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s 럭크만’목사를 비판하다.(5)
"동시에 신약 시대의 구원에 관한 계시를 거부하는 "개들"에게 속하는 셈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십계명이나 몇몇 의식법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갈 3:13) " - 피터 s 럭크만 -
‘럭크만’의 논조(論調)는 비열하기 그지없다. 그에게서 상식은 불통이란 말이 어울린다.
아무리 성경에 “창녀”니 또는 “개들”이라는 구절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만한 응대를 받을 만하니까
그런 표현이 사용되었음을 왜 모르실까?
“창녀”니, “개들”이란 표현은 함부로 아무 에게나 쓰는 게 아니다.
‘럭크만’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 망정이지, 생존해 있다면 현행법으로 체포될 소지가 크다.
이건 성경해석의 논쟁거리도 안 될 만큼 형편없는 수준을 넘어 인신공격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 어느 교회든 교적(敎籍)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럭크만’처럼 비열하기 그지없는 이중적인 사고(思考)에 의한 삶은 살고 싶지도 않거니와
살고 있지도 아니하다.
안식일을 구별하는 삶은 하나님의 명(命)을 따르는 지극하고도 당연한 순리(順理)요,
수순(手順)임은 물론 더 나위 할 것 없는 성경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 천지창조는
온전히 우리 사람들을 위한 사역이었는데 에너지 발생이 요구되는 6일간의 창조와 안식일이라는
하루를 포함시켜 7일간으로 이루어 졌다.
태초에 이러한 창조과정을 통해 “7일 일주일”제도는 탄생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 제도의 기준으로 세우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시는 당부를 당신의 선민(選民)
들을 향해 요구하셨는데, 그 이유를 천지창조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다 두고 이를 상기 시킴으로서 안식일의
준수 요구에 불응(不應)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이하시었다.(cf 출20:10-11)
다시 말해서, 안식일의 준수 요구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 전반이 천지창조라는 무한한 영향 아래 있으니만큼 그 감사를 안식일을 통해
매주(每週) 경배하기에 합당한 일이라는 얘기이다.
- 김종성 -
첫댓글
럭크만의 오해는 말씀의 잘못 적용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의 오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하단 이유로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십계명이나 몇몇 의식법 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말았다. "율법의 저주로 부터의 속량"(갈3::13)이란 말씀은 율법의
요구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의 의미이지 "유죄는
필벌의 원칙"에 예외를 뜻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과속하다가 교통 경찰에게 붙들린 운전자가 그 경찰로 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치자!
그 운전자는 마땅히 물어야 될 법적인 책임을 면하게 된 경우다. 그렇다고 해서 남은 목적지 까지의
규제 속도 준수 의무까지 면제 받지 않은 경우와 같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