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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북이스라엘
연합군 때문에 나라가 끝날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 옆에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세워 두십니다.
이는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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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암시입니다.
나라가 큰 징계를 받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완전히 끊어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하스에게 주는 두 번째 메시지
이 이름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합니다.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많은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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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도 포함합니다.
만약 모두가 안전하다면 굳이 "남은 자"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스알야숩의 이름은
소망의 메시지
심판의 경고
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왜 하필 아이를 데려왔을까?
아하스는 왕입니다.
그는 군사력과 외교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군이나 대신이 아니라 한 어린아이를 그의 앞에 세우십니다.
이는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네가 보는 것은 연합군이지만, 내가 보는 것은 남은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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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 6장과 연결해서 보면
흥미롭게도 이사야는 바로 앞장인 이사야 6장에서 유다의 완고함과 심판을 예언받았습니다.
그때 이사야가 묻습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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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라가 황폐해질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마지막에
"그루터기"
"거룩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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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알야숩은 바로 그 약속의 살아 있는 표지판입니다.
즉,
이사야 6장의 "남은 자 사상"
이사야 7장의 "스알야숩"
은 서로 연결됩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아하스는 눈앞의 적군만 보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의 곁에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세워 두셨습니다. 그래서 스알야숩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설교가 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는 훗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사야서의 중요한 주제인 "남은 자(Remnant)" 신학의 첫 등장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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