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모산 학술 연구소>를 방문할 기회를 얻어 우리 동기 심원필(3반)의
안내로 서보일,김정업 동기와 함께 연구소를 찾았다.
수성구 황금네거리에서 수성못 쪽으로 백여 미터쯤 가면 <SK 리더스뷰 아파트>와
<대우 트럼프 월드아파트> 사이의 도로를 따라 오십여 미터를 걸으니 연노랑색 타일의
오래된 건물 4층에 <모산학술 연구소>간판이 보인다.
흔히 연구소라면 숲에 둘러싸인 대학캠퍼스나 산 아래 고즈넉한 주택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곳 연구소 주변 분위기는 우리의 상상과는 거리가 저 만치 멀다.
대구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의 한 곳인 황금네거리에 위치해 있어 주변은 온통 음식점과
숙박시설의 불빛이 휘황하다.
역설적으로 연구소 건물이 세상의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에 오롯이 청청한 모습으로 서
있는 한 그루의 청솔을 보는 듯하다.
원필에게 어떻게 이곳에 연구소가 위치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연구소를 설립할 즈음에는 이곳이 이렇게 번화한 곳은 아니었단다. 앞쪽으론 범물동
골짜기를 타고 내린 범어천이 흘렀고, 뒤쪽은 논과 밭이 주택과 어울어진 수성들판이었단다.
그 시절 영남대학교에서 퇴임한 부친(모산 심재완)을 위해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삼촌이
형님을 위해 이곳에 터와 건물을 마련하였고 이후에도 재단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시고 있단다.
<생전의 원필이 부친 모산 심재완 선생님 모습>
원필이 부친 <모산 심재완> 박사님은 민족사관에 입각해 한국 국문학의 기반을 확립한
도남 조윤제 박사의 학통을 계승, 국어국문학 전반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72년 간행한 ‘교본역대시조전서’는 전 세계에 산재한 고시조 3천335수를
수집 비교하여 편찬한 역저이다.
일제 초기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시조 연구가 시작된 이후 해방 이후 왕성한 고시조
연구를 집대성한 공로는 국문학계에서도 큰 업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1973년 대한민국 학술원은 학술원 저작상을 수여하고, 2012년 고려대 민족문화
연구원에서는 ‘교본역대시조전서’의 증보판인 ‘고시조대전’을 발간한 바 있다.
선생님은 학문에만 매달리지 않고,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인 古書에서 관심을 두고 평생
을 두고 수집하고 분석하여 국문학의 지평을 넓히셨다.
< 연구소의 세미나실에서 고서적을 분류 정리하고 있는 심원필 동기>
지금 <모산 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330여書冊은 하나같이 귀중한 국문학의
자산으로 평가 받고 있어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석보상절>도 선생님이 보관 하시던 것을
쾌히 공개하여 보물523호로 1970년에 지정되었다.
현재 호암박물관에 보관된 석보상절은 석가모니 일생을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최초의
한글서적으로 문화재로서의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원필이도 학교 일에 늘 쫒겨 선친이 남겨 놓은 유품을 제대로 정리하고 파악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던 중 작년 겨울 방학을 틈타 학술재단 일에 전념하였단다.
6개월의 긴 시간을 투자하여 창고에 보관 중인 고서적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정리하고
분류를 하던 중 <송강가사>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서지학계를 통해 KBS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 방송를 정중히 사양했으나 제작진의 끈질긴 요청으로 지난 7월 3일 KBS의
<진품명품> 시간에 공개되었다.
<송강가사 星州本>
<진품명품의 김영복 전문위원이 송강가사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송강가사>는 우리나라 시조 연구의 선구자인 선친께서 아끼던 책으로 선친의
소장인(所藏印)이 찍혀 있는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이다.
< 7월 3일 진품명품 시간에 송강가사가 소개되었다>
올해는 원필이 선친의 5주기가 되는 해(2011년 11월 별세)이다.
선생님은 1918년 선산군 옥성면에서 출생하셨고. 경성사범대학을 졸업 후 1956년
영남대학 국문과 교수로 부임한 후 1983년까지 재직하시다 정년 퇴임하셨다.
원필이는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서적이 상당수 있어 틈나는 대로 연구소 사무실에서
선풍기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작업을 하고 있단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내가 한자 투성이 고서적과 씨름 하는게 너무 힘들지만,
아버지께서 나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옥편 들고 한 글자씩 깨우치고 있다“
고 싱긋이 웃는다.
자신도 퇴임 후에는 <모산 학술재단>에 참여하여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원필이는 영남대학교 무역과를 졸업한 뒤, 미국 LA에 있는 클레몬트 대학에서
유학을 하였다. 현재 국립 안동대학교 경상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아들은 모두 결혼을 하였고, 세 명의 귀여운 손녀 보았다고 자랑한다.
심원필 동기 연락처(010-8592-9693)
첫댓글 라총무가 정성들여 올린 좋은 자료를 심교수도 필히 봤으면 좋겠다.
좋은 소식 감사, 상범아... 원필이 장형님 홍필 선배는 서울서 가끔 뵌다.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삼범 조은 뉴스 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