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지진의 초지돈대
2009.6.7(일) 강화도 마니산 산행후 조선시대에 쌓은 강화 54돈대 중의 하나인 강화고 초지진의 초지돈대를 찾는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시설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인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강화고려인삼센타
김포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30분 정도 진행하면 강화대교가 보인다.
강화대교 끝 우회전 하면 강화만남의 광장 강화고려인삼센타가 나온다.
그 건물에 강화고려인삼협동조합이 자리잡고 있다.
인삼은 본래 중국, 만주, 우리나라 등에서 옛부터 재배 또는 야생하는 약용식물이다.
그 중에서도 '고려인삼'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인삼은 그 약효가 뛰어나 동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진
약재로 강화도에서 언제부터 인삼 재배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한국전쟁 이후 개성으로부터 피난을 내려온 사람들이 강화도에 정착하면서
개성 '고려인삼'의 전통을 이어 재배함으로써 그 명성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강화 인삼의 역사가 한국전쟁 이후가 아닌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 고종(1232년) 때부터 강화도에서 이미 고려인삼이 재배되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주장은 일제시대 때, 고려인삼의 주산지인 개성에서 인삼을 재배하던 생산자 단체인 개성산업조합이
연작재배가 불가능하고 재배면적 확장이 불가피해지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강화도를 최적지로 선정하여,
1920년에 특별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비로소 강화인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의 기록인 '만취회고록'에 의하면, 강화도에서의 최초의 인삼 경작자는 고대섭씨와 장길환씨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고려인삼의 명맥을 잇는 곳은 강화도가 유일한 곳으로 홍삼원료의 주산지로 부각되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