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00m 터에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마을을 완만하게 내려다보도록 앉힌 목구조 황토집이다. 울타리를 치는 대신 앞뜰을 매실나무 밭으로 이용해 외부 간섭을 피했다. 2차선도로와 연접해 있는 터라 집을 최대한 뒤쪽으로 물려 앉힌 것이다. 또 매화가 만개했을 때에도 정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성토 작업으로 대지 레벨을 높였다. 진입로에서 현관으로 이르는 마당에는 어른 팔로 한 아름을 족히 넘을 만한 나무 둥치를 깔아 디딤판으로 삼은 것이 이색적인데 50㎝ 깊이로 단단히 박았다고 한다. “여성들은 자갈밭이나 디딤돌을 걷다가 하이힐 굽이 걸리거나 빠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편하게 지나다니라고 큼직한 나무를 심어놨죠.” 이처럼 곳곳에 건축주 부부와 시공사의 실용적 아이디어가 꿈틀거리는 집이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나고 자란 김완수(62) 씨는 신북읍 지내리에 황토집을 짓기 전까지 인근에서 시멘트 벽돌집을 짓고 살았다. 최근 주택 뒤편에 도로 확·포장공사가 진행돼 하는 수 없이 새로 지어 산 지 4년밖에 안 된 집을 헐어야 했다고. 30톤짜리 대형 트럭으로 32차례 날랐을 정도로 어마한 양의 건물 폐기물을 보고 ‘아차’ 싶었단다.
바로 우측으로 선산先山을 끼고 있는 터를 마련하고 오랫동안 집안일로 몸이 찌뿌듯해하는 아내를 위해 황토집으로 결정하면서 자연친화성이 있고 수명이 오래가는 건축재료를 선호했다. 벽체를 구성한 황토벽돌과 황토 미장재는 시멘트나 생석회 등 이물질이 일절 첨가되지 않은 황토랜드(주)의 순수 황토 제품을 사용했고 내벽은 한국공업진흥청에서 720년간 보존 가능하다고 품질 평가를 받은 원주 한지를 적용했다. 원주 한지는 닥나무 등 천연 재료를 가지고 손으로 만들어 질기고 강해서 예로부터 천 년 이상 보존할 수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부부가 함께 디자인한 집
김완수 씨는 황토집 시공업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인근 양지마을에 있는 한 절에 가 보고 그 절을 시공한 회사가 황토랜드(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씨는 절을 지을 정도의 실력이면 되겠다 싶었고 황토랜드(주)가 시공한 화천 99.0㎡(30.0평) 황토집을 한 채 더 구경한 후 마음에 들었다.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집 짓기 전에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생겼어요. 공간 계획이나 집에 들어가는 재료 선정에 많이 개입하게 되더라구요. 이 집 도면도 직접 설계했어요. 도청 주택계에서 근무해봤기 때문에 설계도면을 그리고 읽는 게 어렵지 않거든요. 또 구조재로 사용할 나무를 알아보러 러시아까지 가 볼 정도로 정성을 많이 들였답니다.”
김 씨가 설계한 내용은 아내 허정옥(56) 씨의 제안에 따라 한 부분을 변경한 것 외에는 그대로 반영해 시공했다. 아내는 “원래는 주방과 거실 사이에 벽으로 막혀 있었어요. 그런데 갑갑할 것 같아서 싱크대 높이 위로 트고 설거지하면서 거실과 마당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요.” 중인방 상부를 트고 한식 목창호를 달아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해 공간에 유연성이 생긴 것이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시공사와 함께 부부가 여러모로 노력을 많이 했다는 김 씨는 들인 노력이 아깝지 않게 썩 마음에 드는 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겨울에 포근하고 여름에 시원한, 쾌적한 집
대지 850.0㎡(257.5평)에 ‘ㄱ’자형으로 앉힌 이 주택은 총 33개의 기둥이 들어갔고 그중 8개는 지름이 한 자(30㎝)짜리, 나머지는 8치(24㎝)짜리가 쓰였다. 벽체는 황토벽돌 이중쌓기를 하되, 외부 쪽으로 300×150×100㎜ 황토벽돌을 두께 100㎜가 되는 방향으로 세워서 쌓고 내부 쪽으로 길이 150㎜짜리 황토벽돌을 가로로 눕혀 쌓았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을 두고 일반 스티로폼 단열재보다 기능이 뛰어난 아이소핑크 제품(0.5㎝) 2장을 시공했다. 황토벽돌 이중쌓기를 한 데다 단열재를 추가 시공함으로써 단열성을 더욱 높였다. 덕분에 겨울에는 포근하고 여름에는 더운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창만 닫아놓는다면 시원하게 날 수 있다고 한다.
외벽은 줄눈 마감하고 내부는 황토 미장 후 원주 한지를 발라 마감했다. 두툼하고 거친 질감의 화이트 톤의 한지 벽지가 황토집의 실내 분위기에 은은하게 잘 어울린다. 김완수 씨는 원주 한지 공장에 직접 주문해서 구입한 벽지라고 소개하면서 종류가 하도 다양해 집에 어울릴 만한 한 가지를 골라내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주요 골격은 미송을 사용했고 천장은 은은한 향이 나는 잣나무 루바로 마감했다. 박공 형태의 거실 천장은 사각으로 마름한 노출 서까래와 루바를 걸어 마감해 단정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열림과 닫힘의 공간계획으로 생활을 고려한 집
이 집의 특징적인 부분은 건축주의 의도에 따라 공간을 실용적으로 뺐고 동선이 심플하게 떨어진다는 것. 중심부에 넓게 트인 거실은 주방/식당 공간과도 소통해 거실 주방 식당이 하나의 공용공간으로 열려있는 형태이고 좌우측으로 개인공간을 밀었다.
공용공간은 현관에서 과감하게 노출시키면서 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요한 개인공간은 외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복도를 이용해 감추는 효과를 냈다. 주방/식당 좌측으로 다용도실, 구들방, 안방을 드리고 거실 우측으로 딸 방, 욕실을 드렸다. 안방과 딸 방은 채광과 조망을 고려해 건물 전면으로 배치했다.
공간 사용자를 감안한 계획도 눈에 띄는데 안주인이 주로 사용하는 구들방과 주방, 다용도실을 짧은 동선으로 계획한 점, 부부와 딸의 사생활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각 공간을 양가로 떨어트려 놓은 점도 돋보인다.
김완수 씨는 “이 집에서 살고부터는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확실히 달라졌어요. 어깨 뭉침도 없어졌고 가래도 자주 뱉었는데 지금은 아주 사라졌어요”라며 황토집을 예찬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담을 쌓지 않고 터놓고 지내는 지내리 마을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이 있어 김완수·허정옥 부부의 전원생활에 생기가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