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미술”
-상충(相衝)과 동거(同居), 정형과 비정형
/ 장윤우(시인, 양천미협 고문)
1)
...... 문학의 땅을 밟고 걸어온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나 정작 문학의 얼굴을 그리는 데는 망설임의 키를 높힌다 때로 말의 허망을 느끼기도 했고 또 언어의 현란한 날개짓에 가슴을 울렁거리는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이는 문학의 좌표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의 무한궤도의 천착(穿鑿)과 삶과의 상관이 다름이 아니고 하나의 줄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기란 햇수로 정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문학의 땅은 숲을 헤쳐가는 허방의 깊이에서 허우적임이었고 시의 심연에 이르기 위한 발길은 항상 우둔함으로 머리카락을 날리우고, 수필을 바라보는 눈은 안개의 와중을 떠돌아야했고, 소설의 체취에서 지질리는- 이런 노릇이 되는 세월을 약속처럼 걷고 있는 일에 아픔을 느낄지라도 스스로의 형극(荊棘)에 자부심의 물을 주고 싶다.
이는 훗날에 실낱같은 이정표의 손짓이라도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앞세우는 이유를 위해서이다. *허정당에서 채수영 4331년 6월 인용.
흔히 “시는 죽었다”라고 말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국의 어느 고교에 새로 부임한 주인공(로빈 윌리암스)교사가 침체된 사회에 혁명을 일으킨다라든가 무절제한 언어의 횡포가 출구가 막힌 현대문명에서 막힌 벽(壁)을 뚫을 힘도 의욕도 없기에 이른 주장과 같다. 작가도 독자도 비젼이 없다,
지난 세기말(世紀末)의 혼돈과 좌절가운데서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지식인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 즉 인간(人間)구원(救援)은 오로지 문학 특히 시(詩)뿐이라고도 말하고 있었다.
실상 시문학은 모든 예술활동의 일환(一環)이며 그 역사는 매우 오래이다, 예술(Art)은 문학(Literature), 미술(Fine Art), 서예, 건축, 사진, 음악(Music), 무대연극, 영화에서 현대에 와서는 분류가 더욱 다양화되며 앞으로는 어떻게 확산되여갈런지 확산과 소멸 잠복등 예측이 불허하다. 예술의 본질(本質Originality)은 원래 하나였기때문이다
즉 문자로 표현하면 문학. 음률(Rythum)로 표현하면 음악(Music), 색채(Color)로 표현하면 회화(Painting), 물질(Mass)에 의탁하면 조형(Sculpture), 몸(Body)을 던지면 연극, 시극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쉽게 쓸 수 있을까 좋은 시란 어떤걸까, 마찬가지로 후세에 남는 불세출(不世出)의 조형,미술작품들을 만들어 남길 수 있을까.
1965년 6,25전쟁이후의 사회혼란 1960년전후에서 저의 문단 등단, 활동시기이기도한 70년이나 지나가 격세지감인 오늘의 변모를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나마 살펴볼까한다.
타의에 의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철저한 파괴와 정신의 황폐(荒廢)로 방황하던 중,고등학생시절의 유일한 <꿈>은 장래 훌륭한 문학가가 되는 거였다. 힘들고 여의치 못한 사회에서 나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허나 막바지에 문학의 길은 포기하였다
“춥고 배고픈 데 문학이 뭐냐” 대신에 조금 형편이 날 것이다는 <미술> 그것도 응용미술(Applied Art)의 방향으로 진학하기에 이르러 준비도 없이 서둘러서 서울대 응용미술미술과로 진학(1956,3)하면서 언젠가는 기필코 이루어내겠다는 문학과 미술의 상통(相通) 그 시발이어서다,
배를 주리며 가까운 문우(文友)들과 주로 명동거리의 청동, 갈채다방과 은성대포집등 뒤골목 선술집 까페 설파(조동식주인)이 무대였다. 문학잡지도 현대문학, 사상계, 문학예술, 신태양, 일간신문 문화면등이 고작이며 2016년대를 넘기는 문학지와 동인활동,전국시도 문예단체,문화회관 행사등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일본에서 오는 월간 <미술수첩>,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자료, 소재에 의탁할 따름이였다,
2)
“<시와 미술>은 일체이다 시의 선(線)과 미(美)의 선은 같고 일체가 되었을 때 힘(생명)을 갖는다” “주택은 살기위한 기계이다”라고 UN총회건물등을 설계한 프랑스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콜브지에(Le Corusier)가 말했다
다시말해서 표현방법과 재료에 따라서 분류가 되기에 본질이 하나인 것이다.
문학이 인접예술(미술)에 미친 영향이라면?
문학과 미술의 동반(同伴)은 오랜 전통과 인연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는 절세(絶世)의 명시<적벽부>로서 우리에게도 알려져 있는 대가이입니다. 그는 시중화 화중시(詩中畵 畵中詩)라하여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문학과 서예와 미술의 일체를 내세웠던 것이다며. 우리 옛 과거시험에 시제(詩題)로도 자주 등장하였다. 시서화(詩書畵) 일체사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이율곡, 강희안, 김시습, 이항복, 박지원, 허균, 박제가, 남구만, 다산 정약용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시문,서화객이 많았다.
3)
<예술>은 그 본질(本質 Originality)이 무엇인가,
하나에서 비롯되었는데 표현 양식에 따라서 미술,문학,음악,연예,영상(映像)등 다양한 시간예술, 시공간예술,공간(조형)예술등으로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 미술의 두길을 함께 걸어간 서양의 작가면모를 보려한다,
불휴의 명작 <노트르담의 꼽추>, <레미제라불>의 작가 빅톨 유우고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문호이나 소설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대화가였읍니다. 일국의 재상(宰相)으로 정치가였다. 화가로서 명성을 날리지 못한 것은 그의 문학작품들이 워낙 유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상징파 시인 보드렐르 또한 그가 대시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들 유명한 화가로 되였을 것이라는 호평을 받을만큼 회화에도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독일 작가, 정치가 볼프강 괴에테도 <시와 진실>에서 밝힌 것처럼 회화에 능한 미술예찬자였고 유화, 판화, 벽화에서 수채화, 소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남들의 공연한 잡담과 입담(口舌)을 혐오하며 그런 시간에 차라리 그림을 그려왔다. 본인도 독일을 방문하였을 무렵, 푸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그의 생가를 찾아서 기념관이 된 집안에 그가 그려놓은 숱한 작품들을 확인하며 솜씨와 재능에 혀를 내둘렀다, 정치가로서 일가를 이룬 작가였다, <전쟁과 평화>, <카츄사>등의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도 그림의 대가였고, 죠르쥬 상드, 알프렛 뮤세, 메리메, 헤르만 헷세, 장 곸토오, R.L. 스티븐슨, M.G 웰스, A.푸쉬킨, P.로티, R.키플링, A.랭보, 마크 트웨인, 에드가 알란 포오, 고골, <차타레이부인의 사랑>을 쓴 D.H.로오렌스, <테스>의 토마스 하디, V.마야고프스키, E.T.A. 호프만 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며 여한(餘恨)없는 인생을 살고 갔다.
그만큼 미술과 문학은 가까웠고 넘나들면서 서로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 섬머셋 모엄의 작품집 <달과 6펜스>는 타이티에 가서 만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린 화가 폴 고갱의 일생을 그려낸 것이며 영화제 명칭으로 알려진 영국의 극작가 탐미파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일찍 1882년에 기계의 미(美)를 예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기계는 장식이 없어도 아름답다. 오히려 장식하면 안된다. 좋은 기계는 모두 아름답고 또 힘의 선(線)과 미(美)의 선은 하나이다."
즉 아름다움의 개념(Concept) 확대입니다. 19세기말, 전쟁의 여파(餘波)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던 유럽의 숱한 문인,화가들이 파리에 모여 어울려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유파를 형성하였다. 세계대전의 혼란 渦中(와중)에서 내일이 없는 세기말(世紀末)적 사상이고 표현이었어도 많은 교훈을 오늘에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돌아가신 조병화시인과 시조시인 김상옥, 이상범, 서양화가 이종학, 조각가 홍성문, 유종민, 황지우, 동양화가 선학균, 故우희춘, 정성태, 평론가 김우종, 도예가 정담순, 김병억, 소설가 이제하, 시인 성춘복, 고(故),김영태와, 본인도 문학과 미술인으로서 두 몫을 거들어 왔으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서로 서로 장르를 초월한 공유의 광장에서 교류가 매우 잦다. 굳이 시인 화가라는 단절적 명칭에 구애(拘碍)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얼마전 서울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에서 갖은 <1회 전국시화공모대전>은 서울시에서 내준 유일한 사단법인체로서 본인도 고문으로서 참여한 오래동안 염원했던 합일행사였다 2020년은 유례없는 {코로나19}유행병으로 전세계가 곤욕속에서 사상자가 끝도 없고 아직은 항체를 찾아내는 퇴치약도 없는 터이다,
융합(融合),이벤트, 설치작가, 일러스레이터라는 명칭도 사용하며 저와 미술대 입학동기인 이우환(83.재일화가)은 원래 “선(線)으로부터”라는 미술이론가로 선과 점에서 시작되여 어려웠던 일본 밀항시절을 지나고 현재 돌에 미학개념을 도입하여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설치작가로 엄존(儼存)하다. 2016년도 노벨문학상에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선정된 논란이 뜨겁지만 시대가 장르를 초월시키고 있다는 증거이다.
4)
예술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인류역사 이전(Pri-historic Age)에서 비롯된다. 도구인(Homo Fabel) 지성인(Homo Sapiens),종교인(Homo Relegious)시대의 변천과 흐름속에 언어와 문자가 생겨났으며 그때까지의 예술은 문자가 배제된 시각 언어이며 조형언어와 시공간예술행위였을 뿐이였다. 문자가 없는 나라는 생존할 수가 없다. 역사속에서 살아진 나라, 미개발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는 국가들을 보고 있다, 비록 유일한 분단의 아픔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가고 있어도 전세계가 주목하는 KOREA이다,
허나 문자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그렇게 완벽하지마는 않다는게 역사적 현상이었기도 하다. 스페인어권, 영어권, 한자어권역(漢字語圈域), 아랍어권, 한글권,등 자신들끼리는 상통하여도 다른 언어권에서는 불통한다. 통역이 필요하거나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따른다. 국제공통언어, 시각언어, 조형언어인 미술은 경우가 다르다. 어찌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더 직설적이고 현대인의 피부에 와닿는 이심전심(以心傳心) 행위일런지도 모른다.
한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비록 “문자“라는 매체를 이용하거나 ”Colour"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예술(Art)을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 나아가 환경예술(Environmental Art), 4D예술, AI등으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 언어, 물질(Stuff)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숭문천기(崇文賤技)”라 하여 예술을 사대부(士大夫)들의 여기(餘技)정도로 멸시하였다. 훌륭한 솜씨의 작가를 <장인(匠人)>이 아닌 “쟁이(丈人)”로 비천하게 대함으로서 예인(藝人)을 존중한 일본과 달리 조선조 쇄국(鎖國)고집으로 우리문화의 퇴보를 가져 왔던 것이다.
요즘 고미술품 위작과 허위감정 파동, 작고화가는 물론 버젓하게 생존한 미술인들의 모작(模作)과 싸구려유통이 인사동, 삼각지일대를 휩쓴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김환기, 변시지, 이른바 미의 사제들 작품들이 타켓이 되어 계속 퍼져가고 있다. 무려 2830여점의 이중섭 작품이 위작(僞作)이라는 검찰의 결과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도대체 먹을거리가 없고 그릴 용지가 없어서 담배갑 은(銀)지껍질까지 사용한 이중섭화백에 일본인 처와 아들들에 대하여는 생존에 친교가 깊은 구상시인이 잘 알고 우리에게 얘기를 하여주었다. 그런데 엄청난 양(量)의 그림을 언제 그려놓았단 말인가 일본에 두고온 처자를 그리며 서대문 적십자병원 안에서 굶다싶히 불쌍한 인생을 마감한 산 증인이셨었는데. 망우동 공원묘지를 문인단체에서 함께 순방하면서 그옆에 방치된 박인환묘소를 보면서도 가슴이 에여졌었다,
오늘 어찌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문자가 필요없는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이입(移入)행위일런지도 모른다.
요즘 인사동 미술계는 매기(買氣)는 전혀 없는데도 자기들끼리 끼여 주고, 사고 팔고 돌리며 고무풍선처럼 값을 올리고도 있다. 언론을 타고있는 옥션이나 화가,예술인들은 좀 다르다, 미술계가 요지경이니 매스컴이나 호사가(好事家)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가수 조영남은 화투장소재 장난질로 큰 돈을 쥐였다는데 한점에 수억원으로 팔아치우면서도 그것조차 자신이 그리질 않고 가난한 서양화가에게 1점당 겨우 10만원을 주며 수십점을 그리게 하다가 들통나서 아직도 재판 계류중이다. 그의 말대로 “화툿장가지고 놀이하다가 쫄딱 망했다”는데 분노가 더 치오른다고 말한다, 문단에도 표절이 이뤄져온다,
직설적이며 직선의 서양적 직유(直喩Sysephor)와 동양적 곡선의 은유(隱喩Metaphor)는 지정학적,사상적으로도 달리 걸어왔다,
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록 “문자“라는 매체를 이용한거나 ”Colour"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입니다. 예술(Art)을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언어, 물질(Stuff)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다. 어쩌면 언어가 거추장스럽고 직설적인 행위 이벤트(Event)가 성행하고 낡고 해묵은 도덕은 거추장스럽죠. 젊은 세대들은 그들만의 기호와 기법으로 모든 예술의 장르를 잠식(蠶食)해간다,
저는 대학에서 미술,미학을 배우고 60여년을 대학 미술교육에 종사해왔다, 시작(詩作)을 감성적인 시작(試作)으로 마무리하며 살아왔다, 서울은 물론 지방과 해외(일본, 미국교환교수, 우즈벡등지)로 동분서주하였다, 오래동안 연구 발표해온 상충(相衝)과 동거(同居), 정형과 비정형, 현실과 비현실의 한자락 요약이라고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