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의 음본세*
‘전문가(專門家)다움’의 이야기
정 두 환 (문화유목집단동행 예술감독)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 중에 “~ 다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대학의 전공이 자신을 규정하는 버릇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인지는 모르나, 수(數)와 관련된 것을 꼼꼼하게 들여 다 보면 “너 이과 나왔지!”라며 확신찬 모습으로 확인하려 든다. 어디 그뿐인가 대화를 하면서 분명한 언어로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너 문과 출신이야?”라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필자에게 이과 혹은 문과 출신인지를 물으면 편안하게 이야기 한다. “나 잡과 나왔어” “어~ 잡과 뭐지?” “너 음대 나왔잖아, 음악은 이과야? 문과야?” 이쯤되면 더욱 편안하게 응수해준다. “나 잡과야! 잡과(雜科)는 과거 고려와 조선시대에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와는 별도로 의관, 천문, 지리, 역과, 율관 등 기술관을 선발하던 과거의 총칭이다. 결과적으로 너희들의 문과 이과를 제외한 모든 것을 총칭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 시절에 악사(樂士)는 여기에 들어가지 않지만, 하지만, 지금 나의 생각은 문과와 이과를 따지는 너희들의 생각까지 포함한 인간 세상의 모든 잡다한 것을 생각하고 공부하는 인간의 학문을 총칭하는 과다.”라며 호탕하게 이야기한다. 엉뚱하게 필자가 왜 이렇게 문과, 이과를 꺼낼까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한 번 생각해 보라. 대학 4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하염없이 짧은 그 시간의 공부를 가지고 평생을 재단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학 4년보다 더 긴 세월을 공부하여도 여전히 세상은 학부의 전공으로 사람을 재단하려니 세상 살기 참 어렵다.
‘특정 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와서 그에 관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전에서는 전문가(專門家)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실에서 과연 이 단어의 정의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전문가로서 바른 진단과 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과연 필자만일까?
우리나라의 최고의 전문가 모임 대학(大學).
연구자이자 전문가인 교수들의 집단지성이 모여있는 곳이 대학이다. 이곳은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다. 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 식견을 제시한다. 이렇게 제시된 전문가의 견해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선용되며,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연구 발표를 적용하여 정책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러한 연구들이 현실을 얼마나 변화시키며 일반 시민들에게 선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가지 사례를 보자. 최고의 전문가들이 연구하여 국가 정책으로까지 만들며 공들인 인구정책을 살펴보자. 수많은 연구와 대책이 정책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담부처와 특임장관까지 만들어졌던 출산·육아 등을 위한 인구정책, 이를 위하여 2006년부터 2021년까지 투입한 재정이 280조. 상상을 초월하는 재정을 사용한 그 결과는 어떠한가? 참담하기 그지없다.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정책을 만드는 과정까지 참여하였던 전문가들 지성(知性)의 주 무대인 대학과 각종 연구소는 인구감소로 인하여 스스로의 존립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전문가의 진단과 대안, 결과의 참담함이 안쓰럽다.
어디 그뿐이랴. 세상의 방송과 신문 등 모든 언론을 비롯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는 경제 전문가(economic analyst)들의 진단과 대책이 맞을 확율은 과연 몇 퍼센트인가? 세상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어디 그뿐인가.... 그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과 정책이 맞는 확율보다 어찌보면 틀린 확율이 많았다고 느끼는 것이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런 맥락은 각종 연구소의 전문가들 또한 비켜가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전문가의 위치를 유지함은 물론 전문가에 걸맞는 대접을 여전히 받으며, 같은 곳, 같은 자리매김을 할 수있는 것이 정말 궁금하다. ‘우리에게 과연 전문가는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소시민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전문가는 자신의 견해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전문가다움에는 여러가지 전제가 따른다. 개인의 영욕보다는 사회와 인류라는 거대 담론, 이를 기반으로 정확하고, 면밀한 연구의 진정성, 연구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 등... 명예와 더불어 일정부분의 재정적 보상이 따르는 일이기에 일반인들 보다 높은 준법정신, 책임감과 사회성, 한걸음 더 나아가 깊은 성찰과 같은 평범한 시민보다는 더욱 큰 책임감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술문화부분을 살펴보자. 부산의 예술문화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큰 그림이 있기는 한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이야기하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300만이 넘는 거대 도시 부산. 크고 작은 공연장이 각 구·군부터 시작하여 대규모의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들 힘들고 어렵다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1973년 공공 분야에서 최초로 부산시민회관이 만들어진 이후 전국 최초의 공공영역에서 부산시립무용단이 창단되었던 곳이 부산이다.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도시이며, 기초예술분야가 굉장히 활성화 되었던 도시였다. 5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음악과, 무용과는 폐과가 지속되고 있으며, 아직 폐과는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대학은 참패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고 지성과 전문가들이 모인 대학은 뾰족한 대책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현직에 있는 분들이 흔히 잘나간다고 이야기하던 20~30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필자는 그때 향후의 문제를 고민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였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필자의 대안 제시를 받을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입학생 수의 격감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자 입학생을 독려하는 부탁이 자주 올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전문가다운 모임을 만들어 실제적이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학 또는 연구소에 있다고만 전문가들이 아니다. 특히, 예술분야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전문가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금 찾아보자. ‘특정 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와서 그에 관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 실천해온 사람을 일컫는다. 국가에서도 학위를 넘어서 명장(名匠)이라는 제도를 만들 정도로 전문가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동서고금에서도 보듯이 전문가는 자신의 연구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식 교육제도로 인하여 대학에서의 학위 중심 사회로 바뀌었던 우리의 근대 교육사를 다시금 정리하며, 예술분야만이라도 전문가들의 식견이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관련 기관에서는 인식하여 보다 폭넓은 인재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
각 공연장을 살펴보아도 전문가 영역이었던 곳이 점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것이 공연장 뿐만이 아니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다양한 곳이 희석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실적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내실을 채우지 못하는 일회성의 평가로는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전문가의 견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각 기관은 평생 직장으로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다 전문적 식견으로 짧은 2~3년의 기간을 통해 구조화 시키고 체계를 만들어 가는 역할이 대표에게는 있다. 다음 대표는 앞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여 잘된 점은 연속적인 사업으로 이어가고, 조금 개선점이 있는 사업은 개선하여 기관의 장기적인 발전을 향해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공공기관은 더욱 발전된 모습을 향해 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이어달리기인 것이다. 앞선 선수가 조금 못 뛰었으면 다음 선수는 최선을 다하여 더욱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이다. 전문가는 사회의 전문적 영역에서 시민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팀웤(teamwork)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늘 쉽게 이야기하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는 논어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진정 전문가 다운 자세를 다시금 되짚어 볼때가 지금의 시간이다. 부산시민회관이 개관 50년을 맞이하였고, 부산문화회관도 1988년에 개관하였으니 36년이 넘어가고 있으며, 영화의전당도 11년이 넘었가고 있다. 다른 기관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시설물에서부터 모든 부분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관례도 중요하고 전통도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지는 전통(傳統)과 기본적 가치와 이념을 소중히 하는 정통(正統)이 만나 어울어지는 총체적 인지(認知)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문가다움으로 일에 임하고, 임했던 일에 책임지는 모습이 간절히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