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 남지읍 유채단지. 노란빛과 연둣빛이 어우러진 유채꽃이
저 멀리 낙동강에까지 닿을 듯 끝없이 펼쳐져 있다.
뾰족한 표현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한 폭의 그림 같다 생각했다. 수채화나 수묵화는 아니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섬세한 붓터치가 인상적인 아크릴화다. 화폭 아래쪽엔 드넓은 유채꽃밭을 깔고 꽃길과 평행을 이루는 강물은 녹색을 머금은 무채색으로 처리한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철교가 그림 중앙에 놓인다. 하나는 파랗게, 하나는 주홍빛으로 옷을 입힌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해를 하늘에 그려넣고, 몇몇 사람들이 유채밭 사이를 여유롭게 거닐게 한다. 마지막으로 철교 위 흰 바탕이 초봄의 기운을 머금은 연한 하늘색으로 칠해지고, 풍경화는 마무리된다.
▲유채를 품은 풍경
남지철교는 낙동강을 끼고 양분돼 있는 함안 칠서와 창녕 남지를 잇는 다리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됐고, 6·25전쟁 당시 남하하는 인민군을 막아낸 낙동강 방어선 전투 장소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남지철교는 경남에서 몇 남지 않은 근대식 트러스 구조를 가진 철교로 분류된다.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됐다. 2000년 초 교각 일부가 붕괴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건재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가 생기면서 현재의 남지철교는 자전거 전용도로, 인도로만 이용되고 있다.
4월 중순으로 내닫는 지금, 남지철교 아래는 장관을 이룬다. 이전에 봄에는 감자를, 가을에는 무를 생산한 대단지 농장이었던 하천부지가 눈부신 유채꽃밭으로 조성됐기 때문이다. 유채단지가 된 둔치는 낙동강 유역 중 유일하게 제방이 없거나 낮았던 곳으로 낙동강 홍수 때면 늘 민가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반복해 왔던 곳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가 낙동강 일대를 덮쳤을 때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사연이 유채밭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수해복구사업으로 이주대책을 추진해 470여 가구를 이주시키고 제방을 쌓으면서 체육공원을 만들고 여유 공간을 이용해 유채꽃을 심게 된 것. 제주도나 인근의 양산, 진해 지역의 유채도 유명하지만, 현재까지는 남지유채단지가 단일면적으로 전국 최대 규모 60㏊(18만여 평)를 자랑하는 유채밭으로 손꼽힌다.
▲낙동강유채축제
대단지 유채꽃밭이 조성되면서 2006년부터 이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해 낙동강유채축제가 생겨났다. 올해는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열린다. 낙동강 용왕대제를 시작으로 KBS 전국노래자랑, 유채국악 한마당, 다문화가정 전통 혼례식, 청소년 전국 국악 한마당, 농악경연대회 등 다양한 공연 및 부대행사와, 토끼 생태체험, 풍선아트, 페이스페인팅, 전통 한지공예, 농특산물 전시, 남지철교 갤러리 등 다양한 체험·전시행사가 펼쳐진다. 또 축제기간 동안 부곡온천에서는 코미디영화제가 열리고, 21일에는 유채꽃길 따라 걷기 행사가 열린다. 낙동강가의 남지에서는 자연스레 강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민물고기, 잉어, 향어 등 민물회가 유명하다. 제방이 생기면서 민물고기 횟집 대부분이 이주하고, 일부 횟집이 읍내로 자리를 옮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3~4월에는 웅어회가 유명하다. 웅어는 바다에서 사는 생선임에도 봄철 산란기가 되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습성을 가졌다. 때문에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온 웅어의 탄탄한 육미는 이 시기 한철 동안만 맛볼 수 있는 계절 풍미로 알려져 있다.
▲봄빛을 품고 당신을 기다린다
사실 지금 남지의 풍경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철교에서 둔치를 굽어보면, 전체적으로 병아리 깃털처럼 진한 노란빛과 막 피어난 싱그런 연둣빛이 한몸처럼 엉켜 있는 모습이다. 축제를 앞두고 여기저기 시설을 정비하고 꽃밭을 다듬는 바쁜 모습과 산책 나온 주민들, 꽃을 보러 온 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키가 30㎝ 이상으로 자라며 가늘고 길다란 원뿌리를 가지는 유채꽃은 뭉텅이로 피어나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꽃이다. 꽃잎의 색은 진노랑보다는 연노랑색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4장의 꽃잎이 모여 피고 무리 지어 자라 전체적으로 진하고 밝은 노란색을 띠며, 커다란 꽃밭 하나가 마치 꽃 한 송이처럼 느껴지는 광활한 풍경화를 완성한다.
남지철교에서 꽃밭과 강물을 조망했다면, 철교에서 내려와 반대편 둑 끝까지 걸어간 후 철교 쪽을 바라보는 장면도 장관이다. 두 개의 다리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낙동강 너머로 보이는 나지막한 용화산과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능가사의 앙증맞은 모습도 멋진 풍광을 이룬다. 봄빛, 그 한창의 열기를 품고 당신을 기다리는 유채밭을 미리 보러 가는 것도 올봄의 좋은 여행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