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한 차에 1000k을 넘게 전국을 돌면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
막연하게 난 형기에 치중한 모든 풍수가을 부정했다 .. 부정하면서 한번은 고개을 까우뚱했고 그리고
그 엄청난 거리을 달리면서 느낀 피곤의 힘보단 무언가 확고하게 느낀 나의 마음에 더더욱 피로감을 느끼기 보단 소중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와 다니는 한분의 마음을 똑 같이 느낀것에 대해 ..그 분의 나름되로의 느낌이 클거고 그리고 나또한 크다라는 동질감이 무엇보다 컸다
언제가 어느분과 다툼이 있었다 ..이 사람은 형기에 매우 중시 여기는 분이었다 ..본인도 이장을 한 사람이고
그리고 그 분에게 듣는 형기 ..처음엔 막연하게 부정으로 갔다 ..그 분이 보여준 발복한 자리에 형기에 꽉 찬 곳에 ..내가 생각한 지기론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르거나 몇가지 맞는것도 있었고
그리고 180` 다른 형태의 것도 있었다
그래서 형기도 있을까? 하는 의문도 앞섰다 ..서울에 모 풍수가 분도 형기에 氣脈을 보면서 우선 氣脈에 최우선 덕목으로 둔다고 했다
기맥(지기)에 우선에 덮붙이는것이 형기라 했다 ..형기가 곧 악세살이 역활이라는것이다
어느분이 안모 시장의 묘지에 아파트가 앞에 들어 서서 그 사람이 말년에 그와 같은 끔찍한 변을 당했다고 한다
난 여기서 모순의 상반된 풍수가들을 이해할수 없다 땅의 지기는 그대로 인데 어찌 변할수 있단 말인가
그 그 모시장의 부친이 아니라 그 모시장의 모친의 산소을 봐에 되지 않는가??
저 번에 형기을 주로 하는 풍수가들은 아예 형기가 없으면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산소의 집안에 대한 모습은 보지 않고 오로지 형기에 맞지 않으면 볼 필요 가 없다라는것이다
그 많은 과정에 오로지 형기가 우선이라는 말인가 ..
나와 논쟁을 한 분은 형기에 맞지 않는것도 발복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
거기에 가자고 하니 연락이 없다 ???
지금 답산기에 한참 글 올라오는 송천선생님의 결과에 나중에 여러분은 주목하기 바랍니다 ..
그래서 어제 어느 형기론에 치중하는분과 나와 같이 다니는 동행분과 그리고 다른 풍수가와 논쟁끝에
1000k가 넘는 길을 달렸다 ..황우석박사묘와 그리고 송천선생님의 오씨묘..
그리고 그외 묘들 ..
네비게이션을 틀고 황우석교수의 부친묘인지 모르지만 ..정말 형기는 도저히 찾아 볼수 없는 빈둥묘에 갔다
아마 동네분들도 도에서 나무을 짤랐다고 하니 분명히 황교수 집안 묘는 맞을것이다
이건 후손들이 도저히 묘지 관리을 하지 않은것에 대해 조금은 섭섭했다
그 벌목한 산중터에 도저히 산소라고 할수 없는 조그만한 묘가 있다 ..
어느 수맥가가 보면 이끼 끼고 수맥이 온사방을 덮는다고 했을것이다
어느 모 분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형기분들도 도저히 이건 이해 할수 없다 이것이 부친묘라면 분명히 화을 당했다고 했을것이다 강력한 주장을 하더군요..
그리고 조부묘에 갔어 형기로는 잘 짜여진 국세가 그리고 전순의 모습과 입수가 아주 잘 되어 있다라고 하더군요 근데 잔디 하나 없는 이 자리에..그럼 이자리가 좋으면 왜 황교수 부친이 그토록 일찍 돌아 갔습니까?
하니 ..그 윗대 조상묘을 봐야 안다고 ..그래서 그럼 조모님 묘는 볼 필요 없다라고 그냥 가자고 햇고
오씨 묘을 향했습니다 여기서 난 따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오씨 묘을 찾아 보라고했다 그래서 역시나 그분들은 가운데 두 봉분 잔디가 이쁘게 짜여졌고 그쪽을 향하는것이었다 ..그 쪽 집안은 나중에 물어 보면 알거고 ..그쪽이 아닌 전혀 형기가 맞지 않는 오른쪽 묘라 했다
이 집안이 잘되어서 이렇게 묘도 치장하지 않았나 ..내 생각엔 형기분들이 저쪽 묘가 좋다고 한 묘는 수맥에 노출된 냉혈묘 인가 갔다 라고 내가 되받아 쳤다 ..
앞에 보여준 형기의 국세가 잘 짜여진 묘는 우연히 氣脈에 노출된 묘에 잡은것이고 ..여기 묘들은 전혀 형기에 맞지 않다 라고 반론을 제시했다
그들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더군요 ..좋습니다 나중에 님들이 애길한 묘주에게 물어 보기로 합시다
그러나 진정결과는 발복이 된 이쪽묘입니다 님들이 주장하는 혈토라던지 ..모 풍수카폐에 논쟁하는 추부면쪽 묘도 제 생각엔 전혀 아닌걸로 압니다 ..
형기에 치중한 조선묘들이 조선시대에 그다지 흥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시길,,
그리고 수많은 공원묘지의 발복사례는 님들이 주장하는 형기에 맞는게 도대체 몆기나 되겠습니까..
혹시나 나도 형기에 뭔가 있나 했는데 ..형기 자체에 모순 떵어리을 내포하는군요..어찌 산세의 형태로 모든걸 정하는지 ..원인는 바로 땅이며 그 속에서 우러 나오는 氣는 곧 땅인데 산세의 국세로 모든 걸 정하는데 모순에 많이 내포됨니다
원인 땅이면 그속에 나오는 氣雲은 바로 지기 이며 그 지기에 조상의 유골이 편안하다는 결과가 도출되는게 정석 아님니까
그래서 혹시나 한 형기에 ..여전히 필요 없다라는 결론을 되세기는 하루였다 ..형기을 잡으면 결과가 없고 ..발복과 동기감응의 소지는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 하다 ..
그래서 형기와 현공 그외 미신에 치부하는 동기을 제공하는 모순된 반풍수의 판을 만드는 다분한 소지을 여전히 제공하는 결과이다 ..
여러 형기 현공 그외 풍수가들에게 나의 애기에 반론하는분도 있을겁니다 ..이젠 난 그 반론에 명백하게 주장을 펼칠 수 있다라고 봅니다
여기 글속엔 두 묘만 비교해서 글 올렸지만 다른묘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해봐야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결론이고 두 묘는 여러분이 찾아가기 쉬어서 ..두 묘을 공개 했습니다 다른묘도 필요 하면 올리겠습니다 ..
혹시나 핸 형기 ..역시나 입니다
첫댓글 수만은 묘지로 둘러 쌓여 있는 공원묘지에도 운 좋게 형기에 맞게 들어 가서 발복을 할수 있다라고 한 형기풍수가들의 모순 그 공원묘지도 짤려 나가고 형기가 잡혀 지지 않을진데 어찌 발복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게 바로 지기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는 결론이다
안 모 광역시 시장도 아파트가 들어 서서 말년엔 좋지 않은 결과가 났다고 한 한 모 대학의 풍수가들 처럼 공원묘지는 짤려 나가고 형기가 파괴 되어 있는데 어찌 발복을 할수 있단 말인가 ..모순의 모순인 형기..
대공포님 고생하셨네요. 풍수지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그 실체를 좀더 용이하게 파악할수 있을텐데... 워낙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것으로 전해지다 보니 그럴겁니다.
대공포님은 地氣란걸 어떤 방법으로 확인하십니까? 눈으로? 感으로? 그리고 동북아카페의 운영자십니까? 그리고 이번 추부면 논쟁에서 보면 기풍수하시는분이 점혈을한건데 그 氣와 地氣의 氣는 어떤연관성이있는지요
깜깜님 ..추부면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천에 모 산소엔 가보았습니다 전 동북아카폐의 운영지기가 아님니다 관계없어요..그리고 깜깜님이 애기하는 그쪽 氣와는 확연히 차이가 남니다
금산선생님은 氣로 하신다고 하는데 전 氣와地氣는 아닌걸로 압니다 형기쪽에 가깝게 보이더군요 깜깜님 께서 혹 영천의 모 묘지에 가보길 바람니다 아마 눈으로 보아도 이끼와 냉혈이 교차 할겁니다 깜깜님이 수맥이 탐사 되시면 아마 수맥에 노출된 묘일겁니다 물론 나의 견해로..남들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의 방법은 아직 뭐라 할수 없습니다 워낙 송천선생님과 송헌회장님이 대단하셔서 감히 나의 방법을 그분에게 제시하는것이 누가 될것 같아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다만 수맥을 전문적으로 하는분과 동행합니다 ..
기풍수라는 氣와 송천선생님의 地氣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 생각엔 기풍수쪽의 분은 氣로 한다고 하지만 기가 아닌 전혀 다른 형기로 근접하는 풍수라 여겨 짐니다
네 설명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운영자이신 송천,현님은 어떤것으로 지기를 판별합니까? 몸으로? 기감으로? 엘로드로? 눈으로? 사진에보니 엘로드를 가지고 다니시는것 같아서요
엘로드로도 하지만 기감이 먼저 이겠지요 ..먼저 몸으로 느끼는것 같아요 ..제가 본 봐로는 먼저 몸에게 어떠한 기을 느껴서 찾아나서는것 같습니다 ..자세한건 송천선생님에게 여쭤보시는게 더 정확할겁니다
송천 선생님 대답좀 해주세요
황교수부친묘도 흉지고,조부,조모묘도 모두 안좋다는 말씀이군요,그러면 집터는 어떤가요? 그럼 황교수의 발복은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 한데요?
황교수 부친묘는 좋습니다 ..조부조모묘가 좋지 않다는것이죠 생가도 좋아요
깜깜님/ 지기 식별은 엘로드를 갖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질의 응답방에 몇차례 답변드린 글이 잇으니 참고 하세요.
용사마님/황교수 선대 산소와 생가에 대한 것은 답사기에 올려 있으니 참고 하세요.
생가는 저도 갔었는데 제가 갈때 한참 수리 중 이었씀니다. 동네가 황씨 마을 이더군요
집터만 보구 왔씀니다. 부친묘가 명당이였군요 .언제 시간되면 가보겠씀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동네가 황씨 집성촌이었습니다.
용사마님 형기로 보시면 답이나오지않습니다 ..지기는 어려우니 용사마님은 먼저 수맥을 먼저 보십시요 ..그리 하면 답을 얻을수 있을겁니다
예 그러겠슴니다. 제가본 황교수 생가는 특이한 구조 입니다. 즉 이집에 살때는 발복은 없던걸로 추종 됨니다. 그이론의 근거는 집의 구조에 있씀니다. 즉 집터의 가장 큰 용혈은 청룡에서 나오고 있씀니다. 보통은 주산에서 나오는데 .
이터는 좌청룡에서 나온느데 황교수생가는 모두 방이 3칸입니다. 청면에서보면 우측 부엌과 황교수가 공부하던방 이방이 명당이고요.옆방은 (중간방) 이곳은 모친,부친거주했고요 .그옆방은 형제들이 거주 했씀니다.
이집에선 우측 작은방이 청룡의 기운이 들어오고 있더군요.