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5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1017 月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209(247)장 ‘이 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55:1-23), 설교(15분),
◈ 시편 55편은 54편과 더불어 ‘배반에 대한 시편’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뒤에 상처를 안고 드린 기돕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다윗의 친구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손을 잡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31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아마도 본문에 등장하는 ‘배신자’가 바로 이 아히도벨이었을지 모릅니다.
12-13절에,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같이 배우고 같이 지냈던 또래 친구의 배신이 다윗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친구는 14절에 보면 신앙생활도 같이 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여기 “재미있게 의논하며”는 ‘친밀하고 따뜻한 우정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가까운 친구로부터 지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이 대목에서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당할 때,
그가 가장 믿고 신뢰하였던 친구 브루투스 장군의 칼에 찔리면서
“오, 너 브루투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장면이 생각납니다.
흔히 “브루투스, 너도냐?”로 번역되는 이 대목은 배신의 절정입니다.
다윗은 지금 욥기 21장 6절에 기록된 욥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오죽하면 6절에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라 했을까요.
비둘기는 유대의 산악 지역에서 절벽 사이에 사는 새입니다.
다윗은 비둘기처럼 원수들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높은 절벽 사이에서 안식과 피난처를 갖고 싶어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 본문 1절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다윗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여기에 흥미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숨지 마시길’ 구했습니다.
신명기 22장 4절에 보면,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 “못 본 체 하지 말고”가 바로 본문의 “숨지 마소서”입니다.
여기에서 “숨다”는 ‘무시하다’, ‘외면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무정한 사람은 이웃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8장 6-7절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명령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곤고함을 사랑으로 돌아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시인은 이제 16절에서 기도 응답의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부르짖어 아뢰면 구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매일 꾸준히 기도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하루가 저녁때부터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한다는 말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새벽부터 밤중까지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 22절에서 본문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만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네 짐’은 ‘너의 염려’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말씀이 바로 본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짊어지고 나오신 ‘염려’라는 ‘짐’을 다 주께 맡겨버립시다.
23절 끝의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이사야 12장 2절에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