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다녀왔다. 그 푸른 바다, 자연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리우는 뉴질랜드엔 바다면 바다 섬이면 섬, 그리고 산과 계곡까지 없는 것이 없다. 피시 크랩을 잡아 데치고 후라이팬에 볶아내 버터를 입힌 붉은 버터 피시 크랩 요리의 신선함도 좋지만, 계곡에 물반 고기반인 그 풍요로움, 그리고 시속 구십킬로로 달려가는 리프트에서 내려다보는 그 푸른 이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남국의 맑고 깨끗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란 정말 세상의 모든 걱정들이 다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나는 생선을 먹고 난 후 피부가 젊고 섹시해졌어요. 제 나이가 육십이라고 믿겨지세요.” 팽팽한 피부의 노인이 피시 크랩요리를 먹다가 자신의 피부자랑을 한다. 그 옆으로 남편은 자신이 생선을 먹고 난 후부터 관절염이 사라졌다면서 이만저만 자랑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뉴질랜드에서는 총리까지 직접 영화촬영장을 찾아올 정도로 영화소프트 산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그들이 지닌 천혜의 자연자원을 그들은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고 또 그렇게 활용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그 무공해의 자연 속에서 도시 생활에 찌든 스트레스와 웅웅 머리 속으로 기어 다니던 그 알 수 없는 벌레를 빼어내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자연이 지닌 치유의 힘이란 무한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 동네 하수도 뚜껑 밑으로 흐르던 그 원유 같이 새카맣던 시궁창 냄새로 인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청명한 머리의 컨디션을 잊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 안에서 다시금 그 청정한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하바드 대학에 갔을 때 그 푸른 숲과 학교의 선명한 조화,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달리고 흑백의 시대에 살다 천연색 시대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해상도 좋은 세상에 사는 것이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높이 자라난 나무, 그리고 주위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그렇게 자기 세계에 몰입해 들어가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학문적 열정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그처럼 청명한 세계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얼마든지 깨끗해질 수 있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건 내가 뉴질랜드와 하버드에 갔다 왔느냐 하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그 자체의 문제다. 어차피 그 느낌 속으로의 여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