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은 밥상에도 찾아온다. 신선한 봄나물 향과 싱싱한 푸른 잎이 입맛을 돋운다. 제철음식으로 건강한 봄맞이에 나서보자.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땅과 바다가 봄 밥상에 올랐다. 해풍 맞고 자라는 남해 쑥과 남해안에서 잡히는 도다리. ‘쑥떡’과 ‘도다리쑥국’으로 입맛 당기는 봄맞이에 나선다.
남해식 쑥인절미, 진한 향으로 인기몰이
양지바른 섬 밭두렁은 이미 봄 잔치가 한창이다. 파릇하게 돋는 봄나물 캐기가 시작됐다. 남해나 통영의 한산도, 욕지도 등 섬에서 캔 쑥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특유의 향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만드는 쑥. 이른 봄에 만나는 쑥은 보드라운 식감과 순한 향으로 인기가 많다.
쑥이 가진 영양성분과 약성은 잘 알려져 있다. 따뜻한 성질이 있어 소화기계 기능을 돕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 지방 대사에도 도움을 주므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쑥은 ‘영양가’보다 ‘약효’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인체에 이롭다. 이러한 쑥의 약성을 극대화한 것이 ‘섬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닷바람을 맞고 크는 섬쑥은 미네랄이 풍부해 약성이 더 높다. 그렇지만 쑥을 밥상에 올리는 조리법은 ‘국’ 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다. 쑥국 외 쑥을 먹는 방법은 떡 정도이다.
그래서 남해에 있는 특별한 쑥떡을 찾아 나섰다. 2007년 수제떡 명인으로 인증 받은 강양자(63) 씨의 떡집. 명인의 떡집은 여느 떡방앗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창 떡시루에서 김이 풀풀 오르고 있다. “뭐가 특별한 거냐?”는 물음에 명인은 떡시루를 보여준다. 거기서 나온 것은 떡이 아닌 쑥. ‘사철 쑥을 찌는 떡집’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농사 환경이 좋지 않은 남해에서 봄에 지천으로 올라오는 쑥은 반가운 먹거리였지요. 쌀은 귀하고 쑥은 천지고, 다른 지역 쑥떡보다 쑥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에요.”
명인은 “수십 년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명인이 됐다”면서 거침없이 쑥떡의 비밀을 풀어놓는다.
“쑥 많이 쓰고, 남해식 콩고물 묻혔어요”
사철 쑥떡을 만들어 내는 비결도 별거 아니란다. 3~4월에 캔 봄쑥을 삶아서 건조한 후 저장해 두고 쓴다. ‘건조 후 저장’이 어쩌면 비결이겠다 싶어 물으니, ‘잘’ 삶은 쑥을 1주일 정도 ‘적당하게’ 바닷바람에 말려 밀봉해 보관한단다. 3년 된 쑥부터 지난해 쑥까지, 그리고 올해 캔 해쑥까지 떡의 재료로 쓰인다. 문제는 쑥향을 ‘잘’ 보관하는 것이라고. 또 다른 비법은 콩고물. 역시 콩을 타지 않게 ‘잘’ 볶아서 갈아야 된다는 별거 아니라는 ‘잘’ 비법이 공개됐다.
“특별하다면 쑥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겠지요. 쌀 1말에 찐 쑥 3kg이 들어갑니다. 생쑥으로는 1포대 분량이에요. 또 ‘유자잎콩고물’을 꼽을 수도 있겠네요. 이것도 남해 전통 방식인데요. 유자나무가 남해에 흔하잖아요? 향이 너무 좋으니까 떡고물에도 쓰게 됐지요.”
명인이 건네는 유자잎콩고물은 눈으로 볼 때 일반 콩고물보다 푸르스름한 색 차이가 있다. 봉지를 열자 차이는 확연하다. 유자향이 향긋하게 올라온다. 고소한 콩고물에 유자향까지 더한 명품이다.
찹쌀가루와 섞어 쪄낸 쑥인절미는 김을 뺀 후 일일이 손으로 주먹만 하게 떼서 포장을 한다. 일명 ‘쑥몽실이’. 상표등록한 떡 이름인데 떡의 생김새, 보들보들한 촉감과 맞춤해서 누가 지었냐고 물 었다.
“할매들이 지었어요. 쑥 많이 날 때 떡 해뒀다가 자식들 오면 그때그때 먹을 만큼 꺼내먹는다고 포장을 그만큼씩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 쑥몽실이 좀 해줘’하고 주문하시대요.”
‘좌광우도’의 주인공 도다리가 돌아왔다
‘쑥’ 하면 빠지지 않는 봄철 특미는 누가 뭐래도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는 생김새가 광어와 닮아 ‘좌광우도’라는 말이 떠오르는 생선이다. ‘왼쪽 광어, 오른쪽 도다리’란 뜻인데, 좌우는 눈이 쏠린 방향을 말한다. 주둥이를 보는 사람 쪽으로 향하게 하고 봤을 때, 두 눈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도다리다.
도다리는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에서 입춘 이후 많이 잡힌다. 3~4월에는 2월경까지 산란을 마친 도다리가 살이 차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래서 도다리쑥국은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계절음식이라 할 수 있다. 질 좋은 단백질에 봄기운 머금은 쑥으로 풍미를 살린 특별식이다.
생선국이라 비릴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다리쑥국은 비린내 없이 쑥향이 물씬 나는 맑은 국이다. 도다리의 흰 살이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는다. 생선을 마리째 쓰거나 반토막 내서 국에 넣으므로 뼈를 발라 먹는 수고는 어쩔 수 없다.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부재료는 간단하다. 나박하게 썰거나 큼직큼직하게 채 썰어 넣는 무가 전부다. 기호에 따라 청량고추, 홍고추를 어슷썰기로 넣어 맵싸한 맛을 더하는 정도다.
도다리에 쑥 한 줌으로 ‘봄’ 한 그릇
“신선한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다른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멸치육수에 굵은소금과 액젓으로 간만 맞추면 계절 특미를 끓일 수 있어요.”
남해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장종선(54) 씨는 센불에 푸르르 끓여 내야 도다리 살점이 부서지지 않고 맛있다고 강조한다. 쑥은 미리 넣어 끓이면 질겨지고 향이 사라지므로 마지막에 넣어야 한다. 다 끓은 국에 살짝 얹듯이 넣어 뜨거운 김에 숨이 죽도록 익혀서 완성한다.
남해에는 약쑥도 유명하다. 유일하게 품종보호를 받는 특별한 약쑥, ‘섬애약쑥’은 현재 80농가에서 11만5500㎡에 재배하고 있다. 쑥이 가진 독성이 없고 쓴맛이 덜한 데다 향이 부드러워 약쑥으로는 으뜸으로 친다. 쑥뜸, 쑥초, 쑥차, 쑥라떼, 쑥커피, 쑥화장품 등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동면 앵강다숲마을에 있는 남해약쑥홍보체험관에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이동복떡집 ☎ 010-9423-4477
남해 사랑채식당 ☎ 055)863-5244
남해섬애약쑥홍보체험관 ☎ 055)862-8283
글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