된 소리를 지른다.
“뭣하러 나왔냐? 이 밤중에!”
“그냥.”
“그냥이라니?”
상고머리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를 않고 여자의 맞은쪽 걸상에 앉는다. 그는 고둥학교 일학년 학생으로 그녀의 맏아들이다. 저 자그마한 여자가 어떻게 저렇듯 큰 아들을 낳을 수 있었나 싶다.
“뭣하러 왔냐고 묻잖았니?”
“……,”
“가게엔 절대로 나오지 말랬잖아! 하라는 공부는 않고 이 밤중에…….”
“또 그놈의 공부, 제발 그 공부 얘기 안 할 수 없어요?”
“이 녀석아, 그게 널 위해 하는 소리지 나 배부르라고 하는 소리냐? 하라는 공분 않고 밤중에 가게엘 나오니까 하는 소리 아냐!”
주인 여자가 화를 내며 소리친다.
“공부가 안 되니까 그렇죠.”
상고머리의 대꾸도 거친 목소리다.
“왜? 왜 공부가 안 돼?”
“지금까지 엄마가 안 들어오는데 공부가 돼?”
“어이구, 우리 동네에 효자문 서겠군. 이 녀석아, 내가 노느라구 이러고 있는 줄 아냐? 다 네놈들 멕여 살리구 공부시킬라구 이러는 거 아냐!”
“이 시간에 뭔 손님이 있다구 그러세요? 이제 그만 들어가요.”
상고머리의 말에 그녀는 털스웨터 소매를 들치고 시간을 읽는다. 두텁고 커다란 남자용 시계는 열두시를 조금 지나 있다. 그 시계는 남편의 유품이다.
“응식인 자냐? ”
그녀는 막내가 궁금하다.
“지금은 자지만 걔두 공부 많이 했어요.”
“결국은 응식이보다 응호 네가 공불 더 많이 했다는 얘기로구나.”
그녀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번진다. 상고머리도 그 웃음을 따라 웃는다.
“학생이 술집에 드나들면 못쓴다고 했잖니. 어서 들어가 자렴.”
“엄만 꼭 그렇게 말하더라. 마치 술집에 드나드는 불량학생 대하듯…….”
웃음기가 어렸고 상고머리의 입 언저리가 돌처럼 굳어져보인다.
“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술장수가 됐다만 이 에민 느덜 형제한테만은 술장사하는 거 뵈고 싶지 않다.”
“우린 뭐 엄마가 술파는 거 보고 싶어서 오는 줄 아세요?”
“바른말이 말대답이야. 잔소리 말고 가라면 가!”
그녀의 새된 소리에 상고머리는 찔끔하여 일어선다. 그리고는 잠시 여짓거리다 입을 연다.
“일찍 끝내고 오세요. 날씨가 여간 춥지 않아요.”
“알았대두!”
상고머리는 출입문 바깥의 찬바람 속에서 듣는 때문인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손을 뒤로 하고는 등진 출입문을 드르르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들 아이가 닫은 출입문에서 눈을 뗀 주인 여자는 푸우 한숨을 내뿜었다. 두 아이 모두 밝게 자란 건전한 청년으로 장성해야 할 텐데 하는 것이 그녀의 걱정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걱정을 털어버리고 소매를 들춰 남편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분침은 이십분을 가리키고 있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어째 오지 않을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리고는 탁자 앞에 몸을 돌려 난로 주변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며 서성대기 시작한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어째 이렇게 늦는지 모르겠군.”
그녀는 다시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또 시계를 본다. 시계 위에 그녀가 기다리는 사내의 얼굴이 얹혀진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삼십 세 안팎의 사내 얼굴은 시계 위에서 냉큼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 사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빡빡산 너머에 산다는 것,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월급쟁이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 그의 월급날이 이십오일이라는 것,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모양이라는 것. 결혼하여 장난감을 졸라댈 나이의 사내아이를 둔 사내라는 것 등이 그녀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그 사내는 그녀가 술집을 차린 그 첫날 찾아온 손님이다.
그날도 그는 열두시가 가까운 시간에 들렀었다. 그때 그녀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그 손님을 반길 수가 없는 마음이었다.
“손님, 오늘은 다 끝났습니다.”
그녀는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서려는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내는 들은 척도 않고 그녀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조리대 앞 자리에 앉으며 퉁명을 부렸다.
“손님을 그렇게 문전박대하는 법이 어딨습니까?”
“영업이 끝났다는게 어째서 문전박대예요?”
주인 여자의 목소리도 부드러울 리 없었다. 그녀는 그 사내의 눈이 술기에 젖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주 한 병 주시오. 그리고 안주는 뭐가 있습니까?”
사내도 고집스럽게 나왔다.
“영업이 끝났다고 했잖아요!”
주인 여자가 새된 소리로 잘라 말했다. 빡빡산 너머 촌놈인 모양인데 병신 꼴값 하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소주 한 병 달라지 않았소!”
사내도 한치의 물러심이 없이 진피를 부렸다.
“없어요!”
“술이 없단 말입니까?”
“있어도 댁한테는 안 팔아요!”
“안 판다고 했습니까?”
“그랬어요. 어서 썩 꺼져요!”
주인 여자는 악을 있는대로 다 썼다.
“날더러 썩 꺼지라구 했소?”
사내의 짙고 굵은 눈썹이 무슨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멎었다. 그의 입은 계속해 움직였다. 그 입가에 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집에서 술 한 잔 먹을 수가 있겠소? 돈을 안 낼까봐 그러시오?”
“돈 아니라 돈보다 더한 걸 준대도 난 절대로 댁한테 술을 팔지 않겠다구요. 어서 나가요. 어서!”
“흥, 어디 봅시다. 나한테 술을 안 팔고 배기는가.”
사내는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오른손을 찔러 넣었다.
“글쎄 돈 아니라 금덩어릴 내놔도 난 절대로…….”
“절대로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야!”
사내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는 말을 마치고나서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었다. 그 손에는 시꺼멓고 반들반들한 권총이 들러져 있었다. 그것은 본 주인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납빛으로 변했다.
“절대로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게 아냐!”
“…….”
“소주 한 병하고 쉽게 되는 안주 아무거나 한 접시 주시오.”
사내는 권총을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소. 그러나저러나 어제도 못 봤는데 오늘 세운 집이오?”
“…….”
주인 여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한 것이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잣집이긴 하지만 그래도 집은 집인데 하루에 이렇게 세워놨으니, 게다가 장사까지 시작했고……. 지나다 보니 술집이 생겼길래 난 혹시 도깨비집이 아닌가 했소.”
사내는 말끝에 너털웃음을 달았다. 잠시 후 요란한 웃음을 끝내고 그는 다시 술을 재촉했다.
“어서 술이나 주시오.”
주인 여자는 그제서야 몸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상을 보는 그녀의 손은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본 술상이라 시간이 꽤나 걸렸다. 탁자 위에 차려진 것을 술병과 술잔 그리고 열무김 치와 오이접 시, 고추장종지가 전부였다. 오이접시에 깐마늘과 풋고추가 곁들여 있긴 했지만.
사내는 오이·마늘·풋고추만으로 술 한 병을 게눈 감추듯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병을 더 청하여 그 절반을 눈깜짝할 사이에 마셔버렸다. 그 절반의 술은 안주와 마신 게 아니었다. 욕을 안주삼아 마신 것이었다. 한 잔 마시고 ‘개자식들!’ 또 한 잔 마시고 ‘개자식들!’ 하는 식이었다. 나머지 절반의 술도 그는 그렇게 마셨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설은 잔이 거듭될수록 자꾸만 커졌다. 들어가는 바람에 의해 자꾸자꾸 팽창하는 풍선처럼. 그리고 그 풍선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야, 이 개자식들아!”
사내가 두번째 병의 마지막 한 잔을 남겨놓고 목청껏 고함을 질러댔던 것이다. 그 고함에 주인 여자는 자라목을 만들며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사내의 입에서는 잇달아 욕이 터져나왔다. 속에 있는 욕주머니가 터져버린 듯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더러운 쌍놈의 새끼들아!”
사내의 악쓰는 소리에 판잣집이 금방이라도 쪼각쪼각 흩어져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주인 여자는 온몸을 덜덜덜 떨며 겁에 질린 눈길로 사내의 눈치만 살필 뿐 어찌해야 좋을지 전혀 궁리를 낼 수가 없었다. 남자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것은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울화통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사내의 욕은 끊일 줄을 몰랐다. 이제는 ‘개자식들! 쌍놈의 새끼들!’이 아니었다. 별의별 욕이 다 터져 나왔다. 차마 귀에 담을 수조차 없이 험한 욕들이었다.
그의 입에서 욕이 가신 것은 오분쯤 지난 뒤였다. 터진 욕주머니에서 욕이라는 욕이 다 빠져 나와 이제 더 나올 욕이 없는 모양이었다.
사내의 욕 내뱉던 입을 소독이라도 하듯 마지막 잔을 한껍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오이를 한쪽 집어넣고 아작아작 씹어대며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한 사내의 동작을 살피던 주인 여자의 얼굴엔 또다시 핏기가 가시고 말았다. 그녀는 달싹거리는 입으로 급히 말했다.
“그냥 가세요. 술값은 안 받겠어요.”
“술값을 안 받는다니요?”
사내는 주머니에서 꺼낸 돈봉투를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붙이며 또 한바탕 요란하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그는 다시 저고리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까 그 권총을 꺼냈다.
그는 총부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다 붙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따따따따 따따따따, 장난감 총소리가 연발음을 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또다시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머니, 이건 장난감입니다. 우리 아들 녀석이 어찌나 권총타령을 해쌌는지 들볶여 견딜 수가 있어야죠. 그래 마침 오늘이 월급날이겠다, 그래서 애비노릇 한번 해보겠다구 최고급으로 하나 샀습니다:”
“…….”
“날 강도로 취급하시다니 거 참 섭섭하군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미안합니다. 하기야 죄는 내게 있습니다만…… 실은 말입니다. 이래봬도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땀 흘리지 않고 먹고 사는 놈들을 젤 싫어한다아 그런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십니까? 남이 땀 홀려 번 돈을 뺏어 먹는 놈들, 사실 툭 까놓고 하는 얘기지만 그런 놈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런 놈들이 이 세상을 살맛없게 만드는 놈들이다 이겁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려면 그런 놈들을 모조리 이렇게 해야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사내는 장난감 귄총이 든 팔을 쭈욱 뻗더니 우에서 좌로, 좌에서 우로 몇 번이고 반복해 반원을 그리며 따따따따 따따따따 따따따따……. 계속해 방아쇠를 당겨댔다. 그리고는 권총을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보시라구요. 이게 월급봉투가 아니고 뭡니까? 쥐꼬리 같은 윌급이지만 그래도 이 속에 돈이 있긴 있다아 그런 말씀입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월급봉투를 들더니 흔들흔들 흔들어 보였다.
“아주머니, 술값이 얼맙니까? ”
사내는 봉투아가리를 벌리며 물었다.
주인 여자가 술값을 말하자 그는 술값을 치른 후, 따로 또 돈을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 양반이 몹시 취했나봐. 방금 계산을 했잖우!”
“이건 술값이 아닙니다.”
“그럼 왜 돈을 또 내우!”
“네게 욕 얻어먹은 값입니다.”
“뭐요?”
“내 욕 때문에 아주머니 귀가 더러워졌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돈으로 귀 청솔 하시라 이런 말씀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어머머, 이 양반이 정말…….”
“내가 술 취해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물론 술이 취하긴 취했죠. 그러나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취한 건 아니다아 그런 말씀입니다.”
사내는 주인 여자가 받지 않는 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작별 인사를 했다.
“오늘은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어쨌든 폐가 많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내는 비틀걸음으로 출입문께로 다가서더니 ‘또 들르겠습니다.’
하고 커다란 소리로 국민학생처럼 인사말을 외치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만 한 달만인 그 다음달 이십오일에 두 번째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날도 그는 첫번째처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나타났고 욕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 뒤 술이 취하자 고래고래 소리쳐 욕보따리를 다 비운 뒤 술값에다 귀 청소비를 얻어내고 사라졌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달 25일까지 모두 합해 아횹 번을 들렀는데 그 아홉 번이 첫번째와 똑같았다.
주인 여자는 하품을 깨물고 나서 다시 시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이 양반이 뭔 일이라도 생긴 건가? 올 때가 지났는데…….”
그녀는 서성이던 몸을 굳혔다가 아까처럼 다시 난로 옆으로 가 앉는다.
“삼십분까지만 기다려보다가 그래도 오지 않으면 그냥 가야지,”
그녀는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삼십분이 되려면 오분쯤 더 기다려야 한다. 그녀의 그러한 결단을 누가 귀띔이라도 한 것처럼 사내는 열두시 삼십분이 되자 드르륵 판잣집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아이구머니나, 결국 오시 긴 오시는군요.”
주인 여자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며 소리친다. 반가움이 잔뜩 밴 목소리이다. 목소리에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그를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사내의 얼굴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술기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말수가 적고 늘 굳은 얼굴을 지니고 있는 사내다.
“바깥 날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까짓 추위, 제놈이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봄이 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요.”
사내는 앉을 염을 앓고 또 중얼댄다.
“봄이 안 오고 배겨? 봄이 오는데야 어쩔 것이냐구!”
주인 여자가 난로 옆자리를 내주며 말한다. 사내는 그녀가 내준 자리에가 앉으며 깃을 추리는 새처럼 온몸을 떨어댄다.
어느새 조리대로 가 있던 주인 여자가 뜨거운 술국이 얹힌 쟁반을 들고와 탁자를 차리기 시작한다.
“술국하고 두부부터 좀 잡수세요.”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양념두부 집시를 가리키며 사내의 맞은쪽 자리에 앉는다.
사내는 주인 여자가 권하는 대로 양념두부 한 조각을 입에 넣은 뒤 술잔을 집어든다.
두부 한 조각에 술 한 잔, 술국 한 숟갈에 술 한 잔, 김치 한 조각에 술 한 잔…… 사내는 이렇게 술 한 병을 간단히 해치우고 나서 빈 병을 번쩍 들어보인다. 술 한 병을 더 마시겠다는 뜻이다.
주인 여자가 새 병을 갖다놓자 사내는 그 절반을 이번에는 안주도 없이 마셔버렸다. 아니, 욕이 안주였다. 한 잔 마시고 ‘개자식들!’ 또 한 잔 마시고 ‘개자식들!’ …·술은 그렇게 없어져갔고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욕설은 계속해서 한 옥타브씩 높아지고 있다.
사내는 다시 잔을 채운다. 잔은 찰랑찰랑 차고 병은 바닥이 났다. 그 바닥난 병으로 쾅, 탁자를 찍은 사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욕설이라기보다 차라리 발악이라는 게 옳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발악이다.
그의 발악은 오분쯤 계속되다 끝이 난다. 사내의 몰골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꼬락서니이다.
사내는 마지막 잔을 들어 한입에 톡 털어 넣는다. 그리고 김치 한 조각을 집어 입 에 넣고 씹어대며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월급봉투를 꺼낸다.
“이제 후련하세요?”
주인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후련하지요. 아주 후련합니다. 후련하고 말고요!”
사내가 말끝에 유쾌한 웃음을 매단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악을 쓰며 욕을 해대세요?”
주인 여자가 묻는다. 그녀가 그가 왜 그러는지 오늘은 꼭 그 까닭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 명대로 살다가 죽고 싶기 때문이고 둘째는 평생토록 나쁜놈들을 욕할 수 있게끔 죄짓지 않는 인생이 되고 싶기 때문이지요.”
“알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치미는 화를 참고만 살면 그게 건강을 해쳐서 모든 병의 근원이 된다잖습니까?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자 이겁니다. 그래야 받은 명이 짧던 길던 제 명대로 살다 죽을 게 아닙니까! 그리고 나쁜놈들에게 욕을 끌어부을 수 있다는 건 뭡니까? 그만치 자기는 떳떳하다는 얘기 아닙니까?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를 나무란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나쁜놈들은 나쁜놈한테 욕을 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쁜놈들을 욕할 수 있는 자격을 평생토록 지니고 살자 이겁니다. 나쁜짓 하지 말고 죄짓지 말고 나쁜놈들 욕하면서 한평생
깨끗하게 살자 그런 말씀입니다.“
주인 여자는 잠시 죽은 남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가 받은 명을 다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어느 날, 출근을 하려고 현관에 나가 구두끈을 매다가 쓰러져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간 채 영 깨어나질 못한 것이다. 뇌졸중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유명을 달리한 남편에게도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 속을 남에게, 남에게 뿐만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처자식들에게까지도 털어놓는 법이 없는 그런 성격이었다. 남편도 저 사람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아니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속을 풀었으면 지금 이렇게 우리가 고생하지 않으련만 하고 그녀는 생각해본다.
“아주머니, 이건 술값이고 또 이건 청소빕니다.”
사내는 술값 위에다 따로 돈을 더 꺼내 얹는다.
“늘 이렇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어쩌지요?”
주인 여자는 술값보다 그 위에 얹힌 돈이 더 크다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난 말입니다, 욕하러 오는 겁니다. 욕을 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거다아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배꼽보다 배가 더 큰 게 당연하잖느냐 이런 말씀입 니다.”
“난 댁의 기분을 알 것도 같으면서 모르겠어요.”
주인 여자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까도 말씀 드렸잖습니까. 아주 후련하다고요.”
“글쎄 그건 알겠는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더 자세히 말씀 드릴까요?”
“말해보세요.”
주인 여자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러나 사내는 여짓여짓 냉큼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해 보시라구요.”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
사내의 얘기는 중동무이가 된다.
“그렇게 욕 잘 하는 입도 가릴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요.”
“…….‘
사내는 수줍은 웃음만 뿌릴 뿐 그래도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해 보세요.”
“실은 말입니다. 여자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난 기분입니다.”
“어마나!”
“정말입니다. 꼭 그런 기분입니다.”
주인 여자의 얼굴이 약간 붉게 보인다.
“자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사내는 몸을 돌려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드르륵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주인 여자도 사내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밖은 달빛으르 대낮 같았다. 무척 이나 환한 보름달이 묘하게도 빡빡산 위에 높다랗게 띠 있다. 그녀는 잠시 화톳장의 팔공 광짜리를 생각한다.
“욕만 하러 오지 말고 더러 술 마시러도 와요.”
주인 여자는 사내가 널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행여 자기 말에 대꾸를 하려다 발을 헛디딜지도 모른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달에나 또 오지요.”
산길로 들어선 사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대꾸한다.
휘영청 밝은 달이 온 누리에 자갯빛을 내쏟아 민둥산도, 그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사내의 모습까지도 환히 비추어주고 있다.
사내는 달빛 속으로 둥둥 떠오르듯 민둥산을 오른다. 술마신 사람의 걸음새 같지가 않다. 그녀는 사내의 그런 모습을 넋놓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욕쟁이! 욕쟁이 조심해 가세요.’
여자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났을 때 산의 능선에 올라 있던 사내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마치 달이 잽싸게 그 사내를 빨아들인 듯한 느낌이다.
사내의 모습이 사라진 빈 능선을 바라보는 여자의 가슴에 찬 바람이 스민다.
‘욕쟁이, 욕쟁이!’
여자는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계속 중얼거린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괸다. 그 눈물 속에 보름달이 동그랗게 박힌다.
―1987년
2016년 12월 2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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