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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전영철 출판: 선교횃불 / 발간: 2013년 2월 25일
Q1 오늘 소개하여 주실 책은 어떤 책입니까?
A 한국 기독교 130년 믿음의 명문가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 제목은 <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 1>입니다. 전영철교수가 썼습니다. 선교횃불에서 만들었습니다.
Q2 먼 저 <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 1 > 저자를 소개하여 주시죠?
A 전영철 저자는 현재 대전에서 살고 계시고,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공군 항공과학고등학교 교관을 지냈습니다. 대구문화방송에서 15년간 근무한 저자는 잠시 중소기업 경영자를 거쳐 김제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13년간 방송 관련 분야를 강의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믿음의 세대계승을 통해 한국기독교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믿음의 영웅들을 찾고 있습니다. 전교수는 한국에 설립된지 100년이 넘는 교회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며 조사하였고 그 조사한 자료를를 정리하였습니다.
명예퇴직 후에는 ‘할아버지·할머니학교(www.grandparents.or.kr)’와 ‘한국격대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격대교육(隔代敎育)’을 통해 바람직한 조부모의 손주교육 방법을 개발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대전광역시교육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학업중단 위기예방 교육헬퍼’와 평생교육진흥원의 ‘배달강사’로 활동하면서 조부모의 육아 참여는 일하는 엄마의 육아문제 해결과 아울러 청소년문제 해결방안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지은 또 다른 책은 < 격대교육과 관련한 『격대교육(隔代敎育)이 오바마를 만들었다』가 있다. 홈페이지 : www.grandparents.or.kr
Q3 <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 1> 은 어떤 책입니까?
저자 전영철교수는 이렇게 본서를 설명합니다.
< 미국에 에드워드 가문이 있다면 우리에겐 독립운동가와 순교자 가문이 있다!”
설립 100년이 넘는 전국 400여 교회를 직접 발로 뛰어 기록한 신앙 답사기! >
우리는 흔히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야기할 때, 미국의 에드워드 가문을 이야기한다. 미국 개척 초기에서부터 2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에드워드 가문의 후손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떻게 그 가문을 축복하였는지를 그 후손들의 삶과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약 130년.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믿음의 가문들은 없는 것일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이어온 믿음의 명문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저자 전영철교수가 직접 발로 뛰어 기록한 책입니다.
Q4 정말로 귀한 책이네요 그러면 <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 1>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려주시죠 ?
A 전영철교수는 본서를 쓰기 위하여 자료 조사를 철저하게 했는데 우리나라에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은 2007년을 기준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600여 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중에서 400개가 넘는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자료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자의 서재에는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교회 100년사가 백 수십 권 꽂혀 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과 같은 극심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3~4대에 이르도록 믿음의 유산을 잘 이어오는 수십 개의 가문을 방문하여 후손들을 직접 인터뷰하다고 하네요. 이러한 자료 수집과 구술 인터뷰, 현장 방문 그리고 여러 자료들의 비교 검증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신앙의 가문들을 새롭게 발굴하거나, 잘못 알려진 기존의 기록들을 수정? 보완하여 기록한 땀과 노력, 그리고 기도의 결실입니다.
Q5. 그래도 이런 책을 쓸 때에는 나름 개인이나 가족의 역사이니까 저자가 쓸 때 어떤 기준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자 전영철 교수는 3가지 정도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본서에서는 12명의 한국개신교 신앙영웅(모범)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여러 교단들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당대의 한 인물만을 중요시 한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3가지 정도로 본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조사하여 실었습니다.
1) 기독교를 받아 들인지 그 가문이나 선조가 100년 정도 되어야 합니다. ( 개신교 선교초기부터 - 오늘날 까지 )
2) 현재 그 최초의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인 후 현재도 자손들이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계승)
3) 그 가문이 민족과 교회 지역 교육에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헌신)
Q6. 주로 어떤 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A 전영철 저자는 잘 알려진 분들도 조사했지만 일반 성도들이 잘 모르는 분들의 100년 신앙가문의 아름다운 신앙을 조사하였습니다. 총 12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분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1부는 순교자의 후손에게선 기도의 향기가 라는 제목으로 - 독립운동가·순교자 가문 편을 소개합니다. 6분을 소개하고요 2부는 영혼의 잠을 깨우는 사람들 - 학자·교육자 가문 편으로 또 6분을 소개합니다.
1. “독립운동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한 후 결정하겠소” -변절보다는 순교를 택한 독립운동가, 신석구 목사
2. 아버지와 아들이 한날한시에 순교자가 되다 -총칼대신 복음을 든 의병장 출신 순교자 구연영 전도사
3.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에게 대대로 마당청소만 시켰구나” -노비를 해방하고 복음전도자가 된 독립투사 이상동 장로
4. 만세운동, 고난, 기도, 환상… 4대에 걸쳐 역사하시는 하나님 -편항시장 3.1만세운동의 주역 김성복 영수와 방잠교회
5. “동학보다 예수를 믿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첩경이다” -동학군에서 술꾼으로, 술꾼에서 복음전도자가 된 백낙규 장로
6. “너는 후일, 만인을 거느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거라” -한국인 최초로 침례교단 총회장이 된 순교자 이종덕 목사
7.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이 결정에 순종합니다” -총회장이 된 마부 이자익 목사, 대인배 조덕삼 장로
8. 한국판 〈불의 전차〉, “우리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평생 호남지역 교육과 선교에 헌신한 겸손한 스승, 김형모 목사
9. “저런 불한당 같은 놈이 예수를 믿고 사람이 변화되다니!”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내매교회와 한글학자 강병주 목사
10.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송암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창제했다 -한글 점자를 창안한 영화학교 박두성 교장
11. 죽어가던 아들을 살린 복음이 침례교단과 가문의 역사가 되다 -한국 침례교단의 초석이 된 칠산교회 장기영 감로
12. 육체를 깨우고 영혼을 깨운 위대한 기도의 새벽종소리 -새마을운동의 뿌리가 된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Q7. 그럼 대표적인 분들 몇 분을 소개하여 주시죠 ?
A 오늘 소개하는 <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 1>에 수록된 분들은 모두 본받을 만한 신앙의 가문들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았습니다.
4장에 보면< 만세운동, 고난, 기도, 환상… 4대에 걸쳐 역사하시는 하나님 -편항시장 3.1만세운동의 주역 김성복 영수와 방잠교회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안동지역 초기 교회중 하나인 방잠교회 이야기입니다. 이 방잠교회는 1905년에 세워졌다가 1923년 이웃에 있던 지내교회와 통합되어서 없어졌답니다. 그런데 65년 만인 1988년 이 방잠교회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 이면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1859년에 태어난 김성복이라는 분이 미국 선교사가 안동에 잠시 들렀다가 준 쪽복음로 복음을 믿게 되고 그로 인하여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에 전념한 문중들의 핍박으로 예수를 믿을 수 없게 된 김성복은 < 하나님나라의 족보만 필요하지 세상의 족보는 필요 없다>라고 하면서 문중에서 발간하는 족보도 거부하였습니다. 1905년 새로 정착한 구룡리라는 곳에서 방잠교회를 김성복 영수( 지금의 장로) 가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또한 분 이승훈 선생의 후손 이호명과 함께 열심히 전도하여 방잠교회를 함께 세웠습니다. 두분이 방잠교회를 세웠지만 한국선교의 초기에는 목사들이 부족하여 주로 영수 즉 장로님들이 작은 교회 시골교회는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하고 교회도 이끌었습니다. 그 때 이 두 분 김성복과 이호명 장로가 방잠교회를 세우고 이끌었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고 3월 17일 안동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월 22일 편항 장날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61세 였던 김성복 장로와 아들 김치경 35세은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잡혀 감옥에서 김성복 장로 1년 6개월 아들은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김성복장로는 그때 고문 휴우증으로 평생을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출옥 후에도 일본경찰의 지속적인 간섭과 괴롭힘으로 방잠교회를 떠나 안흥교회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잠교회는 옆 교회 지내교회로 통합되었다고 하네요.
아들은 김치경은 37세에 고문 휴우증으로 죽고, 김성복장로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79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이후 김성복의 손자들중 6.25때 전사하고 상이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이 두 여인이 4남매를 기도와 눈물로 키웠다고 하네요. 이들은 고난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았습니다.
Q8. 그럼 방잠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65년 만에 다시 세워졌습니까?
A 저는 이 부분에서 책을 놓고 잠시 기도하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았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감동이 되더라구요
또 다른 방잠교회를 세웠던 이호명 장로의 다섯째 아들 이기동 집사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사업에 성공하여 큰 돈을 벌었답니다. 그런데 이기동 집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 이호명장로의 손을 잡고 방잠교회를 방문했던 생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향교회의 추억이 생각난 것이지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세운 고향교회를 복원하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1983년에 마음을 먹고 무너진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로 계획을 세운것입니다. 그리고 1988년 드디어 다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방잠교회를 최초로 세웠던 두분중 한분 이호명장로만 복원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성복가문의 후손을 수소문하여 찾았습니다. 김성복 가문의 후손들은 안흥교회에서 김세진 장로가 시무장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방잠교회는 교인이 없고, 목회자만 있었는데 그 목회자가 수소문하여 김성복장로의 손자 김세진 장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시 방잠교회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60년을 섬겼던 안흥교회를 떠나기는 어려웠다고 하며 한 달간 기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응답을 받고 그래서 1997년 첫 주부터 방잠교회로 가기로 했는데 주일날 아침에 방잠교회를 향하여 가는데 눈이 많이 내렸답니다. 택시를 타고 그곳에 도착하니 하나님이 한 달 동안 기도 가운데 보여주신 교회내부의 모습이 바로 그 교회였다고 하네요. 얼마나 놀랐습니까? 할아버지의 교회설립 3.1운동 이후 없어진 교회가 65년 만에 다시 날것입니다. 현재는 김세진 장로의 맏사위가 담임목회를 하고 있답니다.
Q9. 다른 분을 한분 더 소개하여 주시죠?
A < 믿음 그 위대한 유산 1> 10장에 보면 <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송암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창제했다 - 한글 점자를 창안한 영화학교 박두성 교장> 이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 들어 보았던 분인데 우리나라 시각장애자들을 위하여 한글 점자를 만든 분입니다.
1446년 10월 9일 세종대왕은 조선의 백성들을 위하여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450년이 지난 조선후기에나 와서 한글은 특별히 성경이 번역되면서 급속도로 일반 백성들에게 전국에 전파되었습니다. 누구나 알듯 한글은 배우기 쉽고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글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들은 그 좋은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글점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훈맹정음을 이라고 불리는 한글점자를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성경을 한글점자로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Q10. 박두성 선생님의 신앙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우리나라에는 현재 학사 이상을 취득한 시각장애인들이 150명이 넘고요 시각장애인 목사 전도사가 2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통점은 모두 박두성교장이 만든 한글점자를 통하여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송암 박두성은 어릴 적 공부를 잘해서 집안에서 기대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박두성은 장애인학교인 <재생원>의 교사로 일하겠다고 하여 집안의 원성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도 박두성은 기독교신자였습니다. 박두성이 재생원 교사가 된지 7년쯤에 한글 점자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일본의 방해를 이겨내고 6년 7개월 뒤 한글점자를 개발했습니다. 일제의 조선동화정책을 펴고 있던 시점에 한글점자를 개발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송암 박두성은 이후 한글점자를 제일 먼저 사용한 곳이 바로 마태복음 점자화 작업이었습니다.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 가운데 한글점자책의 사용도 문제였지만 불온서적 같은 성경을 점자화하는 것은 고난가운데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와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이분이 점자화한 책이 무려 200여권이며, 특히 신약성경전체를 점자화 하였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 사랑은 송암 박두성뿐만 아니라 딸과 손자까지 이어졌습니다. 딸 박정희 장로는 한국점자도서관, 인천맹인복지관 건립을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외손녀 유순애 박사는 지금도 송암장학회를 만들어 매학기 시각장애인들의 공부를 돕고 있습니다.
Q11. 정말로 놀라운 신앙의 가문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축복의 가문이 될 수 있는지 책 안에서 이야기 하고 있나요
A 제가 지난주 오늘 소개하는 <믿음 ,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의 저자를 직접 만나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쓴 이유는 저자 전영철교수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축복받은 믿음의 가문이 될까? 의문점을 가지고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서를 썼습니다.
첫째는 철저한 말씀신앙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말씀안에서 하지 않습니다. 100년의 신앙가문 축복의 신앙가문은 철저하게 말씀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본서에 소개된 12분 모두가 핍박의 시간 고난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께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한국기독교 선교초기의 시대는 가문의 반대, 민족의 독립, 외세의 침략, 전쟁, 빈곤, 정말로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들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 자체가 문중에서 쫓겨나 이사를 가야하거나, 복음전파를 위하여 매를 맞거나, 굶거나, 독립운동 때문에 감옥에 가야하거나, 예수를 부인하지 못하여 순교의 순간에 직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마다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께 이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셋째 민족과 이웃을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은 개인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신앙 100년을 이어온 신앙의 가문의 축복은 단지 외형적으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입니다. 신앙은 나의 가족, 나의 출세만을 생각하는 오늘날의 신앙과 다릅니다. 첫째는 교회 둘째도 이웃 즉 민족공동체, 교회공동체의 번성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은혜를 받고 그 은혜가 이웃에게 교회에게 민족에게 나누어져야 합니다.
Q12. 다음 주에 소개해 주실 책은 무엇인가요?
책 제목은 < 습관의 힘 > 찰스 두히그 저 갤리온에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