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년 걸쳐 얻은 열매
딩동! '선생님, 선생님이 외친《박사리의 핏빛 목소리》가 결실을 보았습니다. 박사리사건 사망자에 이어 부상자 전원이 4. 23일, 소위를 통과했습니다. 2024. 4. 30. 본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나면 결정서를 바로 유족에게 띄울 계획입니다.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책이 진실규명에 소중한 자료가 됐습니다. 선생님께 먼저 결과를 알려드려야 도리일 것 같아 문자를 보냅니다.' 지난 4.26.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보내온 문자와 전화 내용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막상 소식을 접하고 보니 반가움보다 가슴 한켠이 휑하게 뚫린 기분이다. 마치 총 맞은 것처럼.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간 기분이랄까. 사망자는 2022년 10월에 진실 결정을 받았지만, 부상자는 지지부진해 마음 죄고 있던 터다. 결정문에는 이렇게 기술했다.' 북한 정권은 박사리사건 희생자에게 사죄하고,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라. 명예 회복과 추모사업 등을 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박사리 사건은 대상자 전원이 부상 피해자란 점에서 위원회는 상해 사건의 진실규명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상자에게 진실규명을 내린 것은 전국 약 20.000여 건 가운데 처음이다. 내가 신청한 건이 전국에 표본이 된 셈이다.
불확실한 목표를 향하여 지난 팔 년 동안 나의 동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가 고고지성呱呱之聲을 터뜨린 지 겨우 7개월 난 유아적 일이기에, 그날의 실상을 밝히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하룻밤, 두어 시간 만에 사망 38명, 부상 16명, 초가 108채 소실, 마을이 풍비박산 났기에 어느 누군들 기록 보존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 사업은 2016년부터 사명감이 작동하여 시동을 걸었지만, 과정은 만만찮았다. 전국에 흩어진 유족들의 목소리를 집대성한 것이《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다. 이 이야기를 중앙지·일간지가 자세히 게재하여 전국에 알림에 따라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행사장마다 찾아 명예 회복을 위한 탄원 서명 운동을 펼쳐 25.000명의 서명을 받았다. 국회 행자위 소속 의원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머리를 조아렸을 땐, 선량들은 바로 될 것처럼 화답했다. 그러나!
사망자 38명, 부상자 16명, 단체로 일괄 진실규명 신청서 준비는 버거웠다. 예전 같으면 임의로 공부를 열람,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를 허용치 않았다. 몇 개월에 걸쳐 신청서를 완성, 진화위에 제출했다. 그 결과 사망자 전원과 부상자 2명은 2022. 10. 18. 규명 결정을 받았다. 규명을 받은 부상자 2명은 책에 부상 부위 사진을 책에 실었기에. 아쉽게도 나머지 부상자는 증거가 없어 결정에서 제외됐다. 도립병원(현, 경대병원)에 진료 기록 자체가 없다. 오늘을 예상하고 사진으로 남겨 놓아야겠다는 희생자가 어디 있었겠는가.
갖가지 사유를 들이대며 끈질기게 청원했다. 때론 다그치고 때론 간절하게. 그러나 모든 일은 상대성일 터. 소위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으니. 진화위에서도 난감했을 모양이다. 객관적 증거 없이 유족들의 진술만 믿고 결정할 기관이 어디 있겠는가. 당국에서는 사건 당시 12세 (현 88세) 이상인 사람의 증언을 주문했다. 증인 채택이 어려웠다. 이미 저세상 사람 되었고, 그나마 전국에 몇 있었지만, 늙고 병들어 의식이 희미하여 인지 능력이 떨어졌으니 어쩌랴. 지푸라기도 잡는 마음으로 증빙될 만한 자료들을 샅샅이 찾아 수시로 제출했다. 정부에서 어렵사리 결정을 내린 것은 이러한 것들이 작용했으리라.
이제 일차 목표는 이루었다. 다음은 결정서를 토대로 합당한 보상을 받는 일이다. 2022. 국회 상임위 토론에 참석했을 때, 여야 의원 한결같이 입법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오늘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정치하는 사람은‘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라는 우스갯말이 그것을 반증한다. 국민이 공분할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작금 몇몇 사건에 특별법,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선량들은 개인의 영달과 주도권 늪에 빠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추구한 사업은 8부 능선에 올랐다. 궁극적 목적은 실질적 보상이다. 이제 꽃잎을 열었다. 영근 열매를 맺게 해야 할 일이다. 돈으로 명예 회복 운운하는 것은 저어하지만, 우리 마을 사건은 50억이 걸려 있다. 여의도는 정쟁을 지양하고 특별법을 만들기를 바란다. 제주 4.3사건에 버금가는 보상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진실로 소망한다. 노회한 유족들이 이 세상 떠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