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가 나도 네게 답장을 써야지,
어떻게 할 줄 모르겠는 이 마음,
네게 답장을 써야지 했어.
그러다가 너도 이 까페에 들를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너와 함께 읽었으면 하는 글이 있어 우선 그것만 짤막하게 옮겨볼게.
파병에 대한 정부 공식 입장을 뉴스를 보고난 뒤,
마음을 어떻게 추스리지 못하다가
'기차길옆 작은학교'라는 곳의 홈페이지에 들러
마음 기대며 몇 자 적은 글에
그곳 이모 한 분이 댓글로 써 주신 글이야.
한 번 읽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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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래요.
기범삼촌 말처럼 끝이 보이지만
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과 폭력에 맞서는 것뿐 아니라
눈에도 보이지 않게 약하고 작은 평화와 생명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거대하고 완강하고 거침없는 폭력만 바라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예요.
앞이 안보일때 마다 생각해요.
'꿈'이라는게 가능할까. '꿈'을 꾸고 있기는 한 걸까.
아니 우리에게 간절히 꾸고 싶은 '꿈'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데 그럴때 마다
우리 아이들이 말해요.
아이들 하나 하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하고 귀한 삶이 말해요.
'꿈'이 필요하다고.
'꿈'을 꾸고 싶다고 말이예요.
우리가 자꾸 잊고 의심하게 되지만
사실은 '생명'의 힘이 더세요.
저는 요즘 막막해질때 마다,앞이 안보일때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떠올려요.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 분은 세상의 방식으로 이긴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세상의 방식으로 그분은 죄인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죽음을 맞은 약한 사람이었어요.
발표회가 일주일 남았어요.
사람들에게 우리의 '꿈'을 보여줄건데
우리는 우리의 '꿈'때문에 혼란스럽고 두렵기도 하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 어떤 날의 꿈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바로 오늘이 우리의 꿈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세상의 가장 낮고 약한 생명들이
우리 한테 끝없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는 거예요.
세상의 방식인지
'예수님'의 방식인지 말이예요.
발표회날 봐요.
힘내시고요. (기차길옆 작은학교 수연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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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야, 어쩌면 네가 마시뗄의 아이들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알라위가, 제이둔이, 지하드가, 노라와 하쑤니, 무스타파, 마루완......
마시뗄의 아이들이 너를 지켜 주고 있는 건지도 몰라.
어제 네가 보낸 일지를 읽다가
아부알리 아저씨가 너를 위로했다는 말을 읽으며 코가 찡해오더구나.
그래,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 생명의 방식으로 그렇게 싸우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는 거다.
동화, 너는 언제나 '내 마음의 평화' 였잖아. 그치?
힘 내, 동화야.
내가 무슨 약속을 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 또한 최선을 다할게.
건강해라.
2003년 10월 21일 늦은 열시 무렵
죽변에서 기범이가.
('내 마음의 평화'는 이동화 팀원이 바그다드에서 지낼 때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치 인디언식 이름을 부르듯 동화에게 '내 마음의 평화'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