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명품 갖기 ‘오더 메이드’
최근 명품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나만의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형성된 ‘오더 메이드‘ 시장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해 온 명품 시장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제품으로 차별화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포화 상태인 명품시장이 ‘오더 메이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은주 객원기자
남들도 갖는 명품은 이제 그만
최근 본업인 가수 이상으로 패션에 관해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팝스타 비욘세가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아니 그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바로 비욘세가 든 핸드백 ‘트리뷰트 패치워크’가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메르세데스 벤츠 ‘C 180 쿠페’보다 비싼 가격, 게다가 시중에 출시되기도 전에 예약 판매로 매진되어 보통 사람들은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점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실제로 비욘세가 든 핸드백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에서 디자인한 제품. 가격이 5만 2,500달러로 우리 돈으로는 약 5천 만 원에 해당했다. 무엇보다 한정판으로 24개가 제작됐는데 주문 생산을 의뢰한 특별한 고객 24명 중 한 사람이 바로 비욘세라는 것이다.
짐작컨대 비욘세는 루이비통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직접 루이비통의 150년 역사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루이비통의 실제 제품 가방 14개를 조각내 오려붙여 만든 ‘트리뷰트 패치워크’야말로 가격과 희소성이란 면에서 비욘세의 스타 이미지와 어울리는 명품으로 소장해도 손색이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품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는 비단 비욘세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들어 명품시장에서는 세계에서 단 몇 개 하는 식으로 한정 판매하는 1급 명품의 출시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펜디’가 희귀한 남미산 친칠라(다람쥐를 닮은 동물) 모피와 담비의 털로 만든 3만 8천 달러(약 3,500만 원)짜리 한정판 핸드백을 출시한 것. 또한 ‘에르메스’는 백금 버클에 총 1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손잡이에 박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단 2개의 ‘크로커다일 버킨’을 12만 달러(약 1억 1,300만 원)에 내놓았다. 이에 뒤질세라 샤넬도 오는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앞두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이름의 ‘보석 핸드백’을 선보일 예정이란다. 샤넬이 내놓을 이 핸드백은 흰색 악어가죽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지며, 다이아몬드 334개로 샤넬 마크를 장식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 딱 13개만 한정 판매되는 이 핸드백의 가격은 무려 26만 150달러(약 2억 5천만 원).
결국, 명품은 명품답게, 보석은 보석답게 팔아야 더 잘 팔린다는 명품 마케팅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적용한 제품들이 출시 봇물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명품시장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나만의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형성된 ‘오더 메이드(Order Made)‘시장이다.
명품 대중화에 대한 차별화 선언
소수만을 대상으로 맞춤 생산방식으로 제작되는 고급품 및 고급 서비스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는 매스클루시버티(Massclusivity). ‘오더 메이드’는 바로 이 매스클루시버티의 한 유형이다. 실제로 ‘오더 메이드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은 커스텀 메이드(Custom Made). 제품 디자인과 재료 등을 고객이 직접 고르는 맞춤 상품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왜 명품 시장에서 유독 오더 메이드가 더 주목받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경제 전문가는 ‘소비자의 고급화 욕구는 단순히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한 동조 소비에서 시작하여 더욱 차별화된 고급 브랜드에 대한 욕구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 온 명품 시장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제품으로 차별화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욕구에 맞게 직접 맞춤형 제품을 의뢰하는 ‘오더 메이드’를 선호하는 추세라는 것. 바로 현재 포화 상태인 명품시장이 ‘오더 메이드’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3년 전 소니가 선보인 명품 가전인 퀄리아(Qualia)나 푸마가 BMW사의 미니쿠퍼 운전자를 대상으로 무려 100만 원대의 운전 전용 운동화를 출시했던 것은 소비자의 취향을 최적화해 맞춤 생산한 '오더 메이드' 바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소니는 당시 1,600만 원 대의 홈시어터 프로젝터, 1,400만원 대의 고음질 오디오 시스템 등을 선보임으로써, 차별화된 명품 가전을 원하는 소비자 요구에 부응했다. 실제로 버버리, 구치 등과 같은 전통적인 명품, 그리고 폴로티셔츠, 루이가또즈 지갑 등 매스티지(Masstige)가 대중화됨에 따라 명품 업체에서는 당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최상위 고객인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를 대상으로 고객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 좋은 예다.
이를테면,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신제품을 매장에 전시하기 전 최상위 고객 5명을 대상으로 패션쇼를 열기도 하고, 불가리는 이러한 유사한 형태의 쇼를 개최해 20명의 고객이 한번에 1억 5천만 원어치를 사들인 사례를 들 수 있다.
1급 패션 명품 시장의 진화
이 추세라면 기업들은 단순한 고급화를 넘어서 소비자들이 가진 자기표현 욕구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그 선두 주자로 1급 패션 명품 브랜드들이 나서고 있다. 지난해 6월 ‘샘소나이트’는 청담점의 문을 열면서 ‘오더 메이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본 디자인은 정해져 있지만, 색상과 원단 등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소재는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을 선보였다. 유럽에서 수작업(手作業)으로 만들어서 제작에 6~9주 정도 소요되지만 고객 수요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도 슈트의 버튼과 주름, 옷감 등 모든 사항을 고객이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선택 가능한 소재는 무려 450여 가지. 슈트에는 고객의 이름과 제작 일을 새겨 넣을 수 있도록 해서 고객 자신만의 주문 생산제인 ‘오더 메이드’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슷한 전략으로 제일모직 갤럭시도 100여 가지의 원단 샘플에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남성화는 소재와 색상뿐 아니라 바닥 창까지 고객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 본사에서 직접 생산하는데, 일반 기성품에 비해 20~30% 정도 가격이 비싸다. 그런데도 올해 들어 주문생산 제품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년 전 5% 미만에서 최근 10% 정도까지 올랐다. ‘오더 메이드’ 바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맞춤 양복의 부활로도 이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맞춤 양복이 값싼 기성품에 밀려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맞춤 양복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원단을 싼 값에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맞춤 제품의 단가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관련 업체에서는 말한다. 실제로 사무실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역과 선릉역 주변에는 이런 맞춤 양복점 20여 곳이 성업하고 있다.
여행, 보석, 핸드폰까지…, 생활 속 ‘오더 메이드’ 시대
이 밖에도 ‘오더 메이드’ 제품은 패션을 넘어서 점차로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러한 경향을 말해 주듯 지난 6월 13일자 뉴스위크지 일본판 특집은 최근 일본에서 ‘오더 메이드’ 여행 패턴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비행기 대신 열차나 선박 등을 이용한 복고풍 여행, 또는 환경 피해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즐기는 친환경 여행, 에코 투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파리나 뉴욕의 명소 순례나 쇼핑 대신 이탈리아 북부의 고즈넉한 호수나 스리랑카의 고급스러운 부티크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고급스러운 숙소의 기준도 바뀌었다고 한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비슷하게 마련인 높은 천장과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린 화려한 로비의 거대 체인 호텔 대신 마치 집에 온 듯 편안하고 아늑하게 꾸민 부티크형 숙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단다.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친 인테리어와 집기들, 최상의 재료로 만든 다이닝 룸, 또한 객실 수를 적게 해 최대한 고객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로 온천으로 유명한 규슈 지방의 ‘유후 인’에 지어진 12칸짜리 객실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료칸 무라타’를 대표적이라고 꼽았다.
아울러 전통적인 오더 메이드 상품인 보석에 대한 나만의 명품 갖기 열풍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명품, 쥬얼리 ‘프레드’는 지난 5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다이아몬드 태그 컬렉션’을 출시했다. ‘다이아몬드 태그 컬렉션’은 원하는 날짜나 별자리에 맞춰 다이아몬드를 세팅할 수 있는데 이중 ‘데이(Day) 태그’와 ‘별자리 태그’는 오더 메이드가 가능해 주문 후 프랑스 현지에서 직접 제작, 약 30일 후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쥬얼리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휴대전화 신제품을 내놓으며, 이벤트에서 당첨된 고객이 직접 만든 색상으로 제품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LG 샤인폰은 뒷면에 고객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도록 부분적으로 ‘오더 메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향후 맞춤형 휴대폰 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징조다.
LG 경제연구소 박정현 연구원은 바로 이러한 ‘오더 메이드’ 시장의 성장 추세에 대해 ‘특정 제품군 내에서도 고급 시장은 더욱 세분화될 수 있다며, 최상급 시장이 아니더라도 고객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수단의 개발에 기업들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