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따라 나도 올라가고 있었다.
그 집은 골짜기를 한참이나 올라가서 외따로 있는 오막살이 집이었는데 예전에 산판이 한창일 때 들어와 산판일을 하다가 산판이 끝났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돈 벌이를 위해 떠났는데도 이사 가는 것이 지겨워서 그랬는지 산판을 한 자리에 화전 밭을 일구고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려가기는 그 집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 집은 그 집과 집들이 꽤 많은 아랫마을과의 중간쯤에 있었는데 아랫마을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서 그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개울 건너로 내려다 보여서 아버지와 나도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그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겨울로 막 접어드는 계절이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그 집에서 노루를 한 마리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그 소식은 우리 집에도 전해져서 아버지를 따라서 나도 그 길에 접어들어 사람들과 합류를 하게 된 것이다.
한참을 올라가자 멀리서도 골짜기에서 모락모락 올라가는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지금 올라가고 있는 것은 노루고기를 얻어먹기 위함이었다.
고기 먹기가 어려웠던 예전에는 마을 사람 누구 네가 사냥을 했다는 소문이 나면 그 집으로 모여 들었다.
노루를 잡은 집에서는 김장을 담그고 난 포기가 안지 않은 배추들을 밭에 그냥 놔 둔 채로 볏짚을 덮어 놓았다가 사냥이라도 하는 날에는 볏짚을 걷어내고 배추를 뽑아다가 썰어 넣고 가마솥으로 하나 노루 국을 끓인다.
노루를 잡는다고 해도 뼈에서 고기는 분리해서 사람들에게 팔고 뼈와 내장을 넣고 가마솥으로 하나 국을 끓여서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는 것인데 그저 배추 우거지 국에 고기는 한 두 점이나 들어갔을까 말까 한 국이지만 기름기가 들어간 노루 국은 별미에 해당됐다.
그 집에는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방으로 하나 가득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고 가난한 주인은 노루 국에 노란 조밥을 한술씩 넣어 사람들에게 돌렸다.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들어 노루 국 한 그릇을 얻어먹었는데 노란 조밥이었지만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그 기억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작은 양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던 거 같았다.
아버지도 가끔 사냥을 하실 때에는 그런 일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노루를 벗기면서 살에서 기름덩이를 떼어내 나뭇가지에 매달아 기둥 사이에 끼워 놓았다가 겨울동안 배추 국을 끓일 때 조금씩 떼어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부드럽고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가난하여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던 때의 일화이긴 하지만 오늘 내가 노루를 잡았다.
내가 이 개를 사게 된 것도 혈통서가 있다는 어미 밑에서 태어난 진돗개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개를 샀는데 첫 새끼를 낳고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득이 내가 이사를 가게 되어 개를 형님네 집에 맡기고 가게 되었었다.
늘 개가 매어져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내가 시골로 내려오기만 하면 찾아오리라고 마음 먹긴 했지만 나와 함께 살아온 일 년여보다는 매어져 살아온 사년의 긴 세월동안 묶여서 살아온 개가 운동부족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가 의심이 났지만 그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개가 불쌍해서 그 개의 한명 까지는 내가 데리고 살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 개를 되찾아 왔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전혀 매어놓지 않고 그냥 놓아기르던 개가 그곳에 가면서 닭을 잡아놓는 바람에 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휴일에도 누구 한사람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는 것은 개에게 혹독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에 내가 가져오는 즉시 목다리 까지 풀어놓고 그냥 매일 산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다리 힘을 올려 준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았었다.
처음에 너구리를 보고 쫓아가면서도 너구리를 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개를 패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의기소침하고 있는 개가 불쌍해서 그냥 참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는 보지도 못한 동물을 향해 산마루로 뛰어 올라간 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노루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개가 노루를 물었다는 생각에 소리를 질렀다.
이쁜아 물어~
내가 개에게 다가 갔을 때에는 이미 노루는 개에게 물린 상태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노루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신바람이 났지만 나는 다시 옛날을 떠 올리면서 몇 집 되지도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노루 국을 끓여서 대접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배추도 있고 옛날과 다름없는 노루 국을 끓일 수는 있었지만 옛날 노루 국에 노란 조밥을 말아 먹었던 그 맛이 지금도 날는지는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