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로 풀어보는 천자문[77] 구주우적 백군진병(九州禹跡 百郡秦幷) <구주에 우왕의 자취가 남고, 진나라는 백군을 통일하다>
1. 들어가는 말
《천자문(千字文)》의 일흔일곱 번째 구절인 「구주우적 백군진병(九州禹跡 百郡秦幷)」은 중국 대륙의 문명적 개척과 행정적 통일의 역사를 압축한 구절입니다. 앞 구절인 「선위사막 치예단청(宣威沙漠 馳譽丹靑)」이 변방까지 국위를 떨친 명장들의 공훈을 조명했다면, 이번 구절은 시선을 천하의 강역으로 넓혀 우왕의 치수와 진나라의 천하 통일을 함께 다룹니다.
구주우적(九州禹跡)은 우왕(禹王)이 대홍수를 다스리고 산천과 물길을 정비하여 구주(九州)에 남긴 자취를 뜻합니다. 이는 백성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한 치수(治水)와 문명 개척의 상징입니다. 백군진병(百郡秦幷)은 진(秦)나라가 전국시대의 분열을 끝내고 여러 나라를 병합(幷)하여 천하를 통일한 것을 뜻합니다. ‘백군(百郡)’은 수많은 군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로, 통일 이후 확립된 중앙집권적 행정 질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우왕이 자연을 다스려 문명의 터전을 열고, 진나라가 분열된 천하를 하나의 정치 질서로 통합한 역사를 연결하여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이를 통해 국토의 개척에서 제도의 통일까지 이어지는 고대 문명의 흐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2. 들어 있는 말
가. 어구의 핵심 의미와 철학적 배경 「구주우적 백군진병(九州禹跡 百郡秦幷)」은 문명 개척의 지리적 출발과 제국 통일의 정치·행정적 완성을 두 글자씩 짝지어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 구주(九州): 구(九)는 아홉을, 주(州)는 일정한 영역을 뜻합니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기(冀)·연(兗)·청(靑)·서(徐)·양(揚)·형(荊)·예(豫)·량(梁)·옹(雍)의 아홉 주를 가리키며, 나아가 고대 중국 천하를 상징합니다. • 우적(禹跡): 우(禹)는 대홍수를 다스린 우왕을, 적(跡)은 자취를 뜻합니다. 우왕이 산천과 물길을 정비하여 백성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한 치수와 문명 개척의 자취를 의미합니다. • 백군(百郡): 백(百)은 수많음을, 군(郡)은 지방 행정 구역을 뜻합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여러 지역을 군현제로 다스린 통일 제국의 행정 체계를 상징합니다. • 진병(秦幷): 진(秦)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를, 병(幷)은 아울러 합치다·병합하다를 뜻합니다. 진시황이 여러 제후국을 병합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연을 다스려 삶의 터전을 연 문명의 개척(九州禹跡)과 분열된 천하를 하나의 질서로 묶은 제도의 통합(百郡秦幷)을 함께 보여 줍니다. 우왕이 국토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진나라는 이를 하나의 행정 체제로 아울렀으며, 《천자문》은 이를 통해 국토와 제도가 함께 갖추어질 때 국가의 질서가 확립됨을 보여 줍니다
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한 문자학적 고증 「구주우적 백군진병(九州禹跡 百郡秦幷)」의 여덟 글자는 수의 변화와 사람이 살아가는 땅, 우왕과 그 발자취, 수많은 행정 구역, 그리고 진나라와 병합이라는 본뜻을 자형 속에 담고 있습니다. • 九(아홉 구): 「九,陽之變也。象其屈曲究盡之形。」 허신은 구(九)를 “양(陽)이 극에 이르러 변화하는 것”이라 풀이하고, 굽이굽이 나아가 끝에 이른 모습(屈曲究盡之形)을 본뜬 글자로 설명하였습니다. 단옥재는 《열자》·《춘추번로》·《백호통》·《광아》에서 모두 “九는 궁극에 이른다는 뜻이다(九,究也)”라고 한 것을 들어, 아홉이 수의 끝에 이른 의미를 지닌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천하를 아홉 영역으로 나눈 구주(九州)의 수를 뜻합니다. • 州(고을 주): 「州,水中可居者曰州。水周繞其旁,从重川。」 허신은 주(州)를 “물 가운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水中可居)”이라 풀이하였습니다. 물이 그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며, 겹친 내 천(川)의 형태를 따른 회의자입니다. 또한 요임금 때 홍수를 만나 백성들이 물 가운데 높은 땅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구주(九州)’라 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단옥재는 州가 본래 물 가운데의 땅이나 모래섬(州渚)을 뜻했으며, 여기에서 의미가 확대되어 천하의 영역을 가리키는 九州가 되었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우왕의 치수와 관련된 천하의 아홉 영역(九州)을 뜻합니다. • 禹(우왕 우): 「禹,蟲也。从厹,象形。」 허신은 우(禹)를 본래 “벌레 또는 동물의 일종(蟲)”이라 풀이하고, 厹를 따르는 상형자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단옥재는 그 형상이 네 발을 가진 생물(蓋亦四足)을 본뜬 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이 글자의 본뜻인데 후대 학자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라 왕이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夏王以爲名)”고 하여, 본래 동물을 가리키던 禹가 하나라 우왕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본문에서는 대홍수를 다스리고 구주의 산천과 물길을 정비한 우왕(禹王)을 가리킵니다. • 跡(자취 적): 「迹,步處也。从辵,亦聲。」《설문해자》에서는 迹으로 쓰였습니다. 허신은 적(跡)을 “걸어 지나간 자리(步處)”라 풀이하였습니다. 쉬엄쉬엄 갈 착(辵)이 뜻을 나타내고 역(亦)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사람이 걸어간 뒤 남은 흔적이라는 본뜻을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우왕이 산천을 다스리며 남긴 치수와 문명 개척의 자취(禹跡)를 뜻합니다. • 百(일백 백): 「百,十十也。从一白。」 허신은 백(百)을 “열이 열인 것(十十)”, 곧 100이라는 수로 풀이했습니다. 일(一)과 백(白)을 따르는 글자입니다. 단옥재는 이를 “열이 열이면 일백이 된다(十十爲一百)”고 풀이하고, 白은 ‘말하여 밝히다(告白)’라는 뜻으로 百의 자형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수가 백에 이르면 하나의 큰 단위를 이룸으로 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실제 100개에 한정하기보다 수많은 군(郡)을 포괄하여 이르는 백군(百郡)을 뜻합니다. • 郡(고을 군): 「郡,周制:天子地方千里,分為百縣,縣有四郡。从邑,君聲。」 허신은 군(郡)을 고대 주나라 및 진나라의 행정 구역 단위로 풀이하였습니다. 고을 읍(邑/⻀)이 뜻을 나타내고 임금 군(君)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주나라 때 縣보다 작던 郡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縣을 통솔하는 상위 행정 단위로 변모하여 진나라 군현제의 핵심이 되었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전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을 가리킵니다. • 秦(진나라 진): 「秦,伯益之後所封國。地宜禾。从禾,舂省。一曰秦,禾名。」 허신은 진(秦)을 “백익(伯益)의 후손이 봉해진 나라”라 풀이하고, 그 땅이 벼농사에 알맞았기 때문에 화(禾)와 용(舂)의 생략형을 따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뜻으로 곡식의 이름(禾名)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옥재는 진의 근거지가 옹주(雍州) 부근의 진곡(秦谷)이었음을 고증하면서, 이 글자는 ‘곡식을 방아 찧는다’는 회의적 의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본래 지명·국명을 나타낸 글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여러 나라를 병합하여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를 가리킵니다. • 幷(아우를 병/합할 병): 「幷,相从也。从从,幵聲。一曰从持二干爲幷。」 허신은 병(幷)을 “서로 따르고 함께하는 것(相从)”이라 풀이하였습니다. 종(从)을 따르고 견(幵)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이며, 다른 풀이로는 두 사람이 각각 막대기(干)를 들고 함께 있는 모습에서 뜻을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단옥재는 幷의 뜻을 “합하다(合也)·겸하다(兼也)”라고 설명하여, 여러 대상을 함께 합치고 아우르는 의미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진나라가 여러 나라와 지역을 하나로 병합하고 통일한 것(秦幷)을 뜻합니다.
《설문해자》의 자의(字義)를 종합해 보면, 九·州·禹·跡은 구주라는 천하의 공간과 그곳에 남은 우왕의 치수와 개척의 자취를, 百·郡·秦·幷은 수많은 지방을 진나라가 하나로 아울러 통일한 역사적 변화를 보여 줍니다. 앞의 네 글자가 산천을 다스려 삶의 터전을 마련한 우왕의 자취를 나타낸다면, 뒤의 네 글자는 분열된 천하를 하나의 정치·행정 질서로 통합한 진나라의 통일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여덟 글자는 국토의 개척에서 제국의 통일까지 이어지는 문명사의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3. 맺는 말
「구주우적 백군진병(九州禹跡 百郡秦幷)」을 읽다 보면, 사람의 삶에도 저마다 지나온 자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왕에게는 물길을 다스리며 남긴 자취(禹跡)가 있었고, 진나라에는 흩어진 지역을 하나의 제도로 아우른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규모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무엇인가를 남기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오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하루 작은 자취를 남기며 살아갑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고 나면 내가 하던 일은 다른 사람이 이어받고, 자녀가 자라 집을 떠나면 부모가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생활의 모습이 그 마음 한편에 남습니다. 친구나 이웃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애써 정리해 둔 일 하나, 어려울 때 건넨 말 한마디, 함께 일하기 편하도록 만들어 둔 작은 방식 하나가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만큼 이미 있는 것을 잘 가꾸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내가 있을 때만 잘 돌아가는 일이라면 떠난 뒤에는 다시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누가 맡더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고 기준을 세워 둔다면, 내가 떠난 자리에서도 그 일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우왕이 물이 흘러갈 길을 열었다는 옛이야기를 생각하면, 사람의 일에도 그렇게 다음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九州禹跡 百郡秦幷」의 여덟 글자를 되새기며 나 역시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크게 이름을 남기지 않더라도 내가 지나간 자리가 전보다 조금 나아지고, 다음 사람이 그곳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 놓는 것.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취(跡)’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終)>
2026. 9. 26.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