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시69:23 ;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허리가 계속 떨리게 하소서.
오늘 말씀은 의인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구하는 다윗의 탄식입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삶의 중심이자 힘의 근원인 허리가 떨려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맞이할 궁극적인 비극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선지자적 탄식에 머물지 않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향해 이 저주를 되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영적 어둠 속에 갇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무리를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소경이 되어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죄의 무게에 눌려 허리가 떨리는 절망 속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심판의 잔을 몸소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가려진 우리의 영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은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떨리던 우리의 허리를 진리의 띠로 동여매 주셨고(엡 6:14), 비틀거리던 삶의 자리에 구원의 담대함과 평안을 더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공의의 심판을 은혜로 바꾸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합니다.
여전히 어둠과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세상 속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영의 눈을 뜬 우리는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며 담대히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의 주님, 영적인 어둠 속에 눈이 가리우고 죄의 무게로 떨리던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마땅히 보아야 할 진리의 빛을 보게 하시고,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우리의 허리를 주님의 진리로 굳건히 동여매 주소서.
절망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를 대신해 심판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담대함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국가 빚이 얼마든 쓰고보자는 좌파 정부
정부 국가 채무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초과 세수와 잉여금은 나랏빚을 우선 상환하여 재정 체질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것이 국가 재정 관리의 기본 원칙이다.
누적된 채무를 갚아 이자 부담을 줄이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보다, 내년도 잉여금까지 162조라는 대규모 기금을 신설하여 지출로 직행시키는 것은 단기적인 선심성 정책에 치우친 발상이다.
나라를 망치고 미래세대를 빚쟁이로 만드는 행위이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면서 정작 미래 세대에게 빚을 넘겨주는 것은 본질을 위반한 재정 운용이다.
일반회계 예산과 달리 기금 형태는 집행의 재량권이 커 국회의 엄격한 심의와 통제를 회피하기 용이하다.
정부가 자금을 임의로 운용할 여지를 남기는 구조는 예산의 투명성과 재정 규율을 약화시킨다.
이재명은 "재정이 부족하다고 일을 안 하면 무능하다"라는 명분 아래 선심성 현금 지원이나 지출 확대로 자금을 뿌리는 행태는 단기 정치적 인기를 노린 포퓰리즘적 접근에 불과하다.
진정한 재정 관리 능력은 한정된 재원을 엄격히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데 있으며, 무분별한 지출 확대로 재정 위기를 야기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재정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국가반역 행위이다.
국가 재정은 정치적 인기나 정부의 자율적 지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신인도와 미래 세대의 생존이 걸린 버팀목이어야 한다.
세수가 확보된 시점이야말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적기임에도 이를 지출 명목으로 소비하는 발상은 제고되어야 한다.
🤩빚더미 나라를 물려줄것인가 VS 아닌가 - https://youtube.com/shorts/Jpb3cEBqrjQ?si=xyNAdfOqmBsF4lYD
# 정다훈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