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편지의 사연
심영희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또 오랜만에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서울에서는 거리행진도 한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비가 온다. 많은 양은 아니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군인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군인들이 믿음직스러웠다는 결론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올해 손자가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하고 보니 이제는 군인들이 모두 어리게 보인다. 아들 또래의 장교들과 손자보다 어린 장병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마음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며 내 학창 시절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 써 보내던 추억으로 수필 한 편을 올린다.
<수필>
백지 편지의 사연
심영희
나는 편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편지란 써서 즐겁고 받아서 기쁘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지와 가깝게 생활하면서 항상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백지 편지” 사연이 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60년대 파월 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 보내는 것이 학교의 행사가 되었으며 학생들의 임무였는지 모른다.
64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선생님의 지시만 내리면 우리들은 기계처럼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로부터 시작하여 짧게 또는 장문의 편지를 써 보냈다.
옛말에 17. 18세 때에는 말똥 굴러가는 것을 보고도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는 여고 2학년때 일이었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심영희 편지 왔다 하시며 하얀 봉투를 내주셨다.
받아 든 봉투에는 큼직하고 잘 쓴 글씨로 강릉여자고등학교 2학년 3반 심영희라고 또렷하게 쓰여 있었고 발신인 주소란에는 ‘백마부대’ 아저씨 주소가 적혀있었다.
종례 시간이 끝난 후 나는 들뜬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잠시 후 나의 눈은 멍하니 한곳에 멈추고 말았다. 받아든 봉투 속에는 두 장의 백지 뿐 아무런 사연이 없었다. 이리 저리 뒤져보아도 분명 이름 한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급우들은 웃긴다고 야단이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백지 편지는 절교의 뜻이라고 했지만 생면부지의 아저씨로부터 받게 된 백지 편지…
나는 그 후 3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백지 편지에 답장을 써야 할까 쓰지 말아야 할까 하고 생각하며 그 국군 아저씨가 이상하고 얄밉기까지 했다. 이 바쁜 시간에 할 일 없으면 야자 그늘 밑에서 낮잠이나 잘 것이지 백지는 왜 보내…
그러나 호기심에 답장을 쓰기로 했다.
‘백지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백지 보고 답장 쓰려고 막상 펜을 들었으나 저의 지혜로는 이 외의 나머지 공간은 백지로 뿐이 보낼 수 없습니다.'
이 편지가 푸른 바다의 파도를 타고 월남을 향한 지 20여 일이 지나 똑같은 이름의 백마부대 아저씨 편지가 왔다. 더욱 궁금하여 편지를 받아 들자마자 뜯어보았다.
첫 장에 “영희 학생 미안했어요. 백지를 보낼 사연이 있었어요.” 하며 자세하게 써 보낸 아저씨의 ‘백지 편지 사연’은 이러했다.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부산 해운대가 고향인 파월 장병 아저씨는 월남에서 상관을 모시고 있는 상병이며 장교님 책상 앞에 심부름을 갔는데 책상 위에 내 편지 봉투가 있더란다.
예쁜 글씨가 마음에 들어 얼른 주소를 머릿속에 외워 두었는데 봉투 속의 내용을 못 보아서 하는 수없이 주소만 쓰고 편지 대신 백지 두 장을 넣어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쁜 글씨의 여학생 편지 자주 받으면 월남전에서 더욱 큰 공을 세울 것이라는 꼬임에 여고 졸업 때까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숙녀가 되어 감을 직감했던지 양복 입고 넥타이 맨 백지 아저씨 명함판 사진이 동봉되었고 내 사진도 한 장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그 백지 아저씨께 다시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소식이 끊어진 지 3년째 친정 막냇동생이 “언니 편지 집으로 왔더라” 하며 내미는 커다란 봉투는 내가 결혼한 것도 모르고 부산에서 백지 아저씨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였다.
순수한 위문편지에 사진 보내 주면서 내 사진도 보내 달라는데 놀라서 겁먹고 편지까지 끊었던 나는 무슨 죄인이나 된 듯이 그 카드를 찢어 버리지도 못하고 요 밑에 하룻밤을 깔고 자는 겁쟁이가 되었었다.
백지 아저씨가 기회가 되어 이 글을 본다면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60년대 월남전과 아오자이 입은 월남 여인, 또 야자 숲 아름다운 엽서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지금쯤은 50대 중년이 되었을 백지 아저씨께서는 30여 년 전 그 시절 추억을 동경할 것이다.
아울러 여고생 영희의 모습도……
(1990년 3월 씀/1998년 출간한 수필집 “아직은 마흔아홉”에 수록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