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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인문 꿈의학교 >
옥석산 – 오백살 철쭉이 들려주는 봄 이야기
< 일정 및 자료 >
[ 구간 소개 ]
-. 산행월일 : 2018년 5월 12일(토)
-. 산행출발 : 2017년 5월 12일(토) 오전 06시
-. 산행코스 : 도래기개-500살 철쭉-옥돌봉-박달령-오전약수
-. 산행거리 : 약 7.7km(도상거리)
-. 소요시간 : 약 5시간
-. 난 이 도 : 중하(★☆)
☛ 550살 철쭉Ⓒ아름다운소통 이철승
[ 산행지 안내]
2018년 백두대간인문꿈의학교 첫 산행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의 경계를 이루며 낙동강과 한강의 물길을 나누는 백두대간을 찾아갑니다. 백두대간 옥석산(옥돌봉) 구간입니다. 500살이 훨씬 넘은 철쭉이 들려주는 봄 이야기를 들으려 갑니다. 지금 백두대간의 숲은 봄이 절정입니다. 숲의 정령들이 활개를 치며 온통 연두색으로 숲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활기 가득한 백두대간은 연두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활기찬 백두의 숲 바람결에 들려오는 철쭉 할아버지의 봄 이야기를 찾아 옥돌봉으로 들어갑니다.
산행의 시작은 도래기재입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을 이어주는 88번 지방도가 지나는 도래기재에서 백두대간 숲으로 들어섭니다. 도래기재 생태터널 옆 나무계단을 오르며 산으로 들어갑니다. 계단을 오르면 완만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파릇파릇 새싹을 내미는 나무들로 인해 숲은 생기로 가득합니다. 향긋한 숲의 향기가 바람결에 코끝을 스칩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밝게 개입니다. 청아한 숲길은 발걸음도 가볍게 합니다.
옥돌봉(옥석산) 구간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입니다. 최고령 철쭉과 철쭉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 일대 10만평이 보호림으로 지정돼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도래기재에서 옥석산으로 이어진 숲길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울울창창한 숲은 청아하고 청정합니다. 이런 숲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맑아지고 저절로 정화가 됩니다. 울창한 숲이 계속되다 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철쭉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주위에 나이 어린 철쭉들에 둘러 쌓여있었는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나서 울타리를 쳐 보호하고 있습니다.
높이가 5m가 넘는 진달래는 나이를 잊은 듯 지금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수수한 새색시 같은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연두의 새순 위로 피어있는 철쭉의 자태는 단아하고 소박합니다. 순박한 우리나라의 대표 철쭉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울타리 한켠에 앉아 철쭉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의 봄 이야기를 듣습니다. 바람이 전해주는 봄 내음과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백두대간의 봄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입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살포시 철쭉위에 앉아보고 포르르 철쭉 그루터기에도 올라가 봅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입니다.
철쭉할아버지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조금 올라서면 까아만 올돌봉 표지석이 반겨줍니다. 해발 1222m의 옥석산입니다. 옥석산을 지나며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나무의 왕으로 여기지는 토종 금강소나무입니다. 몸통이 황금색을 띄고 있는 금강소나무들입니다. 일제강점기 무분별한 남벌로 지금 서 있는 소나무들은 30년에서 90년 정도의 소나무들입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벌목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예기로는 베어낸 소나무 밑둥에 10명이 넘게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아름드리로 자란 소나무들이 베어졌던 것입니다. 지금 자라고 있는 금강소나무들도 아름드리소나무로 자라겠지요. 금강소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하며 마루금 위를 지나갑니다.
금강소나무사이로 이어진 백두대간 마루금은 소백산으로 내달립니다. 박달령으로 이어진 마루금은 숨겨둔 보물을 보여 줍니다. 노랑무늬붓꽃의 자생지가 있습니다. 이맘때 가득 피어 지나가는 산객들을 맞이합니다. 무리지어 수줍게 피어있는 노랑무늬붓꽃과 인사하며 마루금을 이어갑니다. 백두대간은 많은 보물들을 품고 있습니다. 550살 철쭉, 금강소나무, 노랑무늬붓꽃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동식물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는 인문학의 보고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가 돌아갈 백두대간을 잘 보존하고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 박달령 표지석Ⓒ아름다운소통 이철승
임도가 보이고 넓은 공터가 보이면 바로 박달령입니다. 작은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신각에서 백두대간인문꿈의학교의 안전을 마음 모으고 임도 옆 소로로 내려섭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내리막을 따라 고도를 점점 낮춥니다. 철분으로 인해 붉은 색을 띠고 있는 샘이 보입니다. 바로 오전약수입니다. 오전악수 한 모금으로 묵을 축이고 내려서면 오전약수 국민관광단지입니다. 이곳에서 2018년 백두대간인문꿈의학교 첫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백두대간과 작별합니다.
혼자 걸으면 나만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백두대간인문꿈의학교는 함께 걷습니다.
< 산행일정 >
06:00 포곡농협하나로마트(포곡고등학교 옆) 출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
09:00 도래기재 도착 – 산행 준비 및 스트레칭
09:20 도래기재 출발
10:20 500살 철쭉 자생지
10:40 옥돌봉
11:00 주실령 갈림길 - 점심식사
13:00 노랑무늬붓꽃 자생지
13:20 박달령
14:20 오전약수 국민관광지 – 산행 마감/버스출발
17:00 용인 학교 도착 예정 / 뒤풀이 후 해산
*상기 시간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산행 준비물 ]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자켓, 우모복, 우의, 스틱, 물통, 여벌 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아침-행동식, 점심-도시락 등
[ 지명 해설 자료 ]
◆[백두대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이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44m)을 기점으로 포태산(胞胎山:2,289m), 두류산(頭流山:2,309m) 등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遮日峰:1,742m), 철옹산(鐵瓮山:1,085m), 두류산(頭流山:1,324m), 추가령(楸哥嶺:752m)으로 이어진다. 또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金剛山:1,638m), 진부령(陳富嶺:529m), 설악산(雪岳山:1,707.9m), 오대산(五臺山:1,563.4m), 대관령(大關嶺:832m), 두타산(頭陀山:1,352.7m)을 거쳐 태백산(太白山:1,566.7m)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小白山:1,439.5m), 죽령(竹嶺:689m), 이화령(梨花嶺:548m), 속리산(俗離山:1,058.48m)으로 뻗어내린다. 이로부터 추풍령(秋風嶺:221m), 황악산(黃岳山:1,111.4m), 삼도봉(三道峰:1,177m), 덕유산(德裕山:1,614m), 지리산(智異山:1,915m)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正幹) 및 13개 정맥(正脈) 체계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산줄기[山經]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 두 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 세 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삼국의 국경과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도래기재] 763m
도래기재는 춘양면 서벽리와 우구치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고갯마루에는 금정굴로 불리는 터널이 있어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근래에 폐쇄되고 현재는 고갯마루를 관통하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이어주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88번지방도가 지나간다. 도래기재는 서벽리 북서쪽 2km 거리에 있는 마을이름을 따와서 도래기재라고 한다. 도래기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역(驛)이 있었기에 역촌마을이라 하여 도역리(導驛里)라 부르다가 이것이 변음이 되어 현재는 도래기재로 통용되었다. 재 넘어 우구치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아서 우구치(牛口峙)라 불린다.
- 금정광산
금정광산은 백두대간 구룡산의 심장에 해당하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일대에 위치해 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50년 이상 금을 캐온 금정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구룡산 계곡 한쪽에 광미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그리고 여기에 어설픈 광해 방지 작업이 더해져 5년이 지난 2002년 여름 끝내 무너져내렸다. 태풍 루사에 의해 폐기물 더미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초기 복구를 담당한 산업자원부는 폐기물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아카시아를 심었지만,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부실하게 복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큰 비를 맞고 무너져 내린 중금속폐기물은 한강 상류에 해당하는 우구치리계곡을 비소, 구리, 수은 등 중금속으로 오염시켰다. 우구치리는 '창지개명(創地 改名)'된 명칭이다.
◆[550살 철쭉 자생지] - 2006년 기준
나이가 560살로 추정되는 최고령 철쭉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백두대간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을 잇는 해발 1085m의 도래기재와 옥돌봉 사이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수더분하게 서 있는 이 철쭉은 키 5m에 나무 둘레가 105㎝에 이른다.
2006년 국립수목원은 분포환경과 주변 철쭉의 나이테를 조사해 나이를 추정했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으려 나이테를 확인하거나 연륜측정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정확성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에는 2005년 8월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462호로 지정된 400살짜리 경남 가지산 철쭉이 가장 나이든 철쭉으로 인정받아 왔다. 산림청은 550살 철쭉과 철쭉 군락을 보호하기 위해 일대 33㏊(10만여평)를 보호수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옥돌봉] 玉石山 1222m
춘양 북서쪽 16km, 봉화 북쪽 14km 지점에 있다. 정상은 완만한 언덕의 봉우리를 이루나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특히 남쪽으로 뻗은 말단봉은 노암(露岩)의 대지를 나타내며, 남사면 일대는 수십 갈래의 깊은 계곡이 발달하여 아름답다. 옥석산은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북서쪽으로 흘러가는 남한강의 분수령이 된다.
특히 이 지역은 옛날 금강송의 주 산지였다고 한다.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군함들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시대에는 전략물자였음이 틀림없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 춘양에서 집하한 후 운송했다 해서 춘양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산림청에서 설치한 안내문에는 1980년대 까지도 그 귀한 금강송들이 제법 있었으나 솔잎혹파리로 인해 소나무 숲은 점점 쇠퇴하고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고 적고 있다.
- 토종 '금강 소나무'
예부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고 전해진 '금강소나무'는 토종의 대명사로,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면서부터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게 자라며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좁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무에 윤기가 나 한눈에 봐도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다른 소나무보다 몸통이 굵고 재질까지 단단해 최고의 목조 건축자재로 이름 높았다. 조선시대 이래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짜는데 주로 쓰여 왔다. 이런 까닭에 숭례문의 주요 뼈대 또한 금강소나무로 지어졌고, 숭례문 복원엔 수령 100년 이상에 지름 1m 안팎의 대형 금강소나무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북 북동부는 금강소나무가 가장 울창한 지역이다. 금강소나무의 금강은 금강산에 자라는 형이라 해 붙여진 이름. 금강산 일대에서 자라난 금강소나무는 태백산령을 따라 남하했고, 봉화·울진 등지의 비옥한 동해안 내륙지역에서 최우량 형질로 거듭 태어났다.
봉화 춘양면 서벽1리는 최고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춘양의 우수한 금강소나무들이 춘양역으로 모여 반출됐는데, 형질이 너무나도 좋아 '춘양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다. 현재 서벽리 문수산 자락에는 1천500여 그루의 금강소나무가 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남벌된 탓에 수령은 30~90년에 불과하지만 모든 금강소나무마다 페인트로 번호를 새겨 놓고 있다. 2001년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에서 반출되는 모든 금강소나무는 숭례문 복원 같은 문화재 보수와 재건용으로만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주국유림관리소가 금강소나무 숲을 제대로 느끼며 산책할 수 있게 1.5km의 탐방로를 조성, 곳곳에서 토종 소나무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박달령] 朴達嶺 1009m
선달산과 옥돌봉 중간지점에 위치한 박달령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 사연을 만들며 넘었을 박달령은 현재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고갯마루에는 산령각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 고사를 지내고 있다. 옛날에 부보상(負褓商)들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부보상에 의하여 발견된 약수가 오전약수라고 전해진다. 고갯마루에는 산령각과 함께 정자가 있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 박달의 뜻
배달(倍達)→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백산(白山)→백달(白達:밝달 .박달)→배달(倍達:ㄱ탈락)
배달은 백달의 음운변형이고,
박달은 백달의 모음변형이며,
백달은 백산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 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 우리는 백산(=배달)민족.곧 백두산 민족이다. (대종언어연구소=박대종)에서 옮김
- 배달
배달은 고대 한국을 가리키는 말로 倍達이라는 한자를 사용하기도 하나 순 우리말로 추측된다. 배달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朝鮮)·한(韓)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고대로부터 계속 이어졌다는 증거 또한 없다. 일제 강점기 무렵에는 주로 단군 또는 고조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이후 개념이 확대되어 한국, 특히 한민족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9년에 공개된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최초로 ‘배달’을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 즉 신시(神市)라고 주장한 이후 이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배달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규원사화》에서는 ‘박달(朴達)’ 또는 ‘백달(白達)’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檀’, 즉 박달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인식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규원사화》는 박달을 국가명으로 보지 않고 단군의 ‘단’을 의미하는 용어로만 사용되었다.
김교헌은 1914년 《신단실기(神檀實記)》에서 단군이 세운 국가, 즉 고조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조선을 단국(檀國)과 동일한 의미로 보았으며 배달이 단, 즉 박달의 어원이라고 보는 점은 《규원사화》와 동일하나 박달을 나무 이름이 아닌 고유 용어로 파악하였다.
최남선은 1918년 《계고차존(稽古劄存)》에서 역시 박달의 어원으로 보고 있으나 그 본래 의미는 ‘백산’이라는 지명이라 보았다.
안호상은 1964년 《배달의 종교와 철학과 역사》에서 박달·배달을 두고 ‘밝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한밝산’이라는 지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유립은 1979년 《환단고기》에서 ‘신시(神市)’를 가리켜 배달이라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배달을 두고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온 말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 용어의 연원은 일제 강점기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용어의 근거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신채호는 〈전후삼한고〉에서 배달의 말의 연원을 어윤적의 《동사연표(東史年表)》라고 들며 그 전래 과정을 통해 볼 때 믿기 어려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단군의 檀에 대해서도 壇을 사용하여 배달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 박달령 산령각
박달령 산령각은 선달산(先達山)과 옥돌봉(玉石山) 중간에 위치한 박달령 고갯마루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산령각은 노후되어 1994년도에 중수한 산령각이다. 매년 4월 초파일에 오전리 마을에서 박달령을 찾는 사람들의 안녕과 마을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자연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고사(告祀)를 지내고 있다. 산신(山神)에 대한 고사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공존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토속신앙이다. 특히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고갯마루에 세워진 산령각은 마을 어귀에 세워진 성황당(城隍堂)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사찰에 세워진 산신각(山神閣)과도 다른 의미의 성황당이 박달령 산령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박달고개를 넘나들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로서 통행의 안전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이웃의 행복을 위해 고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린 개방된 신앙공간이 박달령 산령각이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최근까지 가장 널리 제사지내던 신이다. 성황당은 중국의 성황(城隍)에서 유래하였다 하나 분명치 않으며 한국 고유의 민속신앙으로 보인다. 성황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로, 보통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갯마루, 한길 옆, 마을과 사찰 입구 등 전국 도처에서 발견되는 민간의 보편화된 신당(神堂)이다. 서낭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상이 없고 다만 현실생활의 문제로써 액, 질병, 재해, 호환(虎患) 등을 막아주는 마을수호의 관습에서 비롯된다.
지금도 고향마을에 더러 남아 있거나 없어진 마을이 많이 있는 성황당(城隍堂)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박달령 산령각도 성황당과 괘를 함께하는 측면이 많이 있다. 그 성황당이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은 수난을 당했다. 신앙을 떠나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의 공간이라는 긍정적인 면은 깡그리 무시되고 미신이라는 이름하에 많이도 때려 부셨던 메카시즘의 광풍이 몰려와 수많은 성황당이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던 시절이 있었다. 농촌부흥의 기치를 내건 새마을운동이었다.
◆[오전약수]
오전약수탕이 있는 마을은 예전에 쑥밭이란 뜻에 애전(艾田)으로 불리던 곳인데 이 쑥밭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이 물이 합수되는 지역이라 하천이 범람하여 항상 늪지대였기에 그런 뜻으로 수전(水田)이라 하였는데, 다른말로 쑤뱅이라 불리던 것이 쑥밭으로 변경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이곳 약수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한센병 환자들이 약수를 먹고 몸을 씻고 이 지역에 있는 쑥으로 피부에 뜸을 뜨고 달여 먹고 하여 병을 고쳤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쑥밭이라 불리 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전 약수터는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봇짐장수(褓負商) 곽개천이라는 사람이 서벽장을 보고 주실령을 넘어 후평장으로 가던 어느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이르기를 "네 옆에 만병을 통치할 수 있는 약수가 있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옆을 보니 과연 약물이 솟고 있었다. 조선 제9대 성종(1469 ~ 1494)때 발견된 이 약수는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이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주요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마그네슘이온, 염소, 중탄산, 칼슘이온, 철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편, 오전약수탕 주변 등산로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최근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고 맥반석 찜질방이 있어 약수샤워도 즐길 수 있다.
* 주실령 -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곳까지 물이 차 있어 배가 다니던 고개라 하여 배 '주(舟)' 자를 써서 주실령이라고 부른다고 하나 확실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자료출처 : 아름다운소통(협), 백두대간학교, 국리공원관리공단, 한민족문화백과 등
☛ 옥돌봉 산행 지도Ⓒ아름다운소통 이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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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순간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