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플라톤 주의>> 200418139 최보라♥
로마 집권기의 모든 철학들이 쇠퇴하는 것과 반대로 신플라톤주의는 발전해갔다. 신플라톤주의는 철학과 함께 강한 종교적 감정이 맞물려 경건한 종교적인 구원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나, 배경에는 종교적인 시대정신이 숨어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신플라톤주의를 준비했던 신피타고라스학파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신피타고라스학파의 정신의 근본적인 태도를 이루는 것은, 사후세계와 현실 세계, 육체와 정신 등을 대립시키는 옛날 피타고라스학파의 이원론이다. 여기서 근본사상은 신이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신은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타인이기 때문에 신과 세계가 다시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합은 로고스와 씨앗을 키우는 림으로서 세계와 사물 안에서 작용을 하고, 세계와 만물을 만들어내는 신의 이데아를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신이 알려주는 것은 위로부터의 은총이며, 신이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그런 선물이다. 우리들의 정신은 신에 의해서 높여지고,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신에게 참여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의 사고의 첫 번째 개념은 신에 대한 개념이다. 신은 세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이다. 우리들은 신이 무엇이냐고는 말할 수 없고, 오직 신이 있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신에게 특성을 들먹이는 것도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신은 모든 성질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신은 선한 것보다 더 선하며, 완전한 것보다 가장 완전하다. 두 번째 근본개념은 필론의 물질관인 창조에 대한 필론의 견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조는 무(無)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물질, 질료에서 생긴다.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기 때문에 육체로부터 벗어나 정화되어야한다. 세 번째 개념은 로고스설 이다. 신과 세계 사이에는 중개자(힘들)이 끼어들게 되고 이데아로서의 이 중개자들은 세계 안에서도 작용을 한다. 로고스는 신의 지혜와 이성과 일치한다. 세계는 이 로고스에 의해 창조되고, 로고스는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이다. 로고스는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세계의 대사제(大司祭)로서, 신 앞에서 세계를 대표한다. 이때의 로고스는 완전히 인격적인 자도 아니고, 완전히 비인격적인 자도 아니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항상 유동적이다. 로고스는 두가의 뜻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한 가지의 로고스는 비물질적이고 본보기다 될 만한 이데아들에게 관계되는 것으로서의 로고스이다. 나머지 하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를 완성한 이데아들을 모사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들과 관계를맺고 있는 로고스이다. 인간에게도 로고스는 있다. 로고스는 영혼의 척도이고 원형이나, 육신은 영혼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의 관제는 육체를 벗어나 영원한 지혜인 로고스를 통해 신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신플라톤학파의 학도인 플로티노스의 철학은 두 가지 사상운동의 산물이다. 한편으로는 존재가 초감각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으로 나뉘며, 다른 한편으로는 초감각적인 것으로부터 감각적인 것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면서,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메우려고 애를 쓴다. 감각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것으로도 신에 관해서는 진술을 할 수가 없다. 첫 번째의 것은 정신이 아니라 정신을 앞선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이란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중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첫 번째 것은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앞서는 것이다. 이 첫 번째 것은 정신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일자(一者)는 모든 사물을 만들어내는 자이기 때문에 이 사물들 중의 어느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일자의 본질은 아무것도 아니고, 질적인 것이나 양적인 것도 아니며 정신이나 영혼도 아니다. 이 일자는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정지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형태의 앞서는 것이기 때문에 형태가 없고, 운동과 정지된 상태를 앞서는 것이다. 운동과 정지는 존재자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일자는 (많은 것)을 부정한다는 뜻과 (첫 번째 것)이라는 뜻으로 일자라는 것이다. 중기의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 이후로, 신의 초월성은 점점더 강조되게 된다. 신에 관해서는 경험적인 세계의 범주를 신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플토티노스는 신으로부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존재의 해명이 위에서 밑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과, 우리들에게 존재자와 존재가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신에 의해 자리잡혀져 있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그는 유출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존재의 기초를 지우려고 했다. 일자는 충만해 있기 때문에 넘쳐흐른다. 그러나 태양이 빛을 내면서 손해를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 흘러넘치지는 않는다. 이것은 완전한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것을 전제하는 것과 같다. ‘일자는 만물이다’라는 말은 ‘모든 것은 일자에서 생긴다.’고 하는 명제에 의해 가능해진다. 플로티노스는 실재에 있어서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위로부터 근거지우려 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도 단 하나의 실재는 일자의 실재뿐이다. 세계의 질료는 형상에 의해서만 현실로 되고, 형상은 영혼에서 생기며, 영혼 자체는 또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플로티노스를 범신론적으로 해석했다. 왜냐하면 유출은 내속과 내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로티노스는 사물의 자립성도 인정을 한다. 사물들은 그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일자가 원인이 된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내제하고, 현실적으로만 초월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창조이다. 일자가 자기한테서 방출되게 하는 첫 번째 것은 정신, 즉 누우스이다. 누우스는 적어도 일자 바로 다음에 자리잡고 있다. 누우스는 모든 관념, 규범, 법칙 및 존재구조의 종합개념이며, 지혜의 세계이다. 그러나 정신은 신이 아니다. 신은 제일기체 이며, 일자다. 정신과 영혼이라고 하는 다들 두 가지는 신 이외의 것이다.
세계를 조성할 때 가장먼저 전제되는 것은 영혼이다. 사상은 정심을 에워싸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정신에서 방출되는 빛이다. 이렇게 해서 맨 먼저 세계영혼이 생긴다. 영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항상 전체적인 것이고, 따라서 일자를 닮아 있으며, 많은 것들을 닮아 있음으로써, 예지적인 것과 감각적인 영역에 다리를 놓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영혼은 많음과 생성에 가까워지게 된다. 하나의 육체로 감싸여져 있는 영혼적인 것의 가장 낮은 단계는 ‘자연’이다. 자연은 예지적인 세계의 모사이며, 따라서 정신/힘/자유/활동성이 적으며, 그 대신 수동성이 더 많다. 영혼 자체는 원래 자유로우며, 자발적으로 스스로 새로운 인과관계를 창출한다. 그러나 이 영혼은 육체 안에서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육체 밖에 있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 스스로를 정화하고 누우스와 결합하고 누우스에 의해 비춰지고 누우스의 이데아들과 하나로 되고, 마침내는 누우스를 넘어서 근원적인 일자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 플라톤 학파.. 이 부분만 몇 번을 읽었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수님이 과제로 내주시기 전까지는 신플라톤주의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다.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플라톤의 사상에 대해 재조명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했다. 플라톤의 사상 중, 로마 제정기 때인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상만을 뽑아 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책을 읽어도 생각의 확립이 서지를 않았다. 저번 스토아학파는 쉽게 이해가 되었는데 말이다. 신풀라톤주의에서
내가 그나마 이해를 한 부분은, 신에 대해 매우 높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을 높이 추앙하고, 신과 관련된 모든 개념 속에서 신이 그들 사상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이해를 다 못한 상태에서 레포트를 쓰는 거라 내 생각을 쓰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고대의 플라톤의 사상에서 어떠한 종교심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신플라톤학파들을 찾아내었을까? 영혼이 육체 안에 갇혀있다는 말은 플라톤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 같다. 우리는 육체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신에 관한 부분이나 영혼에 관한 부분은 이해가 조금 되는데, 다른 부분은 왜 이리 어려운지;;; 그 시대의 사조에 발맞춰 종교심을 앞세우는 사상을 전개했던 신플라톤주의는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급작스러운 쇠퇴를 하게 된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쇠퇴할 때쯤에는 종교심이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플라톤의 사상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심플라톤학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