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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현장 문경 석탄 박물관을 가다 |
이승봉기자 |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게 석탄은 매우 친숙한 에너지 자원이었다. 기자도 어린 시절 장작난로를 거쳐 갈탄난로, 연탄난로를 때는 학교를 다녔다. 물론 집 난방도 연탄이 주종을 이루었었다. 당시 기름을 때는 집은 그야말로 굉장한 부자들이었던 것이다. 연탄보일러 시대가 끝나면서 석유보일러와 가스보일러가 대중화 된 것은 불과 한세대도 채 안된 것 같다. 이제 석탄은 가정용보다 발전용이나 일부 공업용 원료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 뛰고 있는 요즘 가정집이나 식물원 등에서 연탄 사용이 늘고 있다고 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석탄이나 연탄은 매우 낮선 연료일 수밖에 없다. 석탄 박물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신기한 듯,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다.
석탄은 오랜 지질 시대에 걸쳐 식물들의 유해가 퇴적암의 지층과 같이 퇴적되어 남게 된 하나의 유기적 퇴적암이다.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압력을 받아 가면서 수분과 휘발 성분(질소, 산소 등)이 감소되고 탄소의 함유량이 높아지게 되면서 만들어 졌다. 성분함량에 따라 석탄은 이탄, 갈탄, 역청탄(또는 유연탄이라 함), 무연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종류에 따라 석탄의 열량 또는 타는 성질 등이 다르다. 문경 석탄박물관은 국내 석탄박물관 중 유일하게 실제 폐광업소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광업소 분위기와 실제 갱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광업소를 운영하던 당시 폐석을 쌓아 놓던 경석장으로서 지금은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1층 전시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만나게 된다. 1층 전시장에는 우주의 생성, 광물화석, 석탄의 형성과정, 석탄의 이용과 변천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인류가 석탄을 연료로 이용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15년경의 문헌에서 석탄을 대장간 연료로 사용했다는 대목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서기 500∼600년대 수나라 때 '석탄'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1100년대 송나라시대에는 가정연료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서양에서는 이 보다 좀 늦은 10세기에 발견되어 13세기에 영국의 헨리3세가 채탄허가를 부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탄을 언제부터 일상생활에 이용하기 시작했는지 추측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고문헌 상에 석탄의 부존을 인지한 기록과 탄층의 지표에서 석탄을 채취하여 원시적인 형태로 약간 이용한 흔적만이 있을 뿐이며, 구한말 개화기에 이르러 대장간 등에서 석탄을 쓴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석탄이 가정이나 대장간의 연료 등 원시적인 용도로 쓰이다가 처음으로 동력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84년 정부에서 조곡 등 관용화물을 탁송하기 위하여 화륜선(火輪船)을 운용하면서부터이다. 이 석탄은 가정용 연료인 '연탄'으로 제작된 5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인 대중연료로 각광을 받았다.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에는 채탄과정과 채탄 장비 등을 전시해 놓았다. 선탄 생산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광부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지하 800m까지 들어가서 채탄작업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광부들 사이에서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거나, 이른 아침에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거나 하는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이 있었으며, 이러한 금기 상황에 놓이면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 관습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야외 전시장
전시장 건물을 빠져 나오면 야외 전시장이 있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갱도 전시장
가장 볼만한 것은 갱도전시장이다. 은성광업소에서 폐광 직전까지 활용되던 실제 갱도에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이곳에는 갱내 사무실, 채탄 막장, 가스 검사 모습, 갱내 식사 모습, 구호활동 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식 굴진 막장에는 록카쇼벨, 착암기 및 현대 장비를 이용하여 작업의 안전도와 굴진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하루에 3교대로 운영되는 채탄작업의 특성상 갱도로 내려간 광부들은 식사도 갱내에서 해야 한다. 아주 열악한 작업환경인 것이다. 광부들의 이런 고생이 우리나라 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광원사택 전시관
모든 관람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잘 만들어진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는 그냥 한번 보고 지나치는 볼거리일 수 있지만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추억을 되새김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아픈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가 있었음을 생각하며 감사의 옷깃을 여며 본다. |
2006-11-13 05:11 광명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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