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급락하는 안철수, 모멘텀 만들 수 있을까?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9월 20%대 지지율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11월과 12월에는 30%대 고공행진으로 박근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2월 들어서는 21.2%(리얼미터 기준)로 급락하여 이제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1%대 오차범위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도대체 안철수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지지율이 급락하는 안철수를 보면서 문득 떠올린 인물이 있다. 고건 전 총리다. 2007년 대선을 1년여 앞둔 2006년 가을, 여론조사 부동의 1위는 지금 대통령 해먹고 있는 MB도, 대선주자 부동의 1위 박근혜도 아닌 고건이었다. 고건은 30~40%의 지지율로 안정적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을 때 박근혜는 20%대, 이명박은 10%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고건 집에 정치지망생들이 정당을 함께 만들자며 장사진을 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하고, 곧이어 추석연휴를 맞게 되자 이명박 지지율이 급등하며 일약 3등에서 1위로 뛰어올랐고, 고건은 그 후 박근혜와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다가 2007년 1월에는 부동의 3위로 지지율이 고착화되었고, 결국 대권 후보 출마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상황이 급박할수록 장외가 아닌 현실정치에 뛰어든 지도자 중에서 대안을 찾게 되어 있고, 보혁 지지층 결집도 급격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고건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다.
지금 안철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북한 이슈가 총선과 대선의 핵심 아젠다로 부각되고 있고, 재벌개혁과 정치개혁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안철수는 여전히 장외에서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와 문재인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는 가운데 안철수만 나 홀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거다. 현실정치 속에서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과 보혁 지지층 결집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안철수가 이중의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과연 다시한번 모멘텀을 만들 수 있을까?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력이 아닌 ‘경우의 수’ 속에서만 존재한다. 물론,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처럼 경우의 수를 따져서 16강에 오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 대부분의 경우에는 곧바로 예선 탈락했다.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안철수가 다시 모멘텀을 회복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한나라당이 예상보다 선전하여 총선에서 125석 정도를 얻고, 민주당은 예상보다 저조(?)하여 130석에 턱걸이하여 겨우 원내 제1당은 되었지만, 진보당 및 진보성향 무소속과의 연대로도 원내 과반수 달성이 어렵고, 한나라당 또한 나름 선전은 했지만, 선진당과 국민생각의 부진으로 범보수 진영 과반수 달성이 어려운 경우다. 그럴 경우 박근혜와 한명숙은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처지가 되어 모멘텀을 얻지도 못한 가운데 당내에서 지도부 책임론과 쇄신론이 봇물 터지게 된다.
한나라당이 100석도 못 얻을 거라고? 천만에…
지역구 의석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은 2000년 이후 세 번 치러진 총선에서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대략 100~130석 정도를 얻었다. 가장 어려웠던 2004년 탄핵 정국에서도 100석을 얻었다. 원래는 60석 얻는 건데 정동영 ‘노인폄하’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천만에… 선거 민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순간 감정적인 이유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민심의 기류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표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TK(31석)에서 민주당이 선전한다고 해서 과연 몇 표를 가져갈까? 솔직히 1~2석도 어렵다. 공천에서 탈락하여 무소속 출마한 후보의 선전을 두 손 모아 기도해야 한다. PK(35석)에서 민주당과 진보당이 선전하여 12석을 가져간다 할지라도 최소한 23석을 새누리당이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이것만 갖고도 새누리당은 어렵지 않게 지역구 50여 석을 확보하게 된다. 거기에 최악의 경우 비례대표 15번까지밖에 당선이 안 된다 하더라도 65석인 거다. 그런데 이들이 아무리 어리버리하다고 해서 수도권, 충청, 강원, 제주에서 전멸할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경기도만 놓고 보자. 연천, 포천, 가평, 양평, 여주, 이천, 안성, 파주, 양주, 동두천, 김포… 민주당이 깃발 꽂기 쉽지 않은 지역이다. 거기에 새누리당 텃밭이라고 하는 수원팔달, 수원장안, 분당, 용인, 과천도 있다. 전체 51석 중 새누리당이 최악의 경우에도 20여 석은 얻도록 선거구가 짜여져있다. 인천, 충청, 강원, 제주에서 전멸을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90~100석 라인은 쉽게 얻는다. 결국, 합리적으로 보자면 지역구에서 95~100석 정도 얻고 비례에서 20~23석 정도 얻는다고 보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20석 내외를 얻는다고 하는 거다.
민주당의 경우를 보자. 호남(31석)에서 완승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30석이다. 그리고 수도권(111석)에서 2/3를 휩쓰는 압승을 거두어봐야 겨우 100석이다. 여기에 충청(25석), 강원(8석), 제주(3석)에서도 압승을 거두어야 지역구 120석에 도달하게 된다. 이거 결코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공천 잡음으로 경쟁력 있는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고 볼 때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에 해당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도권, 호남과 충청권의 승리 가능 지역구 중 적지않은 수를 야권연대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 그런데도 과반수는 따 놓은 당상이고 170석까지 가능하다? 정치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요즘 민주당이 청년비례대표 및 여성 의원 할당제를 놓고 벌이는 싸움을 보자면 마치 이미 승리를 거둔 점령군의 논공행상 같은 모양새다. 정치라는 게 그렇게 쉽고 만만한 게 아니다. 역사 책을 독재로 장식했고, 거기에 IMF 주범이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는 새누리당이 어떻게 지금까지 존속했고 그 당의 박근혜가 대선주자 1위에 오를 수 있겠는가? 너희 마음만 같다면 이미 당연히 소멸하였어야지…
안철수의 몰락… 민주당 손뼉 치며 좋아할 일 아니다
최근 안철수 지지율이 빠지는 것을 놓고 민주당이 손뼉 치며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닭대가리들이다. 고건이 무너지면 당연히 그 표가 반한나라당 진영으로 넘어왔어야 되는데 어째서 이명박이 반사이익을 얻었을까?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1차 방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이 나란히 반박근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문재인이 지지율 반등을 이룰 수 있지만, 안철수가 완전히 몰락하게 되면 상황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문재인 대세론’이 아니라 ‘박근혜 대세론’ 제2라운드가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대선은 싱거운 게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안철수의 지지율 급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마음이 아직은 ‘오리무중’이라는 거다. 민주당의 계산으로는 안철수 지지율이 10%대로 빠지고 궁극적으로는 한자릿수가 되면 문재인이 30~40%대로 대세론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안철수가 대선 게임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총선과 대선 프레임이 안철수 등장 이전인 작년 9월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최대의 수혜자는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안철수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한명숙에게 보내는 무언의 경고라고 볼 수 있다. 결코 자만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새누리당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보다 넓고 열린 마음으로 당을 보듬고 포용해야 하는 동시에 야권 연대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안철수가 고건의 전철을 밟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소한 그 반사이익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온전히 가져가는 것만큼은 민주당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당은 더욱 겸허해지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흑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