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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1일 주일
[(자) 대림 제1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는 대대로 약속을 잊지 않으시어 온갖 죄악에 짓눌린 인류가 얼굴을 들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가득 차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우리 주님,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립시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과 그때에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3,14-16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3,12―4,2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일상에서 기도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분명합니다. 신앙생활이 갈수록 버겁게 느껴지고 짐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전혀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1테살 3,13).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 삶에서 기도가 사라져 버렸고, 고해성사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미사 시간도,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삶을 살았다면,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어떻게 느껴질까요? 우리 구원을 위한 속량이 이루어지는 희망 속에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하느님과 맺은 관계가 무너졌다면 기도하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여전히 나를 떠나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우리 삶이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가 시작됩니다. 기도하는 삶과 함께 그분을 우리 구원자로 맞이할 수 있는 영적 힘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비행기를 타면서 가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포트워스 신부님과 하와이엘 갈 때입니다. 전날 확인했을 때는 터미널 A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럴 줄 알고 터미널 A로 갔습니다. 게이트는 39번이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전화했습니다. 게이트 39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도 39번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부님이 없었습니다. 다시 전화해서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터미널 D에 있었습니다. 게이트는 같은 39번이지만 터미널이 달랐습니다. 알아보니 아침에 터미널이 변경되었습니다. 저는 터미널 D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터미널 D로 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전화 통화를 해서 다행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제가 아는 주교님은 게이트가 바뀐 걸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내 영혼이 평안하지 않나이다.” 깨어 있어야 하는 데는 주교님도,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예외가 없습니다.
같은 지구지만 우리는 ‘시차’가 있습니다. 서울은 이곳 달라스보다 15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뉴욕은 이곳 달라스보다 1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1달 정도 먼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12월 25일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4주간의 대림 시기를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12월 1일이고, 대림 제1주일입니다. 교회는 대림 제1주일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1달 먼저 새해를 시작했으니 더 감사하며, 더 기뻐하며, 더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목 지침을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사목 지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본당 사목 지침
1.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 사랑과 배려가 공존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구성원은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며, 상호 간의 관심과 배려를 나눕니다. 소그룹 모임, 친목 모임, 그룹 공동 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과 유대감을 증진하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2. 다양한 교육 및 활동, 교회는 다양한 연령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교육 및 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의 영적 성장과 친교를 나누며, 공동체 내에서의 상호 지원과 협력을 도모합니다. 구역모임, 성경 공부, 기도 모임, 성가대 활동, 봉사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를 도우며 신앙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세대 모임을 활성화 하도록 합니다. 소그룹과 단체에 가입해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순교 정신과 사회봉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본보기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손을 잡아 봉사하는 문화를 정착시킵니다. 지역사회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 활동, 재난 구호 봉사, 장애인 센터 방문 등을 통해 교회는 순교 정신과 사랑의 행동을 실천합니다.
4. 미사와 기도의 중요성 강조, 미사와 기도는 교회 생활의 핵심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꾸준한 미사 참례와 개인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영적인 성장을 이룹니다. 온라인 미사, 주일 미사, 평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교회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를 통해 영적으로 충전됩니다.
5. 본당 설립 50주년 준비 위원회 발족, 2027년은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5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준비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이런 사목 지침을 통해 달라스 성 김대건 성당은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나누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교회로 거듭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와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기다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오시는 분을
맞이하는
설레는 기다림
오시는 분을
믿는
오롯한 기다림
오시는 분을
바라는
애틋한 기다림
오시는 분을
사랑하는
따뜻한 기다림
오시는 분을
닮아가는
살가운 기다림
오시는 분께
나아가는
벅찬 기다림
오시는 분께서
기다리시는
우리의 기다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이자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대림 시기를 보내면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잘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사실 성탄시기가 가까이 오면, 우리나라에서는 마음의 준비보다 겉치레 장식이 성행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곧 자본주의의 상업적인 측면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호객행위로서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상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하는 만큼이나 우리 신앙인들이 성탄을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화려한 장식보다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대림 제1주일 복음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그리고 ‘늘 깨어 기도하여라’ 하신 말씀은 역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 곧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열심히 강의를 하시는 데 학생이 매번 말씀을 듣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학생에게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어느 누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스마트폰을 마냥 들여다보고 있다면 역시 서로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그 관계마저도 소원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적으로도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데에 있어서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에게 주님의 성탄은 그저 또 하나의 연말 행사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제대 앞을 보시면 총 네개의 대림초가 있습니다. 오늘 대림 제1주일은 4개 중 가장 색이 어두운 초에 먼저 불을 밝혔습니다. 성탄의 시간이 다가 올수록 촛불을 하나씩 켜나가게 되고 대림 4주일에는 총 4개의 촛불을 모두 밝히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대림초를 켜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곧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그렇게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도 역시 마음의 촛불을 밝혀가며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자면, 먼저 촛불은 자신이 점점 타들어 가면서 빛을 냅니다. 곧 그것은 희생과 나눔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희생과 나눔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우리의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희생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촛불은 환하게 빛을 밝히며 어두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어느 누가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나의 촛불은 그 어두움을 없애고 편안함과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 곧 우리도 역시 촛불의 모습처럼 나와 더불어 주변의 어두움을 밝혀나가는 삶을 이루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촛불은 따뜻함을 전해줍니다. 그처럼 우리도 내 삶의 주변에 차갑게 얼어버린 이웃들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사랑의 열기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대림초의 초를 하나하나 켜 나가듯이 내 마음의 촛불을 하나하나 켜 나갔을 때 그러한 우리의 마음에 주님께서 다가오시며 거룩한 성탄을 이루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에드문도 캠피언(Edmund Campion)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영국(UK)
활동연도 : 1540-1581년
같은이름 : 에드먼드, 에드몬드, 에드문두스, 에드문드, 켐피온
런던의 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 또는 에드문도)는 가톨릭 신자로 성장하여, 불과 15세의 나이에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대학을 다녔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그 당시의 석학이던 레스터(Leicester)의 얼(Earl),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심지어는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까지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영국 교회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수장령에 맹세하고, 1564년에 영국 교회의 부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증대되는 사실에 의혹을 품고, 1569년에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공부한 후에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가톨릭으로 되돌아 왔다.
교황 비오 5세(Pius V)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단죄함으로써 영국 내의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때, 그는 프랑스의 두에(Douai)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예수회원이 되어 보헤미아(Bohemia)의 브르노(Brno)로 갔다. 그는 프라하(Prague)에서 대학 강단에 섰으며, 1578년에는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와 로버트 퍼슨(Robert Persons) 신부가 영국 선교사로 가는 첫 번째 예수회원이 되어 1580년 영국으로 떠났다.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그의 활동, 옥스퍼드의 대학 성당에서 행한 그의 연설 ‘데쳄 라시오네스’(Decem Rationes), 그리고 유명한 브라그(Brag)의 간행은 그로 하여금 영국사에 한 획을 긋게 하였다.
그는 옥스퍼드 근교 리포드(Lyford)에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자신의 변호를 거부한 채 심한 고문을 받다가 1581년 12월 1일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진정한 사제였던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그래서 10월 25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성 엘리지오 (Eligius)
활동년도 : 588-660년
신분 : 주교
지역 : 누아용(Noyon)
같은 이름 : 엘로이, 엘리기오, 엘리기우스, 엘리지우스
엘로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로만-갈로가의 아들로서 골의 샵텔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에우체리오는 금속 세공인이었기 때문에, 그당시 유명한 금 세공인인 압보에게 아들을 보내어 공부를 하도록 안배하였다.
압보는 리모쥬의 조폐국 책임자였다.
그가 도제 수업을 마친 뒤에는 궁중 재무관 봅보 수하에서 일을 하다가 국왕 클로테르 1세의 조폐국 책임자가 되었다.
엘리지오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는 한편, 국왕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엘리지오의 신심과 끊임없는 설득에 의하여 국왕은 가난한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수많은 노예들의 보석금을 대납하였고, 또 여러 교회를 세웠다.
또 632년에 그는 솔리냑에 수도원을 세웠고, 클로테르의 아들 도고베르트 1세의 도움으로 파리에 수도원까지 세우는 등 참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였다.
이리하여 국왕은 그를 자신의 주요 고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또 엘리지오는 브리톤으로 가는 외교사절이 되어 활약한 결과, 브리톤 국왕을 설득하여 프랑크 왕의 권위를 인정하게끔 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 그는 640년에 서품되어 노이용의 주교가 되었다가 뚜르네의 주교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플란데르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주에 안터워프 지역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금속 세공인, 금 세공인의 수호성인이다
성녀 나탈리아 (Natalia)
활동년도 : +304년경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니코메디아(Nicomedia)
같은 이름 : 나딸리아
소아시아 니코메디아의 궁중 관리였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9월 8일)는 일단의 신자 무리들의 인내심과 열렬한 믿음에 감동하여, 비록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는 즉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아내인 성녀 나탈리아는 옥중의 남편을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방문객의 면담이 금지되자, 아내는 소년 복장으로 위장하고 관리들을 매수하여 남편의 온갖 고통을 위로하고 신심을 굳게 해 주었다. 그가 죽는 현장에 아내도 참석하여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였다. 그의 축일은 순교한 날인 3월 4일에 지내기도 하나, 로마 전례에서는 그의 유해가 로마(Roma)로 이장된 9월 8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한편 성녀 나탈리아는 자신과 강제로 결혼하려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궁중 관리의 손아귀를 벗어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피신하여 여생을 지냈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군인들과 푸주한의 수호성인이다
성 안사노 (Ansanus)
활동년도 : +304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시에나(Siena)
같은 이름 : 안사누스, 안싸노, 안싸누스
로마(Roma) 태생인 성 안사누스(또는 안사노)는 시에나의 사도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2세 때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포기하라는 강요와 심지어 당국에 고발까지 하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벗어나 토스카나(Toscana)로 가는 길에 타오르는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특히 그는 시에나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기 때문에 ‘세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투옥된 성 안사누스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참수되어 머리는 성곽 밖으로 내버려졌다고 전해 온다. 1170년에 그의 유해가 대성당에 모셔졌고 때때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복자 샤를 드 푸코 (Charles de Foucauld)
활동년도 : 1858-1916년
신분 : 신부, 은수자
지역 :
같은 이름 : 가롤로,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샤를르,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푸꼬
복자 샤를 외젠 드 푸코(Charles Eugene de Foucauld, 또는 샤를 드 푸코)는 1858년 9월 1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불행히도 여섯 살이 되던 1864년 부모를 차례로 잃고 고아가 되어 외조부인 드 모를레(De Morlet)에게 맡겨졌다. 여기서 그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촌 누이 마리(Marie)를 만났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와 예수회가 운영하는 낭시(Nancy)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학업에 성실치 않아 성적이 부진했고 또 엄격한 규율 생활을 싫어해 기숙사를 도망쳐 나왔다. 그는 퇴학과 함께 신앙마저 잃고 16세 이후부터 세속적인 쾌락과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1876년 육군 사관학교와 1878년 기병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한 그는 로렌(Lorraine) 지방과 알제리 북동부 지역에서 복무하였다. 하지만 방탕하고 멋대로 행동하던 그는 1881년 계급을 박탈당했다가 다시 회복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군대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닫고 제대한 후,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 탐험을 시작하였다. 그는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Alger)에서 1년간 그 지방 언어와 관습을 배운 뒤 사막에서 유대인 랍비의 시종으로 가장하고 2년 동안 생활하였다.
탐험 생활 중 사막의 광활함에서 느낀 고독과 그 안에서 알라 신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가는 무슬림의 순박하고 투철한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1886년 10월 사촌누이로부터 소개받은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의 앙리 위블랭(Henri Hublin) 아빠스와의 영적 대화를 통해 고해성사를 보고 교회와 화해하면서 성체를 모셨다.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인 푸코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도와 금욕의 삶을 시작했고, 위블랭의 지도를 받으며 봉쇄생활을 하던 중 은수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다.
그는 1890년 성지순례를 하던 중 나자렛에서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하여 마리 알베릭(Marie-Alberic)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곧 시리아에 있는 아크베(Akbes)의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으로 옮겨 그곳의 허름한 거처에서 1896년까지 지냈다. 1892년 수도서약 후 절대적인 청빈과 자기희생, 절제와 고독을 추구하던 그는 1896년 알제리의 스트라우엘리(Straoueli) 수도원을 옮겼다. 늘 더 큰 고독과 기도와 절제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트라피스트회를 떠나 1897년 팔레스티나의 나자렛으로 가서 클라라회 수녀원의 문지기로 살며 1900년까지 밤낮으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의 생활은 가장 비천한 노동, 경건한 독서, 성경 공부, 기도로 이어졌다. 나자렛에서 스승 예수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자신의 성소를 확인한 푸코는 1900년 파리(Paris)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사제품을 준비한 후 1901년 6월 6일 비비에르(Viviers)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품을 받은 푸코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모로코에 이끌려 모로코와 알제리 국경 근처 베니 수도원(Beni-Abbes)의 은수처로 들어갔다. 그는 사막의 무슬림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그 방법은 설교가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관상과 사랑의 삶을 통해서 자신 스스로 ‘보편적인 형제’인 하느님의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과정은 후에 선교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예수 성심의 형제회’(La Fratermite du Sacre-Coeur de Jesus)라고 이름 붙인 은수처에서 늘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오랜 시간 동안 조배를 했다. 1905년 그는 사하라 사막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알제리 남부의 도시인 타만라세트(Tamanrasset) 근처 아하가르(Ahaggar, Hoggar) 산에 은수처를 마련한 후, 그곳에서 11년 동안 생활하면서 선교사들이 올 때를 대비하였다. 그는 투아레그족(Tuareg)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그들의 관습과 언어에 대해 배웠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섬기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푸코 신부는 유럽으로 돌아가 군종신부나 위생병으로 참여할 것을 생각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무임을 깨달아 아프리카에 남았다. 그러나 그는 1916년 프랑스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 여파로 12월 1일 타만라세트에서 사누시파(Sanusiyah) 무슬림들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푸코 신부가 사막에서 죽은 후 그의 영적인 영향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는 사막에서의 고적한 삶을 통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을 깨닫는 행복을 누렸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비그리스도교 대중 안으로 파고들어 간 선구자였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사막의 은수자’, ‘사하라의 사도’라고도 한다. 그의 좌우명은 ‘예수 사랑’(Jesus Caritas)이란 두 단어였다.
그는 생전에 제자를 두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향으로 ‘예수의 작은 형제회’(Little Brothers of Jesus, 1933년)와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Little Sisters of Jesus, 1939년)가 설립되었다. 이들에 의해 푸코 신부가 행한 새로운 형식의 관상 기도가 널리 알려졌다. 그것은 세속에 살며 실천하는 관상생활로 침묵 중에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나누고 복음의 가르침을 증거하는 사도직이다. 그래서 그들은 빈민 지역이나 공장이라는 ‘사막’으로 가서 덕과 관상 기도의 모범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주고 있다. 샤를 드 푸코 신부는 2005년 11월 13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