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부동산 경매시장에서 서울 도심ㆍ강남권 등 요지에 있는 감정가 100억원 이상의 대형 물건이 많이 나온다.
알짜지역에서 이런 규모의 부동산이 경매에 부쳐지는 것은 드문 일로, 이는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법원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에 입찰에 부쳐졌거나 예정된 감정가 100억원 이상 경매 물건은 총 183건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118건에 비해 54% 늘었다.
이 중 도심권(중구ㆍ종로구)은 100억원 이상 물건이 지난 한해 동안 단 한건도 없다가 올 들어서만 5건이 나왔다. 강남권(강남ㆍ서초구)은 올 상반기에 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건)보다 1건 늘었다.
이달 2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경매 7계에서는 도심과 강남지역의 100억원 이상 건물과 토지 4건이 동시에 입찰한다. 중구 명동1가에는 외환은행 본점 뒤편에 감정가 304억원 규모의 지하 10층∼지상 15층 빌딩이 경매에 나왔다. 지난달 19일 한 번 유찰돼 243억2000만원선에 재입찰한다.
중구 을지로 2가에 4층 건물을 포함한 대지 841평짜리 건물이 입찰에 부쳐진다. 4월 14일 첫 입찰 후 두 번 유찰돼 감정가 약 488억4000만원짜리가 312억6000여만원으로 떨어졌다.
강남에서는 청담동 보텍㈜ 소유의 사옥이 첫 경매에 부쳐진다. 건물 안에 웨딩홀을 갖춘 빌딩으로 감정가가 101억9700여만원이다.
삼안실업이 소유하고 있던 강남구 세곡동 그린벨트 땅도 같은 날 첫 입찰한다. 14만6095평, 137필지의 대규모로 국민임대단지 예정지의 일부다. 감정가는 429억8900여만원이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강남권의 인기 그린벨트 대규모 토지가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종전까지 100억원 이상 대형 물건은 드물었는데 올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형 경매물건 수가 불어난 것은 경기침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전국적으로 지난해 100억원 이상 물건 입찰건수는 월 평균 10∼25건 안팎이었으나 올 3월부터 30건을 넘어섰고, 이달에는 40개에 이른다.
최근 경매를 신청해 입찰할 때까지 5∼6개월이 걸리므로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기업체와 부유층 자영업자의 체감경기가 크게 나빠진 것으로 해석된다.
소형 연립ㆍ다세대 등 경기에 가장 민감한 서민형 주택 경매물건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부터 늘어 10월∼12월에 11만여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 4∼5월에는 9000여건으로 소폭 줄어들었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경기와 경매의 사이클을 비교해보면 불황 초기에는 서민들의 연립ㆍ다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중기에는 자영업자들의 상가, 후기에는 기업과 부유층 소유의 수익형 건물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지금은 경기 침체 후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 5% 경제성장을 사실상 포기할 정도로 실물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기업체들의 경기 체감 지수를 가늠할 수 있는 도심과 강남 테헤란로 오피스 시장도 입주업체들이 영업부진으로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포시즌컨설팅 정성진 사장은“경매시장이 실물경기에 6개월 가량 후행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 연말∼내년 상반기까지 대형 경매 물건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5.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